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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연수생들을 맞이하는 전남교육연수원 식당 영양사님.
▲ 영어심화연수 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연수생들을 맞이하는 전남교육연수원 식당 영양사님.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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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입니다. 하지만 늘 화창하지만은 않은, 아직은 뭔가 모색하고 있는 듯한, 그런 미완성의 봄입니다. 저는 미완성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생각이 짧거나 인간 됨됨이가 부족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속이 상하다가도 그들이 미숙한 것이지 결코 나쁜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이 쉽게 풀리기도 합니다.

우선 제 자신이 참 미숙합니다. 가끔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생각과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마치 성장통을 느끼는 사춘기의 소년처럼 괜한 일에 마음을 다 써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인지, 지금도 저는 제가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자란다는 것, 자랄 수 있는 자리가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 연수원 식당에서 영양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을 만난 것은 연수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이번 영어심화연수 과정에는 클럽활동(Club Activities)이 교육과정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입한 클럽이 신문반(JLP News)이다 보니 취재차 영양사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신문반이 아닌 다른 클럽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연수일정도 빡빡한 터에 영어로 편집회의를 하고 영어로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제 생각이 바뀐 것은 바로 그 부담스러움 때문이었습니다. 클럽활동을 영어연수과정에 포함시킨 이유는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그 활동과정에서 영어구사능력을 신장시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클럽활동 첫날부터 서로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신문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구체적인 편집계획을 세우면서 언어 소통의 한계와 필요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기사는 연수원 식당(Cafeteria)과 기숙사(Dormitory)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두 곳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나 필요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실에서의 수업을 꽃에 비유한다면 연수원의 식당과 기숙사는 나무의 뿌리나 줄기에 비유할 만합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고 감탄할 줄은 알지만 그 꽃을 피운 나무와 줄기를 눈여겨보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표정 가득한 얼굴로 강의를 하는 원어민 엘리자베스와 연수생들.
▲ 영어심화연수 언제나 표정 가득한 얼굴로 강의를 하는 원어민 엘리자베스와 연수생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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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도 수고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받겠지만 세상이 골고루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꽃과 나무를 함께 바라보는 습관을 갖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제가 연수원 식당을 기사 소재로 염두에 둔 것은 그런 이유 말고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식당에 가면 음식보다도 먼저 우리들을 맞이하는 영양사님의 입가에 핀 환한 미소(Smile),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영양사님의 말로는 그 미소를 짓게 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연수생들이라고 했습니다. 늘 고맙다, 반찬이 맛있다, 수고한다, 이렇게 좋은 말을 해주니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하셨습니다. 그 말에 저는 더욱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공을 남에게 돌릴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이 좋아보였기 때문이지요.

연수원 식당에는 한 분의 영양사와 세 분의 조리사가 계시는데 네 분 중 두 분이 교대로 식당 방에서 주무신다고 합니다. 하루 걸러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하는 셈입니다. 집에서 주무시는 두 분도 아침 5시까지 식당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늦어도 4시 30분경에 출발을 한다고 했습니다. 근무 여건만을 감안한다면 그분들의 입가에 피어 있는 미소를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날 밤 연수일정을 모두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마음에 떠오른 대로 연습 삼아 몇 줄을 써보았습니다.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a cafeteria. food? Cleanliness? or Price? If you choose one of them, I agree. But they are not all. One more thing is left. Going to the JLP cafeteria, you can find out what it is. That is a beautiful flower made by nutritionist's face; a smile.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음식? 청결? 아니면 가격? 만약 당신이 그 셋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동의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전남교육연수원 식당에 가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영양사님의 얼굴에 핀 아름다운 꽃, 바로 미소이다.)      

식당에서 영양사님을 만난 그 다음날 오후, 저는 두 분 여선생님이 함께 쓰시는 기숙사 방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사전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개인이 쓰는 방을 엿본다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금남의 지역에 들어서는 기분이 묘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기숙사에 대한 연수생들의 생각이나 정보를 알기 위해서라면 굳이 방을 방문할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런  자료야 설문조사를 하면 얻을 수 있겠지만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글이나 문건으로는 전달받을 수 없는 어떤 정서랄까, 느낌 같은 것이었습니다.

만난 지 한 달이 채 못 되었지만 친 자매처럼 다정해보이는 박상미(우)교사, 장소영(좌)교사.
▲ 영어심화연수 만난 지 한 달이 채 못 되었지만 친 자매처럼 다정해보이는 박상미(우)교사, 장소영(좌)교사.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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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선생님은 같은 목포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이번 연수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이에 같은 방을 쓰기가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향긋했습니다.

"우리 친해요. 뭐든 잘 맞는 것 같아요."
"언니처럼 잘해주세요."

올해 교직 경력 9년차인 장소영 교사(목포고등학교)와 교직경력 24년차인 박상미 교사(목포여상고)는 서로 룸메이트가 된 지 한 달이 채 못 되었지만 친자매처럼 다정해 보였습니다. 기숙사 생활이나 연수 전반에 관한 견해나 느낌도 엇비슷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선생님의 말이 제 귀에는 마치 가볍고 흥겨운 돌림노래처럼 들렸습니다.   

- 기숙사가 마음에 드세요?
"기숙사가 교실과 한 건물에 있어서 연수받기가 좋은 것 같아요. 주변경관도 참 좋고요.
"식당이 좀 떨어져 있지만 오히려 운동할 수 있어서 좋아요. 공기도 참 맑잖아요?"

- 합숙생활이 연수에 도움을 주나요? 혹시 불편한 점이 있다면?
"공부와 생활이 떨어져 있지 않아서 좋아요. 그래도 가끔은 집 생각이 나죠."
"출퇴근 연수보다는 합숙연수가 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룸메이트가 있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 혹시 영어로 꿈을 꿔본 적이 있으세요?"
"확실한 것은 아닌데 그런 적이 있는 것도 같아요. 며칠 전에 잠에서 깼는데 영어로 꿈을 꾼 것 같았어요."
"전 영어로 꿈을 꾼 기억은 없어요. 아직은요."
"아니, 요 며칠 전인가 선생님 영어로 잠꼬대 했어요."
"정말요?"

느닷없이 영어로 꿈을 꾼 적이 있느냐고 물어 본 것은 이곳 연수원 기숙사 슬로건이 영어로 생각하기(Thinking in English), 영어로 말하기(Speaking in English), 영어로 꿈꾸기(Dreaming in English)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영어로 잠꼬대하는 것을 본인은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룸메이트가 잠꼬대를 들었다면 본인의 기억보다도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방문을 마치고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내 머리 속에 나비처럼 날아와 사뿐히 내려앉는 두 개의 영어 단어가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꿈꾸는 가인'이라고 번역되기도 한 'Beautiful Dreamer'였습니다. 영어로 꿈을 꾸었다고 아름답다는 말은 아닙니다. 영어교사로서 전문성을 갖기 위해 애쓴 그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이지요. 저도 곧 아름다운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자라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제자라도 만나면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고 싶습니다.

"I have a dream!(나에겐 꿈이 있단다!)"

꽃샘바람이 불던 날 미완성의 봄을 맞아주기 위해 점심시간 잠시 산책을 나왔다가 기숙사와 함께 쓰는 국제교육연수관 앞에서 포즈를 잡았다.
▲ 영어심화연수 꽃샘바람이 불던 날 미완성의 봄을 맞아주기 위해 점심시간 잠시 산책을 나왔다가 기숙사와 함께 쓰는 국제교육연수관 앞에서 포즈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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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남지역 영어교사 32명이 참여하는 영어심화연수는 3월 2일부터 8월 21일까지 6개월간(해외연수 1개월 포함) 전남교육연수원국제교육부연수관에서 진행됩니다.



태그:#영어심화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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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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