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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그것이 일상이 되어서야 산수유의 노란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삼각산 자락, 그곳의 봄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가 봅니다. 이미 서울에도 봄은 왔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 혹은 아파트 화단에 심겨진 산수유는 이미 화들짝 피어나기도 했지만 산자락에 피어나는 산수유를 보고 싶었습니다.

 

1980년 5월, 봄은 군부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혔지요. 그리고 그 악몽 같은 80년대는 수없이 많은 열사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이후 다시 봄이 오는가 싶었지요. 그러나 소위 386세대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덕분에 생존에 대한 본능이나 전략 역시도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일부는 정치권으로 일부는 사교육으로 진출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습니다만 중년이 되어 이 나라의 중추가 된 이들의 삶은 과연 무엇일까 회의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제 퇴근길에 뉴스를 듣다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으나 국가별로 이런저런 성적을 내어 순위를 매긴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35등, 중국과 일본 보다도 뒤쳐졌다며 우리나라의 수준으로 볼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이야기였습니다. 15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런 순위가 GNP만 가지고 정한 것인지, 정치인들의 수준만 달라져도 등수가 확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줄세우는 것도 모자라 국가의 순위까지 몇 등을 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행복이 곧 성적순인 이 나라의 현실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나라의 봄은 언제나 올까 씁쓸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 남도보다 늦게 오는 삼각산의 봄을 맞이하면서 '늦게 와도 봄은 온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사라집니다.

 

혹독한 겨울과 꽃샘추위를 견딘 꽃이 더 곱고, 향기도 진하듯 지금 우리의 역사도 꽃샘추위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힘들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고, 정치인들의 수준이 낮다고 한숨만 쉴 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역사는 결국 그 길로 가는데 조금 늦어질 뿐이지요. 조금 늦을 뿐 이곳에도 봄이 오듯이 말입니다.

 

무엇이든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쉽게 얻어지면 귀한 것을 모르니 때론 천천히 애간장을 태우면서 오는 법인가 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조금은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 가운데 애태워도 전혀 달라지지 않을 현실은 그냥 유쾌하게 즐기는 삶의 묘미를 알아가나 봅니다. 혹자는 이런 나의 증세를 '늙음'이라고도 하지만 늙어가는 것도 사실이니 그저 그렇습니다.

 

산수유 활짝 핀 봄날, 햇살도 한껏 맑아서 벌과 나비가 날아들어 많은 열매가 맺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봄, #산수유, #삼각산,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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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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