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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지난 1년간 외교분야에서 이뤄낸 최대성과물로 '한미동맹 복원'을 꼽아왔다. 지난해 4월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21세기 전략동맹'은 한미동맹을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동맹으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 1월 20일 오바마 대통령 등장 이후 통상문제와 대북정책 등에서 이미 예상돼온 엇박자가 늘고 있다.

 

[한미FTA] 이명박 정부만의 "짝사랑"

 

한미FTA 문제는 오바마 정부 출범 이전부터 갈등 사안으로 예고돼 온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미FTA에 비판적이었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한 민주당은 자유무역주의에 소극적인 자세인데다, 한미FTA 타결안에 가장 비판적인 미국 노조가 오바마의 최대 지지세력 중 하나다.

 

한국 국회에서 먼저 비준해서 미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간절한 바람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야당 상임위원들의 출입까지 막고 한나라당이 단독상정하는 무리수까지 두게 만들었지만, 미국은 '매정'했다.

 

한미FTA 문제 담당자가 될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내정자는 10일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현재 상태로는 한미FTA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협상'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라는 점도 파장이 컸지만,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런 상황을 "한미FTA 한국만의 '짝사랑'"(12일자)이라고 표현했다. 정확한 것은 '이명박 정부만의 짝사랑'일 것이다.

 

지난해 2월 25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서 "자동차 교역문제에 대한 미국 내 민감한 정서를 감안해 한미FTA는 시간을 갖고 진전을 모색하는 게 미국측 시각"이라고 밝혔음에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선비준'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커크 내정자의 발언 뒤에도 청와대에서는 "국회에서 빠른 시간 내에 비준해서 한미FTA협상이 마무리되도록 도와줬으면 한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미사일 vs 우주발사체] 미국 바라보는 한국, 중국 바라보는 미국

 

외교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에 "현재 한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정보(판단) 불일치", "한미 정보라인의 이견이 심각하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그 결정판이 미국의 15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데니스 블레어 국가정보국 국장의 '우주발사체'(space-launch vehicle) 발언이었다. 사실상 북한의 '인공위성'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요격 등 강경 대응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북한이 준비하는 발사체는 '장거리 미사일'이라며 강경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견해와 크게 어긋난다. 사실상 '미국이 한국의 정보판단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북한이 '통신위성 광명성 2호'의 발사시점, 좌표, 궤도 등을 국제기구에 통보하는 등 '적법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은 한국과 미국의 견해 차이를 더 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미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을 만난 뒤 "미사일 문제는 6자회담의 논의대상이 아니니만 (지금은)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상 북한과의 미사일 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대화로 이 문제를 풀겠다는 의사로 보인다.

 

이는 당연히 정보불일치 차원을 넘어 전략적 수준에서 대북정책과 연결된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블레어 국장 등의 발언을 종합해볼 때 미국은 북한의 발사체를 인공위성이라고 규정하고, 실제 발사 뒤에도 유엔 안보리 의장의 유감성명 등으로 상황을 정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면서 "유엔 추가제재를 주장하고 있는 한국 방침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한미공조만 잘되면 문제가 풀릴 것으로 보고 있지만, 경제위기 상태인 미국은 달러 보유 세계 1위인 중국과의 협조가 절실하다"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대화를 통한 북한 문제 해결이라는 방침을 정리했는데, 우리가 강경책을 유지할 경우 '미중일 협력체제' 속에서 한국은 소외돼서 약소국 관리체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현희-일본 납북피해자 가족' 면담이 미중일 3각 협력체에서 일본을 떼어놓으려는 이명박 정부와 실각위기에 놓인 아소 일본 총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합작품이라는 시각도 있다.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불과 10분간의 깜짝 통화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남북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공격할 만큼 대북정책에서 이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다. 보즈워스 대표의 요청에 의한 이번 통화는 두 사람의 사적인 인연 차원의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우회적인 불만 표출이라는 해석이 많다.

 

[북한 '핵무기 보유국' 표현 논란] 핵 확산 저지인가, 핵 폐기인가

 

북한 핵무기 보유 표시 논란은 부시 행정부 때 시작된 문제이지만, 오바마 정부에서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지난 2월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내 정보기관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국가정보위(NIC,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는 '전 세계 보건 실태의 전략적 의미'라는 제하의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기술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 인도, 북한 그리고 러시아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이란은 핵보유국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했고,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비공식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도는 물론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핵무기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와 나란히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 명기한 반면,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이란과는 구별해서 언급한 것이다.

 

NIC는 2008년 '글로벌 트렌드 2025' 보고서에서도 북한을 '핵무기 국가'로 언급한 바 있고, 미국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JFCOM)도 북한을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과 함께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표현했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면서 핵 확산 금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이런 분위기는 더 짙어지는 추세다. 반면 한국은 북핵 폐기가 목적이다. 북핵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레드 라인'(대북정책에서 봉쇄정책으로 전환하는 기준선) 차이가 뚜렷하게 구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보수정부=친미, 진보정부=반미'는 허구"

 

한국의 보수세력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아야 미국과 원활하게 공조가 이뤄진다고 강조해왔지만, 보수세력이 집권했음에도 미국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것은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다.

 

1970년대 말 한국 군사정권의 원조인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집권기는 한미관계에서 가장 껄끄러웠던 시기로 꼽힌다. 한국 인권문제와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쟁점이었다.

 

대북 강경책을 썼던 김영삼 정부 때도 북핵문제로 클린턴 정부와 매끄러운 관계를 맺지 못했다. 클린턴 정부의 북핵담당자들은 "북한보다 김영삼 정부 사람들과 대화하기 더 어렵다"고 말할 정도였다. '통미봉남'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왔다.

 

로널드 레이건부터 부시 대통령까지 한국어 통역을 맡았던 통 김(한국명 김동현)씨는 2005년 6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북미 제네바 협상에서 따돌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YS는 클린턴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무슨 동맹이 이런 게 있노'라면서 화를 냈다"면서 "당시 한국측 통역이 당황해 YS의 말을 장황하게 다른 말로 바꿔 설명했다"고 말했다.

 

여기엔 기본적으로 한국의 보수정권과 미국의 리버럴 정권이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 김대중 정부와 부시 1기 정부 사이에서 벌어진 대북정책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은 그 반대였다.

 

노무현 정부와 2기 부시 정부 사이의 갈등은 과장된 면이 많았다. 2001년 4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선임보좌관으로 한미관계의 실무책임자였던 마이클 그린은 "한미동맹에 대한 노무현의 기여는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 2월 현재 한미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고 말했다(2008년 2월 15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에 낸 '미국의 범위와 한미관계 총설'이라는 논문에서, '보수정부는 친미이고 진보정부는 반미'라는 구도는 한국 보수세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분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한국의 국익 확보가 결코 친미-반미의 이념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 전 대통령과 맺은 '21세기 전략동맹'이 두 사람만의 러브레터로 끝날 가능성이 큰 이 대통령에게는 적절한 충고가 될 것 같다.


태그:#우주발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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