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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명의 말

 

.. 효소를 담은 항아리를 뒷밭 감나무 밑에 묻어 놨는데 효소가 암수표로 둔갑해 버린다면 어쩐다지? 단파 라디오라도 나온다면 …… 어떻게, 뭐라고 변명의 말을 해야 하지 ..  《박광숙-빈 들에 나무를 심다》(푸른숲,1999) 39쪽

 

 '둔갑(遁甲)해'는 '바뀌어'나 '탈바꿈해'로 다듬어 줍니다.

 

 ┌ 변명(辨明)

 │  (1)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함

 │   - 변명의 여지가 없다 /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

 │     변명 같지만 /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 변명 한마디 못하였다

 │  (2)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

 │   - 변명의 상소를 하다

 │

 ├ 뭐라고 변명의 말을 해야 하지

 │→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지

 │→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하지

 │→ 뭐라고 핑계거리를 대야 하지

 │→ 뭐라고 둘러대야 하지

 └ …

 

 잘못을 했을 때 잘못했다고 밝히거나 뉘우치지 않고 하는 말을 가리켜 '핑계'라고 합니다. '핑계'는 한자말로 옮기면 '변명'입니다. 국어사전에서 한자말 '변명'을 찾아보면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라고 나오는데, '잘못'과 '실수(失手)'는 같은 말입니다. 하나는 토박이말이고 하나는 한자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국어사전을 엮은 분들조차 '잘못'과 '실수'가 같은 말임을 헤아리지 못하고 낱말풀이에서 이와 같이 적고 있으니, 국어학자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스스로 '핑계'와 '변명'은 같은 낱말이면서 하나는 토박이말이고 하나는 한자말이기만 할 뿐임을 제대로 모르지 않으랴 싶습니다.

 

 ┌ 변명의 여지가 없다 → 둘러댈 거리가 없다 / 핑계 댈 말이 없다

 ├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 핑계를 늘어놓기에 바빴다

 ├ 변명 같지만 → 핑계 같지만

 ├ 구구한 변명을 → 어줍잖은 핑계를 / 어설픈 핑계를 / 자질구레한 말을

 └ 변명 한마디 → 핑계 한마디

 

 다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쓰고픈 말을 써야 하기 때문에, 토박이말이 낫다고 느끼면 토박이말을 쓰고, 한자말이 낫다고 느끼면 한자말을 쓸 일입니다. 영어가 좋으면 영어를 쓸 테지요.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대목은, '한자말 = 우리 말'이 아니라는 대목입니다. 한자말은 그저 한자말일 뿐입니다. 나라밖 말, 외국말입니다. 우리가 '한자말'이라고 따로 가리키는 낱말은 우리 삶에 깊숙하게 녹아들지 못한 말이요, 이래저래 흘러든 말이며, 옛날 지식인들이 여느 사람 위에 올라앉아서 지식을 뽐내면서 저희끼리만 주고받던 말입니다. 우리 삶에 녹아든 말은 따로 한자말임을 밝히지 않을 뿐더러, 굳이 한자 말밑을 어떻게 적는가를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따로 한자를 밝혀서 적어야 하는 낱말은 우리 말이 아닌 '한자말'이고, 따로 알파벳을 헤아리며 적어야 하는 낱말 또한 우리 말이 아닌 '영어'나 '외국말'이나 '바깥말'입니다.

 

 우리는 '한자말을 안 써야 좋다'가 아니라, '우리 삶과 삶터를 짓누르던 권력자들 말을 털어내야 하지 않느냐'입니다. 우리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파고들면서 우리 말을 짓누르거나 밀어내는 얄궂은 바깥말을 솎아내야 하지 않느냐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자 영어를 배우고 쓸 수 있습니다만, 오늘날 우리 세상 흐름은 '어깨동무를 하고자 배우고 쓰는 영어'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참멋을 모르며 겉멋에 치우치는 영어가 아니랴 싶습니다. 예나 이제나 권력이 되고 있는 영어입니다. 돈벌이에 치우친 장사속이 되고 만 영어입니다. 공무원이 한글과 영어 두 가지로 공문서를 써야 할 까닭이 어디 있고, 이렇게 하면서 시간을 헤프게 버릴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구나 영어를 배우며 쓴다고 하면서 우리들이 서로서로 주고받을 우리 말은 엉터리로 익혀서 얄궂거나 비뚤어지게 쓰면 어찌 되고요.

 

 ┌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 뭐라고 해야 하지

 ├ 뭐라고 하지

 └ …

 

 스스로 제 말을 버리는 사람은 스스로 제 삶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제 글을 잊는 사람은 스스로 제 마음을 잃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제 말을 내치는 사람은 스스로 제 일과 놀이를 내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제 글을 엉터리로 놓아 두는 사람은 스스로 제 이웃과 동무가 어떻게 되든 팔짱 끼고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옳게 말하지 못하니 아무런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스스로 얄궂게 글을 쓰니 어떠한 구실을 붙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길을 걷지 못하니 달리 까닭을 늘어놓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슬기롭고 알차게 살아가려 하지 않으니 우리 삶터가 두루두루 슬기롭고 알차게 가꾸어지기 어렵습니다.

 

 말 한 마디만 잘 써야 하는 일이 아니라, 말 한 마디부터 잘 다스려야 하는 일입니다. 글 한 줄만 잘 여미어야 하는 삶이 아니라, 글 한 줄부터 곰곰이 되짚을 줄 아는 삶이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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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의#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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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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