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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세차장이 아냐. 주유소지. 그냥 서비스 차원에서 세차를 해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여기는 세차장이 아냐. 주유소지. 그냥 서비스 차원에서 세차를 해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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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원 옷을 입었지만

그렇게 나는 주유원 옷을 입었지만, 그래서 주유원이 되어 주유기 옆에 섰지만, 서름하기만 하다. 내가 여기 왜 서 있는 걸까. 옷을 입고 주유소의 필드로 나왔을 때, 바로 들어 와 '3만 원어치요!'라고 외친 자동차 안의 그 사람이 나여야 하는데.

주객이 뒤바뀐 자리. 난 어리벙벙하다. 아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주유기 노즐(권총같이 생긴 것)을 잡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왕에 주유원 옷을 입었으니, 빨리 배워야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다른 동료가 말한다.

"서두르지 말아요. 천천히 배우면 되니까. 주유소에서는 항상 서두르다 사고를 낸다니까."
"……?"

그 순간, '경유 차량 혼유 주의'라는 주유기 앞면에 붙은 글자가 확 내게로 곤두박질쳤다. 아, 저걸 말하는가 보구나 하고 눈치를 챘다. 목사로 잔뼈가 굵었으니 눈치는 9단이 아닌가. 아무렴. 목사는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니, 실은 사람만이 아니라 그 위에 계신 분도 다루지만(말이 써놓고 보니 좀 이상하다). 그래 서둘지 말고 차근차근 이 속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자구나 하고, 나를 다그친다.

나는 선배들이 하는 일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주로 하루를 보냈다. 물론 이것저것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아직은 설기만 하다. 주유기에 긴 호스로 연결되어 가장 끝에 붙어 자동차 주유구로 넣어지는 그놈, 즉 권총처럼 생긴 것이 '노즐'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대강 익힌 것은 카드 긁는 법, 금전등록기 여는 법, 영수증 끊어주는 법, 주유기 작동법, 세차기 작동법, 세차하는 법 등인데 익숙하려면 일주일은 걸려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딱 두 가지를 조금은 이골 나게 익혔다. 하나는 카드 긁는 법, 다른 하나는 세차하기다. 그러나 이골 나게라 함은 조금 과장이다. 대부분은 마음만 분주했지 서 있기가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나의 오늘의 일이라 하는 게 옳다.

그러나 서 있기가 이리 힘든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무엇을 하긴 해야겠는데 할 줄 알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서 있는 시간이 길 수밖에. 그러나 남들은 분주한데 일이 익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 있기도 난감하다. 서 있어도 일하는 것만큼 힘들고, 일하기에는 설익어 고통스럽고…….

주유원 옷은 입었지만 주유원이 아니다. 맞다. 오늘 나의 모습은 바로 그런 것이다. 주유원인데 주유원이 아닌 사람, 주유원 옷은 입었는데 주유원이 아닌 사람, 남들은 주유원이라 봐주는데 주유는 할 줄 모르는 사람, 비단 주유원만의 일이랴. 교회에 있는데 신앙인이 아닌 사람, 남들은 교인이라 말하는데 신앙의 모습을 보이지 못 하는 사람, 그런 교인도 교회에는 많이 있으려니.

결제하기

먼저 카드 결제하는 법은 이렇다. 카드를 받아 들면 전표를 꿰차고 있는 카드 단말기로 달려간다. 카드는 신용카드와 오일 회사에서 0.5퍼센트씩 포인트 적립을 해주는 보너스카드 두 종류다. 신용카드와 보너스카드 일체형도 있다. 그런 것은 그냥 한 번만 긁으면 된다. 그러나 따로 두 가지 카드를 내는 경우는 신용카드를 먼저 단말기 오른쪽 뺨 부위에 길게 패인 홈에 넣고 찍- 긁어내린다. 이어 다음 카드를 읽히라는 문자가 나오면 보너스카드를 같은 방법으로 긁는다.

두 카드 읽기가 성공적으로 되면, 카드 단말기는 얼굴에 이렇게 쓴다. '유종을 선택하시오.' 난 이 문구가 마음에 안 든다. 왜 이렇게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말하는지 모르겠다. 좀 더 공손하게 '유종을 선택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든가, 아니면, 유머러스하게 '유종을 선택해 주시면 사랑하고 말거야.'라면 안 될까. 그런 기회가 없겠지만(하긴 그럴 위인이 아니니까 이런 망상적인 생각을 하는 것일 게다.) 혹 이런 유의 기계를 제작할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하고프다. 내가 못 해도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해주면 좋겠다.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허튼 소린 그만 하고 다시 잇겠다. 그런 글씨가 얼굴에 찍히면, 유종을 선택한다. 1번 휘발유, 2번 경유, 3번 등유 …… 그러나 보너스카드가 없는 경우는 신용카드를 읽고 나서 다음 카드를 읽히라고 할 때, '입력' 키를 누르면 된다. 컴퓨터로 말하면 '엔터' 키인 것이다. 그리고 금액, 다음은 몇 개월 할부로 할 것인지 묻는다. 몇 개월로 해달라고 손님이 먼저 요구하지 않으면 대부분은 '입력'을 눌러 일시불로 끊는다. 포인트로 할 때는 60이라는 숫자를 입력한다.

그러고 나면 단말기는 그 특유의 까르르륵 까르르르륵 소리를 내며 인쇄된 전표 3장을 내뱉는다. 점선으로 잘 찢어지도록 되어 있는 전표를 조심스럽게 뜯어 선물과 함께 자동차로 달려가 사인을 받는다. 사인을 받은 후 맨 밑에 있는 전표는 손님에게 주고, 나머지 2장을 전표함에 갖다 넣으면 된다. 한 사람의 손님은 그렇게 결제되어 우리 주유소를 빠져나간다. 현금결제 때에는 영수증을 끊을 것인지 여부만 확인하고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된다. 카드든 현금이든 결제가 안 된 상태에서는 결코 주유소를 빠져나갈 수 없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피로 결제되지 않으면 천국으로 향하는 문을 통과할 수 없듯이(신앙인이 아닌 분이 읽으면 피식 할 일이겠지만), 그들은 결제가 안 되고서는 그들이 왔던 사회로 나갈 수 없다. 세상은 돈이란 것에 의해 결제되어 사는 인간들이 만든 천국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라는 사나이의 피로 결제되어 사는 그리스도인의 세상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이든, 하늘나라든.

세차하기

두 번째 익힌 일이 세차하는 법니다. 세차는 쉽게 세차기 다루는 법과 수건질로 이뤄진다. 물론 차가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수신호는 물론, 입으로 '오라이, 빠꾸!'를 외치며 제대로 들어오고 제대로 나가도록 인도해 주는 것은 기본이다. '오라이, 빠꾸!'는 무식한 사람도 유식한 사람도 똑같이 한다. 이 단어는 무식과 유식을 넘나들며 모두 무식한을 만든다. 만약 내가 그것이 영어라는 걸 말하고 원어민 발음으로 한다면, 참으로 웃긴다고들 할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지 않은가. 나도 열심히 '오라이, 빠꾸!'를 외치며 차를 안내한다.

먼저 선배가 시범을 보인다. 세차기의 왼쪽 벽에 키패드가 하나 달려있다. 왼쪽으로 '세차, 왁스, 이오코드, 노브러시 왁스, 드라이, 플레티너 이오코드'와 그 아래로 '비상정지' 버튼이 있고, 가운데로 '일반, 스포일러, 캐리어, 도어 미러' 등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 '지프, 택시, 고압세차'가 있으며, 오른쪽으로 '스타트와 일시정지' 버튼이 있다.

버튼은 많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세차와 왁스, 일반과 도어 미러, 그리고 스타트이다. 승용차일 경우와 봉고나 지프 형태의 차일 경우가 조금 다르다. 지프차일 경우 가운데 버튼 중에  '지프'라는 키를 한 번 더 눌러줘야 한다. 컴퓨터에 이미 익숙한 터라 한 번의 시범으로 마스터하고 말았다. 조금은 요령이 있어야 하는 게 수건질이다. 선배는 말한다.

"여기는 세차장이 아냐. 주유소지. 그냥 서비스 차원에서 세차를 해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

의아스러워 하는 내게 다시 말한다.

"유리창만 닦아줘! 이렇게."

그의 시범은 능수능란하다. 물 세척, 비누세척에 이어 세차기가 뿜어내는 바람과 함께 서서히 말라가는 차 유리를 따라 수건을 갖다 대고 슬슬 문지른다. 물기만을 없애는 걸레질, 거기에는 때를 닦으려는 아무런 힘이 들어있지 않다.

그랬다. 수건질의 요령은 유리창만, 그것도 물기만 닦는 거였다. 차량을 가진 사람들은 주유소의 세차를 이미 다 경험했겠지만, 겉만 닦는 것이다. 뭐, 혹 가다 열에 하나쯤 차 안 청소까지 해주는 주유소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 겉만 닦는다. 엄밀히 말하면 유리창만 제대로 닦는다는 말이 더 맞다.

선배의 시범 후에 나는 수도 없이 많은 차들의 유리창을 그 선배의 시범과 동일한 방법으로 닦았다. 다르게 하여 혹 유리창에 낀 때를 닦으면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나처럼 배운 대로 하는 착한 사람은 그렇게 하는 거야.' 속으로 다짐하면서.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어깨와 팔이 배겨날 수가 없다는 것을. 첫 출근 날 가장 많이 한 것은 바로 세차다. 가장 숙련성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햇살이 따사로운 하루다.  4, 5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주유소와 세차장 사이를 수도 없이 오가면서 첫 출근 날은 그렇게 하루가 기울었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주유소 일이 조금은 숙련을 요구하는 일이란 걸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만만치 않은 노동력을 요구한다는 것도,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이 아프고 어깨와 팔이 결릴 때에야 알았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을 다잡으며 아까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간 길을 저녁 햇살을 등에 지고 되돌아온다. 우리의 삶도 간 길을 되돌아 올 수만 있다면 그렇게 허망하진 않을 텐데. 다시 멋지게 가면 되니까. 아내가 힘들지 않았냐며 문을 열며 반긴다.

"힘들긴?!"

그것은 말이다. 정말 말이었을 뿐이다. 안 결린 데가 없고, 안 아픈 데가 없다. 그러나 깃털처럼 가벼운 맘으로 쇠처럼 무거운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이 있고 반기는 가족이 있어 행복한 하루다.(계속)

덧붙이는 글 | *힘든 때입니다. 이 글은 제가 고통 중에 있을 때의 경험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떠나 일용직(비정규직) 근로자인 주유원으로 일하면서 얻은 '고난 속의 교훈'이랄까요? 이 글이 현재 힘든 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주유원 이야기, #주유원 일기, #김학현, #주유소, #논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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