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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를 가는 오체투지 순례자들

 

작년이었던가. 모 방송국에서 '차마고도(茶馬古道)'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중국 원남·쓰촨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무려 5000㎞나 이어지는 머나먼 길.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서 생겨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였다. 그 길을 오가며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른 말을 팔고 대신 중국의 차(茶)를 사갔다.

 

티베트 유목민들에게 있어 차는 단순히 기호식품이 아니었다.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체에 필요한 비타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무역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무역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교역이었다. 그렇게 수천 년을 이어 오는 동안 저절로 길이 된 것이 차마고도였다.

 

깎아지른 듯한 수백, 수천 길 협곡. 그 옆구리에 구불구불 갈짓자 형태로 뻗은 길. 새와 쥐만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다 해서 '조로서도(鳥路鼠道)'라고도 불렸던 길. 그 길 양쪽으로 호위하듯 달리는 거의 삼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위태롭게 솟은 해발 5000m가 넘는, 하얗게 눈쌓인 준봉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에서 전율이 일 지경이었다. 그런 길 위에서 생의 대부분을 지내야 하는 유목하는 삶이란 얼마나 장엄한 것인가.

 

그러나 포장된 도로가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차마고도는 점점 인적이 드문 길이 되어버렸다. 망각의 길·추억의 길이 돼 갔다. 그러나 아직도 그 길을 떠나지 못하고 옛날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마방(馬幇)들이 있다. 생필품을 팔고 사는 마방들도 있고 험산 준령을 넘나들면서 약초를 캐는 마방들도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내 마음 깊숙이 잠자던 원시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나를 크게 감동시킨 것은 그 길을 따라 불교의 성지인 티베트 라싸로 가는 순례자들의 모습이었다. 차마고도는 단순한 무역로 아니었던 것이다.

 

일천 년 전, 이 길은 티베트 불교가 라싸에서 윈난·쓰촨 지역으로 전파되던 경로였다. 그러기에 불교를 신앙하는 티베트 사람들에겐 생을 마감하기 전에 꼭 한 번은 걷고 싶은 길이었다. 세상의 어느 길보다 신성스런 길이었다. 순례자들은 직립보행하지 않았다. 오체투지(五體投地)가 그들의 보행법이었다. 오체투지란 몸의 다섯 부분, 즉 오체(五體: 이마, 양 무릎과 팔꿈치)가 땅에 닿게 하는(投地) 인사법이다. 땅에 바짝 엎드리면 몸은 작은 벌레처럼 아주 낮아진다. 몸이 낮아짐으로써 마음도 덩달아 낮아지는 게 된다. 저절로 하심(下心)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오체투지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최대의 존경의 표시이다.

 

쓰촨에서 라싸까지 순례의 길은 장장 2100km. 하루 이동 거리는 대략 6㎞ 정도. 순례자들은 차갑게 얼어붙은 땅에 온몸을 땅바닥에 던지면서 순례의 길을 가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응원하듯 그들을 지켜봤다. 바라보는 사람이 오히려 숨이 턱턱 막히고 조바심 나는 고행의 순례였다. 그들은 그렇게 오체투지를 하면서 몇 개월에 걸쳐 험난한 순례를 해냈다. 손에 끼는 나무 장갑 몇 켤레를 닳아 뜨리면서.

 

왜, 무엇 하러 고통스러운 오체투지를 하는가

 

절에 가면 법당에 좌복 위에서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볼 때가 있다. 절을 올리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그 사람이 지닌 신앙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진다. 절이란 사람의 마음 속 간절함을 밖으로 보여주는 척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고도'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내내 하나의 화두처럼 깊이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가를 생각했다. 특히 신앙의 깊이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것인가를.

 

사람의 몸이란 욕망의 집이다. 그 집은 쉴 새 없이 자라난다. 여차하면 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옮기려는 사람들의 경향과 많이 닮아 있다. 고통은 욕망을 제어하는 힘이다. 육신에 주어지는 처절한 고통과 그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욕망은 비로소 배출구를 얻는다.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그렇게 욕망이 소멸한 자리엔 자연스레 깊이가 축적되는 것이다. 그렇게 영혼의 깊이, 신앙의 깊이가 형성되는 것 아닐까.

 

오체투지로 티베트 라싸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우리나라 불교신자들이라면 저런 고행을 견뎌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어쩌면 문명에 길들어져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우리나라 불교신자들은 먼저 저런 고행이 과연 필요할 것인지부터 먼저 따질는지 모른다. 왜? 무엇 떄문에? 그리고 속으로 가만히 '저런 쓰잘데기 없는 고행을 왜 해? 그런 고행 따윈 쌈 싸 먹어!'라고 외칠는지 모른다. 더러 고행의 효용성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요성을 긍정하는 것과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우린 너무 깊숙이 문명의 덫에 갇힌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라. 우리 곁에도 그렇게 오체투지 순례를 행동으로 옮긴 이들이 있으니. 새만금 공사 중단을 내걸고 삼보일배를 시작했던 수경 스님·문규현 신부 등을 비롯한 순례단이 그 주인공들이다. 2003년 봄의 일이었다. 전북 부안의 해창 갯벌을 출발한 그들은 최종 목적지인 서울까지 57일간 305㎞의 길을 삼보일배를 계속하면서 걸었다. 아쉽게도 삼보일배 순례는 비록 새만금 공사 중단이라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자연생태계 보전에 대한 경각심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 수경 스님·문규현 신부 등 순례단은 다시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2008년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구례 · 남원 · 완주 · 논산을 거쳐 10월 26일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 도착하는 길고 험한 노정(路程)이었다.

 

왜 그들은 53일 동안이나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오체투지 순례를 시작했을까. 그들의 발원문·기도문 등을 살펴보면 대번에 순례의 목적이 드러난다. 수경 스님은 "이 천박하고 황폐한 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이 길을 떠난다고 했고 문규현 신부는 "오체투지, 이 여정은 특히 손에 가슴에 생활 속에 촛불을 피워 올린 청소년들과 수많은 국민들에게 드리는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라고 했다.

 

국민의 기초적인 권리마저 위협하는 짝퉁 민주주의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존엄성 훼손에 대한 경고, 탐욕적인 신자유주의 희생자들인 비정규직 등 이 사회의 소외층과 고통 나누기 등이 순례의 목적이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아마도 촛불정신의 연장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지난 3월 28일, 수경 스님·문규현 신부는 다시 국토순례를 시작했다. 1차 순례를 마친 지 5개월만의 일이었다. 아직 그 노독이 채 풀리지도 않았을 텐데 또다시 순례에 나서다니….  그들을 다시 순례길로 내몬 것은 "용산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죄스러움"과 "도덕과 윤리의식의 부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전 부문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서 첫 걸음을 시작한 그들의 최종 목표는 북한의 묘향산까지 가는 것이다. 1차 목표는 임진각 망배단까지다. 총 230km 거리나 되는 짧지 않은 길이다. 이 고난의 노정을 통해 다시 한 번 삶에 지치고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삶이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며 얼마나 장엄한 것인가를 보여줄 것이다. 오체투지로 느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그들은 보여줄 것이다. 남보다 더 빨리 가려 하지 마라. 더불어, 함께 가는 건 이런 것이다. 더디다고 조바심 대지 마라. 속도란 욕망의 다른 말이다. 탐·진·치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에게 말없음으로 더 큰 깨달음을 말해 줄 것이다.

  

익살 - 몸의 고통을 이겨내는 진통제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다시 순례를 시작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이시영 시인의 시 '수경 스님, 규현 신부님'이란 시를 떠올렸다.

 

3월 말 전북 부안의 해창갯벌을 출발한 수경 스님(55)

규현 신부(57)의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

배' 행렬이 스무이틀 만에 드디어 충남 천안에 도착한 날

밤이었습니다. 아스팔트 위 천막 속에서 무릎에 가득 찬

관절액을 빼던 수경 스님이 걱정스런 표정의 규현 신부

에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형님, 나는 이제 한발짝도 더

이상 못 가겠소. 절은 내 전공인데 내가 먼저 나가떨어져

부렀소. 그러고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하자고 했을 때

나잇살이나 더 자신 형님이 어이 동생 하면서 이를 말렸

어야지 그래 나보다 더 좋아라고 앞장서서 달려들면 어

쩐다요?" "내가 말린다고 자네가 듣기나 할 사람인감?

그러고 내 손은 약손인게 이제 곧 시원해질 거여. 서울이

바로 코앞이여. 죽더라도 조계사 문턱을 베고 죽자고. 그

래야 자네 부처님께서도 좋아하실 거 아닌가. 자네와 내

가 힘을 합치면 못이룰 게 없어. 이 세상에......"

  그날 밤 세찬 빗소리가 밤새도록 아스팔트를 때렸습니

다. 이튿날 수경 스님은 정말 감쪽같이 일어나 오체투지

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햇발 아래 엎드린 규현 신부를

빙그레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어젯밤 꿈에 형님 어머님

께서 찾아오셔서 네 이놈 중놈, 우리 신부아들 살려내라

고 마구 야단을 치십디다그려! 그래서 내가 벌떡 안 일어

나부렀소."

- 이시영 시 '수경 스님, 규현 신부님' 전문

 

시를 쓴 이시영은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월간문학」 제3회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지금까지 상자한 시집으로는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이슬 맺힌 노래> <무늬> <사이> <조용한 푸른 하늘> <곧 수풀은 베어지리라> <바다 호수> <아르갈의 향기>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등이 있다.

 

이 시는 이시영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인 <은빛 호각> 속에 수록된 시다. 자전적 색채가 짙은 시편들이 많은 시집이다. 시인이 문단 안팎에서 만났던 사람과 그들과의 만남에 얽힌 체험담이 담시 형태로 여러 편이 수록돼 있다.

 

계엄법 위반으로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던 신경림, 조태일 시인 등의 꾸밈없는 모습을 묘사한 '1980년 여름 종로경찰서', 황석영 방북 사건 당시 창비의 주간으로서 안기부에 연행되었을 때 담당 수사관과의 일화를 적은 '짧은 이별의 순간', 연변에서 소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취재 중이던 소설가 최명희와의 만남에 대해 쓴 '최명희씨를 생각함', 죽음을 맞는 마지막 순간까지 혁명가로서의 꼿꼿한 삶의 자세를 절대 흩트리지 않았던 김학철 옹의 혁명가적 모습을 그린 '노 혁명가의 죽음' 등의 시편들이 대표적이다.

 

이시영 시인은 일찍이 대학시절에 문단에 나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80년대 이후엔 창작과비평사의 편집장·주간·부사장 등을 두루 거쳤던 분이다. 이 시편들은 그런 이력을 살아낸 이시영 시인이 아니면 쓰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래서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속엔 시인 개인의 자전적 요소를 넘어 지난 시대의 모습까지 투영돼 있다. 

 

수경 스님의 관절염이 자주 심술을 부리지 않기를

 

시 '수경 스님, 규현 신부님'은 2003년 '새만금 살리기' 3보1배 중에 생긴 일화를 이야기 식으로 쓴 담시다. 불교와 천주교라는 종교의 간극을 넘어 한 시대를 같이 아파하면서 같이 걸어가는 정신적 도반 수경스님과 문구현 신부의 이야기가 산문시 형식으로 펼쳐져 있다.

 

삼보일보 순례의 결과물일까. 시는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걸린 수경 스님이 무릎에 괸 관절액을 빼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활액막에서 분비되는 관절액은 연골에 영양을 공급한다고 한다. 관절염이 진행된 환자들은 활액막에 염증이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관절액이 과도하게 만들어져 관절이 붓는다는 것. 그런데 염증 때문에 생긴 관절액은 본래의 윤활·영양 등의 기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연골이 더 쉽게 파괴된다고 한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의 물 속에는 염증을 일으키는 성분이 있어 가끔 빼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냥 두면 고통스럽고 연골을 더 파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시를 읽다 보면 관절액을 빼던 수경 스님이 문규현 신부께 애교 섞인 투정을 벌이는 모습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하고 두 사람의 순례에 임하는 각오와 우정어린 대화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특히 "어젯밤 꿈에 형님 어머님께서 찾아오셔서 네 이놈 중놈, 우리 신부아들 살려내라고 마구 야단을 치십디다그려! 그래서 내가 벌떡 안 일어나부렀소"라고 하는 수경 스님의 너스레가 우리를 미소짓게 한다. 어두웠던 시대에 겪어야 했던 고통과 아픈 기억들을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분노 대신 맑은 서정과 간명한 언어로 은근히 속삭이는 이시영 시의 매력이 한껏 발산된 것이 시 '수경 스님, 규현 신부님' 이 아닌가 싶다.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은 우리 시대의 초인이다. 지치지 않는 발걸음으로, 망설임 없는 오체투지로 국토를 순례하면서 예언자적 목소리로 잠든 세상을 깨운다. 시집 제목을 빌리자면 병든 시대를 향하여 인제 그만 일어나라고 '은빛 호각'을 부는 것이다. 아무쪼록 두 분의 고난에 찬 국토순례가 뜻한 바대로 아름다운 결실을 거두길 기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경 스님의 관절염이 자주 심술을 부리지 않기를 ….


태그:#이시영 ,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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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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