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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봄은 꽃으로, 새싹으로 방긋 웃으며 피어나는데 정작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잘생긴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꽃샘추위에 갇혀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미어진다.

나도 어느새 고3 엄마가 되었다. 어쩌면 마음속으로 고3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주변의 고3 학생들과 엄마들이 겪어야할 마음고생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에 나는 우리 아이가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그러나 세월이 흐르다 보니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고3 엄마가 되고 말았다.

대학입시 설명회 조치원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대학입시 설명회 모습
대학입시 설명회조치원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대학입시 설명회 모습 ⓒ 이인옥

3월 17일, 충남 연기군 조치원여자고등학교에서는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한자리에 모인가운데 대학입시 설명회가 열렸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딸의 연락을 받고 대입설명회가 열리는 강당으로 찾아갔다. 강당에는 많은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이 운집해 있었다.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입시 설명회를 경청하였다. 왠지 갑자기 몸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러면서 딸아이의 핏기 없는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엄마가 강당에 와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설명회를 잘 들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내가 말하지 않아도 딸아이는 입시 설명에 대해 누구보다 잘 듣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화를 건 것은 딸의 음성이라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농촌에서 이런 정보를 접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학교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혼자서 여기저기 묻거나 인터넷을 검색하여 찾는 수밖에 없다.

2010학년도 대입전형 일정 2010학년도 대학입시 전형 일정 자료
2010학년도 대입전형 일정2010학년도 대학입시 전형 일정 자료 ⓒ 이인옥

딸아이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그동안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공부라는 굴레에 갇혀 다른 그 무엇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디를 가든 책을 한보따리씩 싸가지고 가야 했고 늘 손에 책이 들려있어야 안정이 될 만큼 아이는 불안해했다. 아마도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모두가 이런 심정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잘하고 성적이 쑥쑥 오르는 것도 아닌데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고3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농촌에 살다보니 도시아이들처럼 학원이다 과외다 사교육 현장으로 아이를 내몰 처지도 아니었고, 오히려 사교육 보다는 공교육이 살아야 한다며 공교육을 믿고 따랐다. 지금도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다 보니 밤늦도록 학생과 교사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학생은 공부에 대한 압박감으로 힘들고, 교사들은 또 학생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가정을 돌볼 시간도 없이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너무 가혹한 시간이 아닐까.학생과 교사 모두의 건강도 염려되고 고등학교 3년 내내 받을 중압감을 감당해야 하는 아이의 고통이 커다란 바위처럼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학부모 회의가 열리는 장소로 몇몇 아이들이 찾아왔다. 학교에 온 엄마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중 나의 딸도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엄마를 찾는 모양이다. 달려 나가 딸을 힘껏 안아주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안은 손에 힘을 주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우리 힘내자고.
딸도 내 품에 안기며 손에 힘을 준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모두가 딸이 감내하고 이겨내야 할 몫이 아닌가.

엄마가 고3인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슬픔으로 밀려온다. 고작 안아주고, 힘내라고 등을 토닥거리는 일 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가끔씩 사랑한다고 문자라도 넣어줘야 겠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나, 고3 엄마 맞는지 모르겠다.

학부모 회의가  끝나고 담임선생님과 면담할 시간이 주어졌다. 안내된 장소로 이동을 하는데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끝나면 집에 같이 가자는 내용이다. 잠시 생각에 젖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아이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설렌다. 아이가 자취를 하는 바람에 사실 아이 손을 잡고 걸어본 지가 너무 오래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엄마의 사랑을 듬뿍 전해주리라 다짐하였다.

대학입시 설명회 학부모, 학생, 교사가 대학입시 설명회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
대학입시 설명회학부모, 학생, 교사가 대학입시 설명회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 ⓒ 이인옥

생각해 보면 지금의 교육방법이 정말 옳은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참 꿈을 안고 비상의 나래를 펴야할 청소년들이 공부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청소년기를 보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입시 지옥", 과연 아이들을 이런 감옥에 가둬야만 미래가 보장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잘 살 수 있는 것일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입시지옥이 없는 나라로 이민을 가면 어떨까? 아니면 어느 산골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아이들과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면 어떨까? 물론 현실도피적인 생각이지만 고등학교 학생을 둔 학부모라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나 학부모에게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요즘 몇몇 대학에서는 수능점수 위주가 아닌 특기적성을 우선으로 뽑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입학사정관 제도다. 성적보다 잠재 능력과 소질을 평가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입학사정관 전형의 경우 2010학년도에는 49개교가 4,376명을 뽑는다고 한다. 2009학년도에는 16개교였는데 그나마 조금 폭이 넓어져 다행이다. 앞으로는 이런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들이 더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다소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의 부담이 덜어질 테니까.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고등학교3학년#수험생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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