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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저녁 무렵, 서소문에 위치한 한 호프집에 삼삼오오 언론인들이 모이고 있었다. 백발의 노신사도 있었고, 현역에서 뛰는 젊은 기자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이 있다. 통상 진보언론인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언론인 김주언의 책 <한국의 언론통제> 출간을 기념하는 한편 이미 정점으로 치닫는 현 정부의 언론통제 상황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김주언은 1986년 <말> 특집호에 정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구속되면서 강단있는 기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정부의 언론통제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진행되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주었고 이후 이어진 민주화 운동에서 언론노동운동이 필요한 이유를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2년부터는 기자협회장을 지내는 등 언론민주화의 선봉에 섰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이승복'을 통해서다. 사건의 발단은 1992년 김종배 기자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상징적 문구로 인해 반공의 상징이 된 이승복의 이야기가 충분한 취재가 없는 상태에서 왜곡된 것이라고 보도하면서부터다.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던 김주언은 이 기사를 전시했고, 논란 후에 <조선일보> 등이 고발해 이 사건은 법정에 서게 됐다. 수차례의 논란 끝에 올 2월 12일 대법원이 기사에 대한 확인이 부족한 채 전시했다는 이유로 500만원의 배상을 확정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쓴 김종배 기자는 직접 광범위한 조사를 해 허위보도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중적인 판결이 나왔다.

 

한국 언론운동의 선도자들은 동아투위나 언론통폐합을 경험한 이들로 리영희, 김중배, 정연주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세대 이후에 언론운동은 87년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이들이다. 1986년 보도지침을 폭로한 김주언도 이런 세대에 속한다. 이들은 이후 조중동이라는 언론권력과 맞서면서 언론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절망스러운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번 출판 기념회이자 '민주언론 봄맞이 난장'에서 만난 이들도 모두 현재의 언론 상황에 입을 떼기 힘들었다. 사실 이번 책의 부제가 "언론통제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길 염원하며"인데 이는 불과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좌초했다. YTN 사태나 MBC PD수첩 사건은 머잖아 기록될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추악한 언론통제사에 포함될 테니 말이다.

 

언론 통제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우리 당대 역사서로 봐도 된다. 우선은 이미 4부로까지 성장했다고 하는 언론통제의 이데올로기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한다. 3장에는 그가 폭로했던 보도지침의 전반을 통해 권력의 언론통제의 메커니즘을 풀어낸다. 이후에는 각 정권별로 언론통제의 실상이나 정책 등을 풀어낸다.

 

지난 10년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설마 옛날과 같은 언론통제의 시대가 오겠느냐는 믿음을 갖게 됐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지 1년도 되지 않아 우리 언론의 상황은 10년 전으로 회귀한 느낌이다. 우선 권력자들은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길들여온 광고시장의 변화와 재편을 통해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물론 언론정책을 책임지는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KBS, 언론재단이나 방송광고공사의 인사권을 통해 자신들의 정책을 고집하는 폭압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 거기에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언론인들을 구속하는 사태도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거기에 '진보언론'은 곧 친북 좌파세력이라는 빨간 칠까지 서슴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과연 지금의 상황이 과거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실 이 정도라면 마음대로 권력에 저항이라도 할 수 있었던 87년의 상황이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

 

언론통제의 마지막 기록이길 원한다는 저자의 바람이 출간 후 며칠도 되지 않아 깨지는 상황이기에 김주언의 이번 책은 중요하다.


한국의 언론통제

김주언 지음, 리북(2009)


태그:#김주언, #언론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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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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