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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민주당이 4·29 재보선 공천과 관련, 전주 덕진과 인천 부평을 등 두 곳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결정했다. 이 조치는 정동영 전 대선후보의 공천을 배제하려는 사전포석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아울러 이것은 '정동영이 전주로 돌아가면 일부에서 말이야 나겠지만 그래도 설마 공천에서 배제하랴'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야당 지지자들을 당혹케 하는 조치이다.

 

정동영의 전주 덕진 공천·출마에 반대하는 심정이나 논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들의 논리를 요약하면 세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첫째 정동영은 이미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 심판을 받았다는 '심판론', 둘째 호남지역당이라는 민주당의 이미지를 고착시킨다는 '지역당론', 셋째 이명박 정권의 심판이라는 선거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선거전략론' 등이 그것이다.

 

이 셋 중에서 첫째 '심판론'은 정동영의 정치 복귀 자체를 반대하는 강경론이고 둘째와 셋째는 정동영의 정치 복귀는 반대하지 않지만 '호남 출마'라는 기술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상대적 온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첫째 정동영의 정치 복귀 자체에 반대하는 '심판론'에는 동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선거에서 떨어진 정치인은 다시는 출마하면 안 된다는 무모한 논리로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에 업적을 남긴 정치인 중에는 낙선의 고배를 딛고 재기한 정치인이 단연 많다.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 지도자는 낙선해 보지 않았지만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민주 지도자는 수차례씩이나 낙선을 체험했다.

 

왜 호남인의 출마만 지역감정의 문제가 되나

 

둘째 '지역당론'은 수많은 사람들을 착잡하게 만든다. 지역감정은 한국에서 현실적인 정치 영향력을 가장 크게 발휘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의 지역감정처럼 맹목적인  정치적 환각심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이것은 훗날 우리가 후손들에게 심각하게 부끄러워해야 할 사안이다).

 

이 자리에서 지역감정의 가해자· 피해자 따위를 운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지역감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왜 호남 사람만이 늘 문제가 돼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감정의 벽에 도전하여 수차례 선거에서 낙방한 일을 지금도 여전히 '용단'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그런 노무현의 용단을 인정해 준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하지만 아쉽게도 한 번 크게 성공한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시절 자기가 마치 지역감정 해결의 전지자인 양 한나라당에 연정을 제안하는 등의 자충수를 범하기도 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

 

정동영의 호남 출마가 지역당 이미지를 고착한다는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노무현의 연정 제안처럼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자 전략의 착각이라고 본다. 왜 호남 출마만 지역주의의 오명을 써야 하는지?

 

정동영의 호남 출마를 함부로 지역당 운운하며 반대하는 것은 지역감정을 명분 삼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교묘한 책략이거나 정치적 환각일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선거전략론'은 '지역당론'과 연계선상에 있는 논리이다. 이것은 정동영의 호남 출마가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의미를 희석시켜 수도권에서 불리해진다는 주장으로서 친노계인 안희정 최고위원과 당권파인 강기정 대표비서실장 등이 주로 주장한다. 그리고 김효석 정책위의장도 중원을 장악해야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일면 그럴 듯한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현실에 보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이명박 정권 심판론이 먹힐 곳이 어디인가? 부평을 한 군데밖에는 없다. 나머지는 모두 앞에서 정치적 환각이라고 말한 지역감정이 승패를 가를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부평을 한 곳을 위해 당 대선후보였던 사람에게 다시 지역구를 옮기라는 주문은 지나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도 정치도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을 아낄 줄 모르는 당이나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정동영만 각종 지역구를 유리걸식하면서 불운을 감수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지 않은가?

 

섣부른 지역당론은 참담한 결과 부른다  

 

이런 점에서 섣부른 지역당론은 노무현의 연정 제안처럼 참담한 결과로 귀결된다. 물론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이 참패한 이유를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여태껏 보여준 정동영의 인간적 또는 정치적 매력은 노무현보다 많이 모자라다고 본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에 비해 속된 말로 '각'이 부족해 보이는 정치인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의 총선 동작을 출마는 당을 위한 고육지책의 선택이었다. 물론 당시 손학규도 당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서울 종로에서 출마해 낙선했다. 그런데 손학규는 지지기반이 수도권이었고 한나라당에서 옮겨와 마땅한 지역구도 없던 차였다. 이런 점에서 정동영의 동작을 출마· 낙선은 당을 위한 보다 순수한 희생이었다고 봐줄 법한 일이다.

 

김효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화석화'되었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민주당이 대기업이나 강남부자를 포용하지 않아서 지지율이 낮은 줄 안다. 과연 그럴까?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닮아지려고 한들 지지율이 올라갈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국에서 정당 지지율을 좌우하는 것은 명분이나 정책이 아니다. 명분이나 정책으로 치면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 한나라당, 민주당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유권자 지지율은 빈약하다. 거기다가 둘로 쪼개지기까지 하니까 더욱 초라해졌다.

 

정당 지지율은 첫째 인물이 좌우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정당의 힘, 이른바 '듬직함'이다. 이것은 정치 선진국이라는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이명박 지지자와 박근혜 지지자가 합쳐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한나라당의 외연이 크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정권을 잡았던 첫째 이유는 그들의 인간적· 정치적 매력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의 야당은 많은 세력을 포용할 줄 알았다. 그러므로 민주당이 지지율을 높이려거든 인물과 외연을 키워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정동영은 물론 손학규, 이해찬, 강금실, 유시민 등에게도 능력껏 활동할 공간을 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세균 대표는 야당 지도자로서 합리적인 면모를 보여 왔다. 합리적인 지도자라면 결코 옹졸해서는 안 된다. 정세균 대표는 곧 정동영 전 장관을 만나겠다고 한다. 그에게 부평을로 선택을 바꾸라고 종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돈다. 하지만 그것은 정동영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앞서 말했듯이 또다시 지역구를 전전하라는 주문은 가당치 않다.

 

게다가 정 전 장관은 이미 전주 덕진 출마를 공언한 마당이다. 이제 되돌리기에도 때가 늦어버렸다. 만약 공천에서 정동영을 배제한다면 정동영은 물론 정세균에게도 그리고 민주당에도 큰 손해를 안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 대표와 민주당은 수권보다는 당권을 더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정동영 덕진 공천을 가장 반대하는 세력은 바로 한나라당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동영 공천 건에 대해서는 김근태계로 분류되는 최규성 의원의 견해가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 그는, "아쉬움은 있지만 본인이 전주 덕진에서 출마한다고 했으니 정당한 절차로 공천심사해서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태그:#정동영, #지역감정, #전주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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