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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밤에 운동 삼아 여수시 소호 요트장 주변을 걸었다. 바닷가에서 실뱀장어 잡는 모습을 보고 시작한 취재. 호기심이 부른 연이은 취재랄까. 중간 상인과 뱀장어 양식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자주-

"돈 안되는 걸 알았는지, 사업을 물려받지 않겠다더군. 그 소릴 들으니 씁쓸하대."

사업 23년째인 엄철수(53) 사장은 아들이 사업장을 거부해 내심 서운하다. 그러나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엄철수씨가 여수시 화양면에서 운영하는 뱀장어 양식장.
 엄철수씨가 여수시 화양면에서 운영하는 뱀장어 양식장.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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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를 졸업한 아들은 한 때 지자체가 운영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설 자리가 없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뒀다. 객지에서 월수입 100만 원으로 버티기가 힘든 탓이었다. 그는 놀던 아들을 다잡아 자신의 뱀장어 양식장에서 일을 시켰다.

"지난 해 아들이 5개월간 일했어요. 주말과 명절에도 쉬는 날 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사료를 줘야 하고, 키워봐야 돈이 안되는 걸 알았는지 그만하겠대. 다른 직업을 갖는다며 그만뒀는데 마땅한 일자리가 있어야지. 그러다 지금은 지인의 소개로 골프장에서 수습으로 70만 원 받고 일하고 있지. 고생을 더 해봐야 삶이 어떤 건지 알겠지."

"일본은 가업을 물려받잖아. 거기서 경쟁력이 생기지"

엄철수 사장이 운영 중인 '용화양만'은 대지 1만3223㎡(약 4천평)에 하우스 6600㎡(약 2천 평), 수조탱크 4950㎡(약 4천 평) 규모인 뱀장어 양식업체. 그는 10년간 다녔던 어분공장을 그만두고, 1986년 서른 되던 해에 시작했다. 현재 뱀장어 30t(시가 5억 원 상당)을 키우고 있다.

부채는 14억 원으로 부지와 시설비, 뱀장어 등 자본 대비 제로인 상황. 이렇듯 빚을 제외하면 남는 자산은 없다. 하지만 아들이 외지에서 적은 월급으로 버티는 것보다 이를 물려받는 것이 "백 배 천 배 나을 거"란 계산이다.

엄 사장이 아들에게 사업체를 물려주려는 표면적 이유는 "지금까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버텼는데, 아들이 안하면 폐업으로 인해 투자비가 아깝다"는 것. 그러나 굳이 물려주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료를 준비 중인 직원. 뱀장어에게 하루 새벽 5시와 오후 5시에 꼬박꼬박 사료를 줘야 한다.
 사료를 준비 중인 직원. 뱀장어에게 하루 새벽 5시와 오후 5시에 꼬박꼬박 사료를 줘야 한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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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가업을 계속 물려받잖아. 이처럼 어떤 일이든 3대까지 이어지면 노하우가 축적돼 어떤 어려움에서도 헤쳐 나갈 힘이 생기거든. 그게 바로 경쟁력이지. 경쟁력이 생기면 할만 해."

엄철수 사장은 아들이 아직 고생을 덜했다는 판단이다. 인생을 어느 정도 알면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뱀장어 양식,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우리네 현실

"우리나라 뱀장어 양식장은 모두 250여 개인데, 치어인 실장어가 부족해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을 국내에서 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실례로 "실장어 수입이 연간 10톤이라 하면, 국내에서 잡히는 실장어는 1/3인 3톤 정도고, 나머지 2/3는 수입한다"며 그러나 "해경이 고대구리 불법조업 규정에 따른 단속에만 매달려 어민도 살고 외화도 벌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다"고 주장한다.

"일본, 대만 등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실장어를 손으로 잡고, 그물로도 잡는다. 배에서 그물로 잡을 때, 어민들이 작업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순시선은 옆에서 보호하고 안내한다. 실장어 수입 시 발생하는 외화낭비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는 단속만 한다. 정책적인 접근 자체가 너무 다르다."

그가 이처럼 목청을 높이는 건 바다에 돈벌이가 널렸는데 이를 줍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다. 마리당 400원 안팎인 실장어를 일부만 잡고 나머지는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괜히 음대에 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후회돼요"

엄철수 사장.
 엄철수 사장.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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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철수 사장은 중국산 뱀장어에 대해서도 목청을 높인다. "우리나라산과 중국산 뱀장어는 고기 맛이 달라 경쟁 우위가 확실한데도 이를 살리지 못한다"며 "원산지 표시만 잘 되면 중국산과 경쟁이 되는데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

그는 또 뱀장어 양식업계의 애로사항에 대해 "뱀장어가 스테미너에 좋은 줄은 아는데, 여자들이 싫어한다. 뱀장어에 '뱀'자가 들어가 징그럽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장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쉽게 먹지 않는다"고 밝힌다.

이런 여건이 바뀌면 뱀장어 양식업계가 풀릴까?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가 묵묵히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건 아들이 사업을 물려받길 대비하는 측면이다. 이곳저곳 다녀봐야 취업난을 뚫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결국 아들도 가업을 이을 것이란 계산이다.

"괜히 아들을 음대에 보냈어요. 아들 소질이 음악이라 허락했지만, 직장 구하기 쉬운 과를 택했어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돼요."

엄철수 사장 말이 남일 같지 않음은 왜일까?

사료를 주자 보이지 않던 뱀장어가 몰려들었다.
 사료를 주자 보이지 않던 뱀장어가 몰려들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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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뱀장어 양식장, #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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