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저게 뭐니?"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 쇼핑몰에 갔다가 다정한 남녀 한 쌍을 발견했다. 키 차이가 제법 나는 청춘남녀였다. 이들은 혹 누가 차갈 새라 서로 허리를 꼭 껴안은 채 걷고 있었다. '그래 지금이 좋을 때지.'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청춘남녀를 보고 있는데 남자의 독특한 머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저게 뭐냐"고 놀라서 묻는 내게 곁에 있던 작은딸이 대답했다.
"베컴 머리잖아." "아, 저게 바로 유명한 닭벼슬 베컴 머리야?"들고 있던 가방에서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냈다. 아이들은 이럴 때 아주 질색을 한다. 특히 큰딸. 명색이 기자랍시고 아무 때나 호기심 보이고 아무 때나 카메라 들이 대고 아무 때나 인터뷰 하려 드는 엄마에 대해.
하지만 어쩌랴. 프로(?) 기자인 것을. 프로가 뭐 별 거 있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로 돈을 벌면 그게 프로인 거지. 그러니 명색만 기자, 무늬만 기자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베컴머리를 찍기 시작했다. 줌인도 하고 걸음을 빨리 해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사람이 지나가면 슬몃 딴전도 피우는 척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보니 화면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베컴머리를 따라 가면서 뒤꼭지를 찍었는데 문득 앞 모습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생겼을까. 저렇게 용기 있게 도발적인 패션을 자랑하는 청춘남녀는?
하지만 생각만 했을 뿐 용기는 못 내고 사진 찍는 걸 그냥 접으려 했다. 그런데 마침 베컴머리 커플이 바로 옆 가게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잘 됐군.'
따라 들어갔다. 흠, 이건 뭐 완전 파파라치 아냐? 나는 옷을 보는 척 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남녀 모두 도발적인 패션을 자랑한 것과는 달리 앞 얼굴은 대단히 순박한 모습이었다. 먼저 남자에게 물었다.
"네 스타일이 아주 멋지다. 특히 머리!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Sure!(물론이지)"곁에 꼭 붙어 있던 여자가 재빨리 손을 풀고 센스 있게 뒤로 물러났다. 두 컷을 찍고 난 뒤 이번에는 여자에게 부탁을 했다.
"멋진 네 남자친구랑 함께 있는 모습을 찍고 싶다."착하게 보이는 여자가 수줍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줬다. 성공!
과업(?)을 완수한 뒤 아이들에게 달려가 사진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쇼핑몰 윈도우에만 눈길을 줄 뿐. 대신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자칭 기자라는 엄마만 관심이 가는 일일 뿐 우린 별 관심 없어요. 그러니 혼자 즐감하시죠.'기자는 외롭다. (여러분이라도 내가 공들여 찍은 사진을 차례대로 감상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