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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주,   이웃에 사는, 중학교 적 동무, 현주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얘, 너 이 달에 북녘동포돕기 성금 벌써 보냈어?" 
"응. 은정이 엄마랑 함께 '샘의료복지재단'에 보낸지 며칠 됐어. 왜?  보내줄까?" 
"그래. 북녘동포돕기에 100달러 보내고, 한국에는 지난 번처럼 불우이웃, 다섯 사람만 찾아서 한 집에100달러씩 500달러만 보내줄래?" 

현주는 먹고 싶은 것도 아끼고, 입는 옷은 얻어 입기도 하고,  중고품 파는 데를 지나가다 쓸 만한 옷을 보면 1달러이나 2달러주고 사입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더러는 남편 몰래 이웃돕기 운동을, 마치 숨쉬는 일처럼, 쉬지 않고 하고 있는데, 한국이나 북녁동포를 도울 때에는 내 개인수표로 보냅니다. 현주 개인수표를 쓰면 남편이 다 알아버리게 되니까요.  잔디깎이일을 하는 남편이 땀흘려 일하고 번 돈을  몰래 보내니 늘 미안해 합니다. 

그렇지만, '나도 부인으로, 엄마로, 이 집안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으니 요만큼은 쓸 권리가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 미안함을 달래고 이겨냅니다.  왜냐하면 현주에게는  '돕는일'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할 일'이기 때문이랍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득달같이 100달러짜리 수표를 써서 '샘의료복지재단'으로 부쳤습니다.  현주가 보내라고 했으니 단 한시도 머뭇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머뭇거리는 동안 누군가 도움을 못받아서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샘의료복지재단'에서는 150불 받은 지 얼마 안됐는데 또 내 이름으로100달러를 받으니 참 갸륵하게 생각하겠네요. 

지난 번, 한국에서 아는 동생, 은정엄마가 왔을 때에, "언니, 언니가 보내는 북녘돕기단체에 나도 100달러만 보내 줘." 하면서 100달러를 내놓았어요.  그런데 나는 한 동안 북녘돕는일에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2008년도 3월, 우리 엘에이 평통위원들은 북녘동포에게 비료보내기 행사를 하면서 광고 협찬과 저녁 티켙을 팔아 모금을 마련했습니다. 어차피 보낼 비료를 농사짓기 앞서에 꼭 보내고 싶었던 우리 평통위원들은 시간을 다투며 티켙을 팔고, 100달러짜리 저녁은 안먹어도 되니 10달러만 하겠다는 사람들 정성을 모아서 눈물겨웁게 몇 만불(아마도 3만달러쯤) 을 모았습니다.  빨갱이라는 소리도 달갑게 삼켜가면서…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이북과 마찰이 생기자 한국 평통에서는  비료는 못보낸다고 했다지요.  이북에 가는 몇몇 위원들이 중국에 들려 비료를 사기로 했는데 그만 몇 천 달러어치, 비타민만 사가지고 갔답니다.  그리고 남은 돈은 신탁구좌에 넣었다는군요. 

그때만 해도 이렇게 기운이 빠지진 않았어요.  그 여름에 대통령 초청으로 쉐라톤 호텔에 사흘동안 머믈렀다 돌아 와서는 그예 평통에서 나왔습니다. ' 평통'이란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고 우리 스스로 나서서 일하는 기관인줄 알았던 내가 잘못이지요. 

그 뒤로는 어쩐 일인지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은정엄마에게서 100달러를 받고 보니 그동안 너무 쉬었지 뭐예요.  어디로 보낼까 궁리를 하다가 50달러를 더해서 '샘의료복지재단'으로 보냈지요.  곧 그 곳 간사 집사님한테서 고맙다고 전화가 오고 기도모임에 와 달라고 했지만, "기도모임에는 안 갑니다"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그러께,  이북에 갔다 온 '샘' 사람들 간증모임에 갔더니 바로 그 간사님이, '불쌍한 북한 동포들 영혼을 구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중국에 들렸더니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악귀를 쫓으려고 얼룩덜룩한 천을 대문밖에 내달았는데  이나라 사람들도 어서 전도해야 한다'는 간증을 듣고는, 더는 그 모임에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만으로 문둥병자를 고치셨듯이,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이 곧 우리에게 떨어진 몫이고, 이웃들 영혼은 오롯이 하나님 몫이라고 나는 믿어요. 누구 영혼이 더 불쌍한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서요.  동포와 이웃 살리는 일은 선교와 봉사를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와 봉사를 하는 김에 하는 일이 아니어요. 

그래도 이 단체가 있어, 선교를 하면서 북녁동포들을 살리고 있으니 이 곳이나 정토회말고는 보낼 곳을 알지 못한답니다. 아이 참!  이야기가 딴 길로  새고 있네요.

현주돈, 100달러를 '샘'에 보내고 난뒤,  부리나케 한국에 있는 동무, 선옥이한테 전화를 했지요. 선옥이는 천주교에 다니는 신자입니다.  한 다섯 해 앞서, 내가 다니던 교회, 양무리 성경모임에서 어떤 집사님이, "우리 이렇게 만나서 성경 공부한답시고 세상 이야기나 하지 말고 보람있는 일을 합시다.  한 사람이 10달러씩 모아서 한국에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일을 하면 어떨까요?"  하고 말을 하자,  나는 귀가 번쩍했지요.  내가 늘 하던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다들 한국에 아는 사람들이 없다고 해서 내가 나섰어요. 

성당에 다니는 선옥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부모가 집을 나갔거나 아파서 돌볼 수가 없는 아이들 셋을 재빠르게 찾아 주어서, 한 달에 한 아이에게 50달러씩,  150달러를 다달이 보내는 일들을 세 해도 넘게 했지요. 그런데 지난 해부터 형편들이 안좋아 진데다,  TV에 예쁜 배우들이 나와 월드비젼에서 하는 광고들을 보고는,  경제대국인 한국보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지역이 더 가난하니 그 곳을 먼저 도와야 한다며 끊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너그러운 사람이 아닌지 굶는 내 집안 식구들 놔두고 밖에 사람들에게  손이 펼쳐지지가 않네요.

"선옥아, 나 아는 어떤 사람이 조금씩 모은 돈, 500달러를 불우이웃에게 보내고 싶어하는데 네가 알아봐. 일주일뒤에 한국 가는 은정엄마한테 보낼께."
"누군데?"
"너 모르는 사람이야." 
현주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욱박질러서 할 수없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은정엄마도,
"언니,  200달러는 내가 지금 돕고 있는 공부방에다 보낼께.  신림동에 있는 공부방인데 부모들이 일하러 나간 사이에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시키켜 돌보는 단체야"하며 나섰어요.

선옥이는, 쌍둥이 데리고 고생하는 어느 미혼모에게, 다섯 아이들 데리고 삼척에서 사는 어느 홀아버지와 두 동생을 둔 한 어린이 가장에게 100달러씩 보내기로 하고, 누군지 모르지만 고맙다며 동무들에게도 알려서 더 모으겠답니다.  

모두들 팔을 걷고 나서니 신바람이 절로 나네요.  현주에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알아야 해. 그래야 왼 손도 나서지"  하며, 한국 동무들에게 알리려 했더니 펄펄 뛰고 난리를 떨어, 할 수 없이 이 곳에라도 알리고 있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면서. 
그러나 저러나 현주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아이고!  나는 죽음입니다.


#북녁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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