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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꼬마에게 놀이터가 되어주던 나무. 아이가 성장하자 자신의 열매를 제공,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어른이 된 아이는 나무의 가지로 집을 짓고 줄기를 베어 배를 만든다. 오랜 세월이 흘러 어느덧 노인이 된 아이. 나무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밑동마저 휴식처로 내어준다.

셸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줄거리다. 동화 속 소년처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며칠 뒤면 식목일. 겨울의 시련을 묵묵히 견뎌내고 새 봄을 맞은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천안호두 명성 잉태한 광덕 호두나무

 천안 광덕사에 있는 천연기념물 호두나무.
 천안 광덕사에 있는 천연기념물 호두나무.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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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699m. 천안과 아산 등 3개 시의 경계에 자리한 광덕산. 예로부터 산이 크고 넓어 덕이 있는 산이라 불렸습니다. 호서지방의 명산인 그 곳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해지는 광덕사가 있지요. 제가 수백년째 뿌리를 틀고 살아가는 곳이랍니다.

제가 누구냐고요? 광덕사 호두나무입니다. 절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계단 옆에 자리한 저의 공식 명칭은 '천연기념물 제398호 천안광덕사 호두나무.' 9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니, 벌써 10년이 흘렀네요.

전설에 의하면 저는 약 7백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9월에 영밀공 유청신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호두나무 묘목을 가져와 광덕사 경내에 심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착안해 제가 사는 곳을 일컬어 호두나무 시배지라 부르기도 하지요.

전설인만큼 사실여부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가슴 둘레 2.5m를 헤아리고 높이 18m가 넘는 제 나이는 어림잡아 4백살. 유청신의 시대와 상당한 시차가 있고 저보다 앞서 다른 지역에서 호두나무 존재를 증거하는 역사 사료도 많습니다. 그래도 제가 있어 호두나무의 고장이라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나요?

호두나무, 비상을 꿈꾸다!

천안의 광덕은 한때 호두 주산지로 이름나고 집집마다 호두나무 몇 그루쯤은 심겨져 있었죠. 이 고장 어르신들은 저의 자손뻘인 호두나무들을 '효자나무'라고 불렀습니다. 나무에서 열리는 호두를 팔아 아이들 공부 시키고, 가계살림에도 도움 받았으니, 저만한 효자도 없었죠.

근래에는 수난도 적지 않았습니다. 호두 수확철이면 출몰하는 청설모로 상처를 많이 받았죠. 몇 해 전부터는 청설모 꼬리를 잘라 가면 면사무소에서 수매해 5천원을 지급합니다. 수매제 덕분에 청설모 숫자가 줄어 한결 시름을 덜었습니다.

생산량도 영동호두에 뒤처지며 호두 주산지라는 명성이 퇴색됐지요. 말은 못해도 속앓이가 컸습니다. 요즘은 다행히 반가운 소식도 들립니다.

호두살리기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진 데 이어 2006년부터 매년 가을 호두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작년 12월에는 '천안호두'라는 이름으로 '지리적 표시' 등록도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저처럼 광덕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 호두나무는 아니지만 풍세 남관교에서 광덕사 주차장까지 12㎞ 구간에 호두나무 가로수 길이 조성됐지요. 수종개량과 재배단지 확충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답니다.

호두나무 숫자도 점차 늘고 있으니 천안호두의 명성을 되찾을 날도 멀지 않았겠지요.

천안삼거리의 명물, 능수버들

 천안삼거리 공원에 있는 능수버들의 모습.
 천안삼거리 공원에 있는 능수버들의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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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삼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휘늘어 졌구나 에루화 좋다 흥~ 성화가 났구나 흥~."

제 애창곡인 '흥타령'의 한 소절이죠. 흥타령 속에 나오는 능수버들. 다름아닌 '저' 랍니다. 천안삼거리공원에 들르면 호숫가에 낭창낭창한 가지를 늘어뜨린 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광덕사 호두나무는 천연기념물이라고 뽐내죠. 저는 1960년 천안시 나무(시목)로 지정됐답니다. 시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천안의 도심에서 저나 버드나무를 흔히 볼 수 있던 시절도 있었죠. 지금은 아니랍니다.

여기서 잠깐, 제 족보를 설명해드릴까요? 가지가 길게 늘어지는 능수버들과 수양버들, 냇가에서 비스듬하니 운치 있고 크게 자라는 왕버들 등을 가리켜 흔히 버드나무라 부릅니다. 조금씩 특징이 다르지만 계통상 한 가족이죠. 문헌에서도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해 1월 현재 천안의 가로수는 3만5064본.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수종은 은행나무(25.94%)입니다. 제가 속한 식물종인 버드나무는 4백87본. 전체 가로수의 1.39%에 불과합니다. 시목치고는 미미한 비중이죠.

2002년 초쯤만 해도 가로수 가운데 버드나무가 9백13본 있었죠. 7년새 4백여본이 사라졌습니다. 발이 없는 제가 이사라도 갔을까요? 아닙니다. 모두 베어졌습니다.

도심에서 퇴출당한 버드나무

 봄 바람에 가로수로 심어진 능수버들의 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봄 바람에 가로수로 심어진 능수버들의 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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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신부동 터미널 사거리에서 청룡동 삼용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충절로. 5㎞의 충절로 구간에는 길 양켠에 4백본에 가까운 버드나무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천안중학교 앞 등 일부 지역에만 듬성듬성 남았죠. 충절로 다른 구간의 버드나무는 모두 제거됐습니다.

지난 70년에 식재해 수령이 30여 년을 경과한 성목이 된 원성천의 버드나무도 대다수 제거되고 현재는 일부만  명맥을 잇고 있답니다.

봄이면 가장 먼저 잎을 내어 초록의 세계를 연출하는 도심의 능수버들. 제 친구들이 제거된 배경에는 버드나무 솜털을 둘러싼 오해가 컸답니다.

솜털이 꽃가루 알러지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죠. 사실 4~5월경 하얀 솜뭉치처럼 날리는 제 솜털은 꽃가루가 아니기 때문에 알러지 질환과 무관합니다. 오히려 버드나무는 가로수로 이점이 많습니다. 오염된 도시환경에서 견뎌내는 힘이 강하고 환경오염 방지 효과도 뛰어나답니다.

제가 다시 도심에서 시목의 위세를 떨칠 수 있을까요? 올해 천안시는 거리 곳곳에 6백40본의 가로수를 심을 예정입니다. 대부분 벚나무나 이팝나무이고 버드나무는 없답니다.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천안시 양묘장에는 가로수용으로 사용될 버드나무 5백본이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솜털 발생에 따른 주민 불만을 의식해 천안시가 도심에 버드나무를 가로수로 심을지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20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안호두나무, #천안능수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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