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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언니 집에 다니러 갔다가 우연히 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물이라면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하는 생활용 자재이다. 오죽하면 남이 나를 쉽게 보면 '나를 물로 보지마'라는 말로 상대를 경계할까. 그만큼 물이란 그저 아무렇게나 써서 없애도 된다는 뜻일텐데, 그 쉽게 생각하는 물이 요즘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화순에 있는 물염적벽강이다. 아주 아름다운 강이었다는데 물이 이렇게 조금밖에 없어 아쉬웠다.
▲ 물염적벽강 화순에 있는 물염적벽강이다. 아주 아름다운 강이었다는데 물이 이렇게 조금밖에 없어 아쉬웠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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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나라의 강수량이 다른 해에 비해 20%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나왔고, 태백이라는 지역은 마실 물도 부족해 급수를 해야 하는 실정이라니, 이건 물이 단단히 화가 나서 우리 인간을 길들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펑펑 써 대는 물낭비에 대해 말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말도 나왔다. 그 때 우리집 안마당에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이 있고, 우물 둥지가 있고. 우리는 그 우물 둥지에서 빨래도 하고 세수도 했다. 여름에는 우물에서 막 퍼낸 시원한 우물물로 세수를 했지만 겨울에는 가마솥 한 가득 물을 설설 끓여서(물도 끓이고 방도 데우기 위한) 대야(세수도 하고 빨래도 하는 작은 그릇)에 담아와 세수를 했다. 물은 항상 대야에 반 정도. 그 이상이 되면 어김없이 할머니의 타이르는 소리가 뒤따랐다.

"얘야, 물 많이 쓰면 죽어서 그 물 다 먹으랜단다."

꼭 그 잔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 식구는 누구나 대야에 물을 반 정도 담아서 세수를 했고 그 다음 헹굼물은 그보다 약간 적게 또 그 다음은 그 보다 더 적게 떠다가 썼다. 물론 설거지 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설거지 통에 물을 담아서 애벌 헹굼을 하고 또 담아서 수세미로 닦은 다음 물의 양을 줄여서 헹구어냈다.

이렇게 수돗물을 틀어 놓고 해야 직성이 풀리니...
▲ 설거지 이렇게 수돗물을 틀어 놓고 해야 직성이 풀리니...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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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안 한다. 수돗물을 틀어놓은 채 세수도 하고 손도 씻고 발도 씻는다. 당연히 물을 두 손에 받아서 얼굴을 씻는 동안 물은 철철 흘러서 속절없이 내려가 버린다. 나는 여태껏 이 물이 내가 써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시 우리에게 오는 것, 즉 순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때론 재밌는 상상도 했다. '흥, 내 얼굴이 무슨 채소나 과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흐르는 물에 씻는 거지' 하면서. 그런데 지금은 재밌는 상상보다는 진지하게 잔머리를 굴린다. 어떻게 하면 물을 덜 흘려보내면서 세수를 하나, 혹은 설거지를 하나, 하면서.

손을 씻을 때도 물이 콸콸 나오게 하고 씻어야 개운하다.
▲ 손씻기... 손을 씻을 때도 물이 콸콸 나오게 하고 씻어야 개운하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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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목욕탕에는 작은 대야 하나만 들여 놓아도 물을 절약할 수 있는데, 그것 때문에 목욕탕이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냥 물을 흘려보내기 일쑤다. 따뜻한 물이 나오기 전이나 마지막 헹굼물을 대야에 받아 놓았다가 바닥청소라도 하면 그만큼 물이 절약되는데. 마구 쓰고 있기는 하나 물 부족에 대한 위기감이 그날 우리들의 화제였다. 뭔가 대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통한 것이다.

"제한급수를 하든지 해야 물을 적게 쓰지."
언니의 말이었다.
"아냐, 수도요금을 대폭 올려야 돼."
두 아이를 키우는 조카의 얘기였다.

"얘야, 그러면 부유층들은 그대로 펑펑 쓰고 없는 사람들은 그 흔한 물도 못 쓰고 더 힘들어 진단다."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어. 값을 올려야 더 절약을 한다구."

언니와 조카가 주고받는 말을 듣다가 퍼뜩 그게 생각났다. '정량제!'

"아, 정말 수돗물은 정량제를 할 수 없을까? 집집마당 할당량을 정해 놓고 그만큼만 나오면 더 나오지 않게 만드는 거 말야."
"글쎄, 그거 하면 좀 덜 쓰긴 할 거 같다. 그런데 또 지나친 규제라고 반발하는 건 아닐까?"

정말 대단한 발상인 것 같지만 시행하기는 어째 좀. 그렇더라도 우린 물에 대한 대책 회의라도 하는양 심각하게 말을 주고 받았다. 얼굴이고 그릇이고 빨래고 철철 물을 흘려 보내면서 쓰고도 아깝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강제로라도 우리를 말려 주었으면 하는 게 공통의 희망사항이었던 거다.

지나치게 깨끗한 걸 좋아하는 것, 그리고 모든 걸 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물을 철철 흘려보내면서 닦아야 제대로 닦아진 것 같고, 뭐든지 빨리빨리 해야 하니 물 받는 시간도 지체할 수 없어 수도꼭지를 세게 틀어 놓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이.

우리가 어릴 땐 집집마다 우물이 있지 않았다. 우물이 있는 몇 집 빼고는 거의 동네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그래서 동네 우물은 늘 소문의 근원지였다. 빨래를 하면서 또는 물을 길러 와서 몇몇이 모여 수군거린 게 씨가 되고 꽃이 피어 온동네를 돌아다니게 했던 그 공동 우물. 대중가요 가사처럼 우물가에서 바람난 처녀도 있었고, 아무 근거도 없는 뜬소문이 온동네를 돌아다닌 적도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빨랫바구니를 들고 다니기가, 또 일일이 물동이를 이고 다니기가 힘들다고 각자 집안에 우물을 파기 시작했고, 결국 동네우물은 버림 받았다. 그러다 집안에 있는 우물에서도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기 힘들다고 파이프를 연결해 수도꼭지를 끼웠고 우물둥지만이 아닌 부엌이나 목욕탕까지 물이 콸콸 나오도록 만들었다.

예전에 우물이었지만 지금은 쓰지를 않아 이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 우물 예전에 우물이었지만 지금은 쓰지를 않아 이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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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우리는 물을 물로 보기 시작했다. 틀면 나오니 받을 필요도, 아껴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고 물을 그야말로 펑펑 써대다가 습관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후나 지형적으로 물을 관리하기 힘들어 거의 하천에 의존해야 한단다. 수돗물 누수율도 다른 나라보다 높고 하루 일인당 물 사용량도 다른 나라보다 높은 실정이란다.

실제로 독일로 유학을 가는 사람들은 속옷을 많이 준비해 간다는데, 그 이유가 세탁물이 가득 차야 세탁기를 돌리기 때문이란다. 수돗물 값도 비싼데다 그 나라 사람들의 물 절약 습관을 감안한 것이라고.

물은 우리 인간에게 절대적인 존재다. 물이 없으면 우리는 목숨도 부지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 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물의 날' 물 부족으로 신음하는 태백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물 쓰는 습관에 대해서 곰곰히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이젠 정말 물을 물로 보지 말고 귀중한 자원으로 생각하고 아끼는 습관을 길러야겠다는 마음도 절실해졌다.


태그:#물, #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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