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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제가 어렵습니다.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걱정도 되고,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그대로여서 불안도 합니다. 저같은 자영업자도 지갑이 얇아지긴 마찬가집니다. 두 아이 학비 대기가 빠듯합니다. 한달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어느새 아이들 학비 내는 날짜가 코앞입니다.  

 

요즘 살기 어떠십니꺼? 

 

"저기… 요즘 살기 어떠십니꺼? 어렵지예… 이번에 나눔 교육비 신청서를 안 내주셔서 철판 깔고 전화돌리고 있습니더."

 

둘째 딸 학교 샘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눔 교육비를 신청해달라는 공지를 학교 홈에 띄웠다는데 제가 보지 못했습니다. 큰딸 학교도, 작은딸 학교도 나눔 교육비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있는 집은 학비를 보다 더 내고, 좀 어려운 형편의 사람은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좀 덜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권영숙, 신숙영, 박소연, 김윤희, 양수지, 김혜영. 이 사람들은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저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한번도 등록금을 제 때 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남매에 제가 넷째인데 언니 오빠 동생과 두세 살 터울이니 등록금이 한꺼번에 나와서 늘 순위에 밀려 맨 꼴찌로 등록금을 냈습니다. 중학교 때 한번은 등록금을 늦게 낸다는 이유로 교감선생님께 불려갔습니다. 가정환경 조사서를 옆에 두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왜 등록금을 안 내는지(못 내는 것이 아닌) 추궁을 당했는데 엄청 창피했습니다. 그렇게 혼나고도 등록금을 못낸 아이들은 등교정지를 당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학교도 나오지 마라. 그 일은 제 어린 마음에 부모가 가난한 게 죄라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전 늘 새학기가 되면 담임이 종례시간에 등록금 안 낸 아이들 명단을 부를까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그땐 등록금을 빨리 안주는 부모가 원망스러웠는데 지금 제가 그 부모님의 나이가 되고 보니 정말 숨이 가쁩니다. 

 

                                               

                                      

학교에서 보내온 나눔 교육비 신청서, 갈등된다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겠습니다." 

 

큰 딸 학교에서 나눔 교육비 신청서가 우편으로 날라왔습니다.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이 돈만을 의미하진 않겠지요. 가진 것이 개인 재능이 될 수도 있고, 건강한 몸이 될 수도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안학교를 오래 다니다보니 어려운 가정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 마음속에서 계산을 합니다. 적어도 내가 나눔교육비를 얼마 정도는 더 내야 장학금 신청하는 사람을 보충할 수 있을 텐데, 라고 말이죠. 네. 제가 오지랖 넓은 거 맞습니다.^^ 국가 지원없이 운영되는 대안학교 재정이 빤하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눔 교육비 신청 했어?"

"해야지. 얼마를 하냐. 고민이다."

"당신 '사'짜 들어가니까 많이 내라. "

"야. 그렇게 따지면 너도 '사'자 들어가잖아? '사장'"

"영세 자영업자의 '사'자랑 끝자리 '사'자랑 같냐? 올해 장학금 신청할 가정이 더 늘 것 같던데…." 

 

매년 이렇게 말하고, 나눔교육비 신청서를 냈던 제가 올해는 나눔교육비 신청서를 바라 보고만 있습니다. 어디서 더 줄이고 나눔교육비를 내야할지 구체적 계획이 안나옵니다. 남들처럼 화장을 하면 화장품 값이라도 줄이고, 남들처럼 옷이라도 잘 사입으면 옷값을 줄이고, 남들처럼 사교육이라도 시키면 사교육비라도 줄일텐데…. 

 

그래도 이 나눔 교육비 신청서가 소중합니다. 사람의 경제사정이 늘 어려운 것도 아니고, 늘 부유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여유가 있을 때 조금 더 내고, 또 좀 어려울 때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나눔 교육비 제도가 참 좋습니다. 아이들이 등록금을 못낸다는 이유로 불려가 혼나거나 창피를 당하지 않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 속담 중에 '십시일반'이란 말이 있습니다. 요즘 같이 힘들 때 혼자만 가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록 작더라도 형편껏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겠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간디학교, #나눔 교육비, #대안학교, #십시일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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