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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로 활동을 했으며, 한국서예협회 감사를 지낸 서예가 금헌(琴軒) 석진원(石振源) 선생의 서예전 초대장이 사무실로 왔다.

오는 3일(금)부터 29일(수)까지 경기도 광명시 경륜장 내 스피돔 갤러리 4층 전시장에서 1차 전시회가 열리고, 그의 고향인 경북 영주시의 시민회관 전시장에서도 30일(목)부터 5월5일(화)까지 2차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금헌 석진원 선생의 서예 작품
▲ 서예 금헌 석진원 선생의 서예 작품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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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러 서예대전에 초대작가로 활동한 경력과 함께 대한민국현대서예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을 맡는 등 한국 서예계에서는 이미 중견작가로 자리를 잡은 서예가다.

나는 서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린 시절 집안 어른들이 쓰는 붓글씨가 대단해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나중에 나이가 들고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판단하는 것에도 재능이 필요하고 상당한 노력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잘 쓰는 것에도 대단한 애정과 땀방울이 숨어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서예가 금헌 석진원 선생
▲ 작가 서예가 금헌 석진원 선생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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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고등학교 은사 분이 붓글씨에 조예가 깊다고 해서 한번 찾아 갔더니만, 동행한 친구가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것들을 보면 글씨를 확대해도 축소해도 그 느낌이 동일하다'라고 했다.

단순히 힘과 기교를 담아 붓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일정함과 간결함이 확대와 축소를 해도 차이가 없는 것이 좋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래서 사무실로 돌아와 굵은 매직으로 몇 글자를 써서 확대복사와 축소복사를 몇 번 했더니 정말 글씨가 엉망이었다. 비율도 맞지 않고 느낌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는 붓글씨를 한다는 사람, 특히 서예가들을 만나면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그는 간혹 대규모 행사장에서 붓글씨 퍼포먼스를 한다. 지방도시나 단체, 기업의 초청으로 가서 글을 한 번씩 써 주면 보통의 월급쟁이 6개월분 정도의 사례비를 받는다고 한다. 작품 가격도 보통 200~300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많다.

금헌 석진원 선생의 서예 작품
▲ 서예 금헌 석진원 선생의 서예 작품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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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남들이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대한민국서예대전에 입선과 특선을 여러 번 했고, 이후 초대작가도 수차례 하면서 한국서예계의 거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그의 명성은 중국에까지 알려져 북경미술관에서는 한중 교류전을, 섬서(西安)성 미술관에서는 초청전을 열기도 했다.

특히 한국 최고의 예술가들만 전시가 가능하다는 예술의 전당에서도 다섯 차례 전시회를 개최했고, 고향 영주시에서도 시민회관에서 영주가 생기고는 처음으로 서예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명성은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한국서예협회 감사 등 화려한 경력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봉직하기도 했던 대한주택공사 서예 강사를 포함하여 배화여자전문대학 서예 강사, 한국마사회 서예 강사 등으로 출강하기도 하다.

금헌 석진원 선생의 서예 작품
▲ 서예 금헌 석진원 선생의 서예 작품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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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원 선생은 경북 영주시 출신으로 비단전을 경영하던 조부의 강압(?)으로 서예를 시작하게 되었고, 40년 가까이 서예를 통해 자신을 다스리면서 세상을 배웠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조부에게 서예를 배웠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한국 최고의 대가이며,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을 지낸 정환섭 선생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인 사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선생의 도움으로 국전 입선과 특전을 거듭하고 자신도 심사위원과 초대작가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난 1977년부터 88년까지 12년간 주택공사에 근무하면서도 꾸준히 서예를 했지만, 본격적인 서예를 하기 위해 1988년 사표를 내고 서실을 마련했을 때는 가족들의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생각해 보면 인생은 늘 새로운 도전이기에 21년 전의 모험이 인생의 앞길을 확정짓는 큰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현재는 상계동의 서실과 건국대 인근에 있는 집을 오가면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고, 몇 군데 강의를 나가면서 서예에 관심이 있고 조예가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다지고 있다.

4년 전부터는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쳐 보겠다는 꿈을 안고 영주에 서실을 열었다. 현재 그의 서실에는 영주는 물론 예천, 봉화, 안동 등지에서 서예에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는 사람20~30여 명이 서예를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또한 사회봉사 차원에서 영주서실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전액 모교인 영광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희사하고 있어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를 만나면 열심히 살고 한 분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테니스와 약주를 무척 즐긴다는 그는 그를 닮은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자녀들이 그의 예기(藝氣)를 물러 받아서인지 딸 둘은 강남에서 플로리스트로 활동 중이고, 대학 다니는 아들은 사물놀이에 빠져 있다. 그림을 잘 그리던 그의 동생도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예인(藝人)가족이다.

금헌 석진원 선생의 서예 작품, 죽령 고개 위에 있는 경상북도 영주시를 나타내는 경계석이다. 그는 소백산의 연화봉에도 영주 연화봉을 알리는 경계석의 글을 쓰기도 했다.
▲ 서예 금헌 석진원 선생의 서예 작품, 죽령 고개 위에 있는 경상북도 영주시를 나타내는 경계석이다. 그는 소백산의 연화봉에도 영주 연화봉을 알리는 경계석의 글을 쓰기도 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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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평론가인 정충락 선생은 금헌의 글을 평하면서 '시대에 순응하는 조화로운 서예구성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평면조형을 자유롭게 하는 자유인'이라고 논하고 있다. 또한 그의 글이'그의 조형사상에는 근원적으로 전통의 서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시대적인 분위기의 형태를 도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자리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한자는 물론 한글의 고금서체에 두루 능하고, 그림과 색상도 자주 등장하여 문인화가를 연상하게 된다. 그의 그림은 글씨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색채의 동원으로 글씨와 그림은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금헌의 글씨 퍼레이드는 다양한 조형의지를 통하여 한꺼번에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감이 넘친다. 글씨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찰라 예술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의미가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의 글은 지나치게 친절하다. 거의 모든 작품에 설명문이 종횡으로 함께 서사되어 있다. 이는 이해가 편하도록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읽어진다. 그래서 나쁠 것은 없지만, 해석은 읽는 이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어떨까 싶다'라고 재미있게 작가를 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서예가 금헌 석진원 선생 개인전, 전시 일정

1차전 2009. 4. 3(金) ~ 4. 29(水)
광명시 경륜장 내 스피돔갤러리 4층 홈페이지 http://speedom.cyclerace.or.kr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 780번지 , 02-2067-5216)
초대일시 2009. 4. 3(金) 오후 5시

2차전 2009. 4. 30(木) ~ 5. 5(火)
경북 영주 시민회관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2동 470-62, 054-634-3124)
초대일시 2009. 4. 30(木) 오후 5시



태그:#서예가 , #금헌 석진원 , #서예전 ,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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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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