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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 국회가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선 비준한 상황에서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해) 이것이 이뤄진다면, 결국 재비준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올 수 있다."

 

이해영 국제통상연구소 소장(한신대 교수)의 말이다. 이 소장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에서 열린 '한미FTA 재협상,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정부와 여당이 추진중인 한미FTA 선(先) 비준동의에 대해 "가장 피해야할 외교적 실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유는 우리가 먼저 비준동의안을 처리했다고 해서, 새로 구성될 미 민주당 의회가 압박을 느낄 가능성이 거의 없고, 오바마 행정부가 이미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 등에서 사실상 추가적인 협상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어 미국이 과거 페루와 콜롬비아 의회가 FTA를 먼저 비준했음에도, 민주당 차원에서 협정문을 변경한 전례가 있다는 점과 함께, 올해 안의 미 의사일정에 한미FTA가 들어있지 않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 소장은 이에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진정으로 차단하고자 한다면, 우리 역시 미국쪽에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면서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이 국유화될 정도로, 한미FTA 타결 때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정 변경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해영 교수 "우리가 먼저 한미FTA 재협상 요구해야"

 

이날 토론회에서 '한미FTA 재협상 논란, 비상구는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에 나선 이 소장은, 향후 한미FTA와 관련한 시나리오 세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한미FTA 협정문의 재개정(reopen) 여부다. 이 소장은 "오바마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를 추진하지 않더라도, 민주당 의회가 이를 주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 상원에선 여전히 한국내 쇠고기 시장의 완전 개방을 요구하고 있으며, 하원에선  한미FTA의 자동차 부문 협상 내용을 문제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는 한미FTA 협정문 이외 부속협정(side agreement)을 체결하는 경우다. 이미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나프타(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의 부속협정 형태로 노동과 환경 협약 등이 체결된 바 있다는 것이다. '재협상' 대신, 자동차 등만을 분리해서 별도의 부속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현행대로 한미FTA를 미 의회가 처리해주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명박 정부로선 바라는 바이지만, 현재 그 가능성은 사실상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이어 "미국측이 재협상이든, 추가협의든, 용어와 관계없이 한미FTA 재논의 요청이 들어올 것으로 봤을 때, 우리 국회의 선(先) 비준 동의는 가장 피해야할 외교적 실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번 재협상 논란을 계기로, 한미FTA 재협상을 우리쪽에서 공세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미국 의회 안의 '공정무역론자' 등과 적극적 대화와 협상에 나서고, 대안적인 협정을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FTA, 어차피 철거될 부실공사 집... 새로 지어야"

 

이 교수 이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학계와 법조계, 정치권 인사 등도 불공정한 한미FTA 협상 내용 자체를 이번 기회에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재천 변호사(전 열린우리당 의원)는 "정부는 지난 2007년 4월 한미FTA 타결이후 6월 정식 서명할 때까지도 사실상 재협상을 했었다"면서 "당시에도 정부는 '추가협의', '부분협의' 등의 말로 슬그머니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 재협상은 집을 허물고 다시 짓자는 것'이라는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비유와 전제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최 변호사는 "한미FTA는 집안의 균형을 상실한 부실주택이어서, 놔두면 저절로 무너지게 돼 있다"면서 "또 국회 비준동의가 없는 무허가, 부실 건물일뿐이며 어차피 철거될 집"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이어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된다"면서 "기업들이 그동안 요구했던 무역구제 조치와, 일자리 늘리기 위해 추진했던 전문직 비자 쿼터 등 정부 말대로 균형에 맞도록 협상을 다시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종걸 한양대 교수도 "현재 글로벌 세계 경제 위기속에서 오바마 정부 출범이후 많은 것들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면서 "과거의 사고 체계에서 체결된 한미FTA는 현재의 변화된 환경에서 비쳐봤을 때는 사실상 누더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의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한미FTA에 대한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면서 "농업과 의약품, 투자자국가소송제 등 여러 불공정한 내용 등을 적극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미국이 요구하는 재협상은 사실상 보호주의 색채를 띠고 있으면서, 현재 얻어낸 것에 추가로 모두 다 가져가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어 "향후 국회 차원에서 통상절차법을 하루빨리 만들어내는 것이, 재협상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태그:#한미FTA, #국제통상연구소, #이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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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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