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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지가 결정된 MBC <명랑히어로>의 한 장면.
폐지가 결정된 MBC <명랑히어로>의 한 장면. ⓒ iMBC

이맘때면 방송가에서는 한창 봄 개편에 대한 이야기들이 회자된다. 어느 프로가 없어진다더라, 생긴다더라, 누가 어느 프로에 투입된다더라, 어느 프로는 시간대가 바뀐 다더라 등등.

봄·가을이면 방송가는 개편으로 시끌벅적하다. 그런 와중에 들려오는 한 가지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MBC <명랑 히어로> 폐지가 그것이다. 애청자로서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기에 놀라웠고, 무엇보다 그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방송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면 거기에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저조한 시청률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소재 고갈 때문이다. 시청률이 안 나오거나 소재가 고갈되면 어떤 프로든 자연스레 폐지 수순을 밟아간다. 가령 지난주 막을 내린 KBS <해피선데이 - 불후의 명곡>같은 경우에는 더 이상 초대할 가수가 없어, 높은 완성도에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듣고 있음에도 막을 내려야 했다. 이런 경우가 대표적인 소재 고갈로 인한 프로그램 폐지 사례다. 시청률이 저조해 막을 내린 프로그램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소재 고갈도 시청률 저조도 아닌 <명랑> 폐지, 왜?

하지만 이번에 폐지될 것으로 알려진 <명랑 히어로>는 소재 고갈 측면에서는 걱정할 일이 없다. 프로그램 안 두 코너인 '명랑 회고전'과 '명랑 토론회' 모두 연예인을 데려다 얘기하는, 일종의 토크쇼 형식이기 때문에 소재가 고갈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청률이 문제인가? 사실 <명랑 히어로>의 시청률이 썩 높다고는 볼 수 없다. 지난 14일 방영된 47회의 시청률은 10.2%(TNS미디어코리아)를 기록하며 그보다 좀 늦게 시작하는 경쟁 예능 프로인 KBS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의 14.1%(이하 동일기준)보다 3.9%p 가량 낮았다.

하지만 이 낮은 시청률 때문에 <명랑 히어로>가 폐지되는 것이라면, <명랑 히어로> 측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다. 시청률이 낮은 게 전적으로 <명랑 히어로>가 '재미없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주변 여건이 워낙 안 좋기 때문이다. 일단 시간대 문제가 가장 안 좋다. 현재 <명랑 히어로>는 토요일 밤 10시 35분에 방영된다. 원래 밤 11시 40분에 방영되다가 지난해 가을 개편에서 MBC가 <내 여자>를 끝으로 밤 10시 주말드라마 폐지를 선언하면서 방영 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졌다.

그러나, 밤 10시 35분은 타 방송사인 SBS와 KBS에서 각각 주말드라마를 방영하는 시간이다. 10시면 10시, 11시면 11시, 이렇게 딱딱 끊어지지도 않고 중간에 끼인 애매한 시간대, 더구나 상대는 각각 20%대와 15%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가문의 영광>과 <천추태후>다. 설상가상으로 앞 시간대에 방송되는 프로의 덕도 보지 못한다. 앞 프로의 시청률이 뒤 프로의 시청률에 영향을 준다는 건 주지적인 사실. <아내의 유혹> 덕분에 SBS <8시 뉴스>의 시청률이 상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명랑 히어로>는 앞 프로의 덕을 보았을까? 그렇지도 않다. <명랑 히어로>의 앞 프로는 바로 <뉴스후>, 이 <뉴스후>의 시청률은 한자리대로 <명랑 히어로>에 영향을 줄 만큼 높지 않다. 그러나 경쟁작인 KBS <천추태후>는 <연예가 중계>의, SBS <가문의 영광>은 종영한 <유리의 성>과 새로 시작한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KBS의 <연예가 중계>나 SBS 밤 9시 주말드라마 모두 안정적인 시청률로 뒤 프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신참 <세바퀴> 여성시청자 마음 뺏을 수 있을까

 <명랑히어로>의 한 꼭지인 '독서토론회' 한 장면.
<명랑히어로>의 한 꼭지인 '독서토론회' 한 장면. ⓒ iMBC

이런 상황에서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명랑 히어로>를 폐지한다면 그것은 방송사의 '시청률 조급증'이 부른 이기적인 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하면 오히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10%나 되는 시청률을 올린 <명랑 히어로>가 경쟁력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명랑 히어로>의 연출자인 김유곤 PD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방송 초기 시사성 있는 주제로 프로를 만들다 보니 남성성이 강해졌고, 마니아층이 형성된 예능 프로가 되어 버렸다, 그 후로 여성 시청자 층을 흡수하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결국 MBC 측에서 <명랑 히어로>를 폐지하기로 한 이유는 프로의 성격상 여성 시청자 층을 흡수하지 못해 시청률을 올리는데 실패했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MBC 측에서 <명랑 히어로>가 폐지된 이후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세바퀴>(이하 <세바퀴>)를 독립 편성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는 그 추측에 신빙성을 더한다. 주지하다시피 <세바퀴>는 주부 연예인들이 다수 출연하여 프로를 이끌어 나가는 '줌마테이너' 버라이어티의 대표격인 예능 프로로 여성 시청자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바퀴>를 <명랑 히어로> 자리에 편성한다고 해서 <세바퀴>가 압도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까? <세바퀴>가 신규 진입자의 처지인 반면, <가문의 영광>은 이미 그 시간대 여성 시청자 층을 확실하게 끌어안은 상태인데 말이다. <천추태후>는 선 굵은 정통 사극이니 남성 시청자 층의 강세가 뚜렷하다고 해도, '드라마'와 '예능', 둘 중에 하나를 보라고 하면 여성 시청자는 무엇을 볼 것인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경쟁이다.

'두 번 살다', '독서토론회' 등... 신선한 시도

<명랑 히어로>는 부침이 많았던 예능 프로다. 1년이라는 방영 기간 동안 포맷은 2차례, 시간대도 2차례나 변경되었다. 최초 시사성 있는 주제를 갖고 출연진들이 토론을 펼치는 포맷으로 시작했던 <명랑 히어로>는 지난해 추석 무렵 돌연 '가상 장례식'이라는 주제로 탈바꿈해 기존의 시사 버라이어티라는 콘셉트를 포기했다. 당시 어수선한 정국과 맞물려 외압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과 의문이 난무했었지만, 결국 대외적으로 밝힌 포맷 변경의 사유는 역시 '시청률'이었다. 시사적인 주제만 다루다 보니 시청자층이 국한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바뀐 가상 장례식, '두 번 살다'라는 포맷은 색다른 시도였다. 멀쩡히 살아 있는 연예인이 죽은 것으로 설정해 놓고 평소 그와 알고 지내던 이들이 조문객으로 오면 상갓집 분위기를 연출한 세트에서 MC들과 먹고 마시며 그에 대한 얘기를 하는 형식이었다. 출연진들의 '폭로성' 이야기가 남발되고, 시사성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시청자들로부터 비판도 많았지만 시도 자체는 참신했다. 그러다 '장례식'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거움 때문에 '회고전'으로 살짝 바꿔 밝은 분위기를 추구한 <명랑 히어로>는 계속해서 토크쇼의 길을 걸었다.

'명랑 회고전'과 함께 <명랑 히어로>를 이끌어 간 '명랑 토론회' 역시 참신한 시도가 돋보인 코너였다. 최초 '독서 토론회'로 명명하여 매회 출연하는 게스트들이 추천한 책을 놓고 MC들과 토론을 벌이는 코너였던 '명랑 토론회'는, 얼마 전부터 그 주제를 책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다양한 범위를 다룰 수 있게 바뀌었다. 방송 시간대 역시 들쭉날쭉하였다. 최초 토요일 오후 5시 20분에 방영되던 <명랑 히어로>는 생각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자 토요일 밤 11시 40분으로 시간대를 옮겨 심야 예능 프로로 자리 잡았고, 이후 밤 10시 35분으로 다시 앞당겨졌다.

포털 다음 아고라에선 '폐지 반대' 청원 운동도

 <명랑히어로> 폐지가 알려지자마자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를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올라왔다.
<명랑히어로> 폐지가 알려지자마자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를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올라왔다. ⓒ iMBC

이처럼 포맷이 변하고 시간대가 옮겨지는 동안에 <명랑 히어로>는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명랑 회고전'과 '명랑 토론회'에 대한 시청자의 호응도 좋았다. 중구난방 다소 번잡스러워 보이던 MC진은 이경규, 박미선, 김국진이 중심을 잡아 김구라, 윤종신, 신정환, 김성주 등 나머지 MC들과 조화를 이뤘고, 특히 지난주부터 MC로 참여하기 시작한 최양락의 가세는 '라이벌' 이경규와의 입담 대결로 시너지 효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명랑 히어로>의 폐지 소식이 들리자 시청자들의 반발은 거셌다. <명랑 히어로>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각종 포털 사이트에 폐지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다음 아고라에는 폐지 반대 청원도 올라왔다.

<명랑 히어로>는 많은 시도와 실험 정신이 돋보였던 예능 프로다. 폐지를 결정한 데에는 특유의 '마니아성'이 한몫했다지만, 그 '마니아성'이야말로 <명랑 히어로>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빛을 발했던, 재미있는 예능 프로 <명랑 히어로>의 폐지는 그래서 아쉽다.


#명랑히어로#이경규#김구라#예능#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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