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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중에도 금서가 있었다. 그것도 더군다나 노골적인 성 묘사장면으로 인해 출판금지를 당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 소나타 A장조 Op.47>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 그렇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뿐만 아니다. '어둠의 힘'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등 다수 있다)

 

펭귄클래식 코리아에서 나온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읽었다. 이 책에는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비롯해 <가정의 행복> <악마> <신부 세르게이> 네 편이 수록되어있다.

 

이 네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결혼과 인간의 숨길 수 없는 욕망이다. '결혼'이라는 제도안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치열한 갈등과 권태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욕망이 헐떡거리고 있다. 서로 엉키고 설키고 뒤집어지고 흩어져 있다. 한마디로 요지경 세상이다. 미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적나라하게 까발려놓고 있다. 

 

이 소설들의 배경은 19세기 러시아다. 그러나 지금의 세태와 큰 차이는 없다. 소설속 한 장면은 아침드라마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어디로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은 소설 속 인물과 꼭 겹쳐있다. 여성편력으로 요즘 된통 수모를 당하고 있는 '아내의 유혹'의 정교민이나 '미워도 다시한번'의 남녀주인공들이나 그런 의미에서보면 톨스토이는 통속작가였던 모양이다.

 

<가정의 행복>은 한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결혼'이라는 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작품이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과 사랑으로 결혼생활을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슷한 일상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잠깐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끝내 인형의 집의 '노라'는 되지 못한다. 다시 남편곁으로 되돌아 와 안락한 가정의 행복을 꿈꾸는 이 여 주인공의 시점은 '여성'이지만 여성의 심리를 계몽하고 훈계하려는 남성의 시각이 지배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통속작가였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 아내에 대한 질투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한 남성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일그러진 욕망과 집착으로 뭉쳐진 이 남자는 끝내 바이올린 연주자에 대한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부인을 칼로 찔러 죽인다.

 

작품속, 남자주인공 입을 빌려 톨스토이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두고 위험한 음악이라고 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엎치락 뒤치락 긴박한 연주를 펼치는 부분을 두고 남녀의 부적절한 관계를 떠올리며 미친듯 괴로워하는 이 대작가는 상상력이 지나치게 뛰어났던 것일까 아니면 성적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것일까.

 

"가장 나쁜 것은 습관이 매일같이 우리의 삶을 하나의 결정된 형식 속에서 옭아매고 우리의 감정이 부자유스러워지고 균일하고 무심한 시간의 흐름에 종속되어버린다는 느낌이다'."<가정의 행복 중>

 

"평생을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만 사랑하다는 것은 양초 하나가 평생 탄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중>

 

<악마>와 <신부 세르게이>역시 억압된 욕망과 갈등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들 역시 앞의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는 톨스토이의 개인적 체험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톨스토이는 평생 성적인 욕망과 성에 대한 강박관념,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회의속에서 살았다.

 

평생 질투와 욕망에 시달렸던 톨스토이

 

그러나 내가 지금껏 알고있던 톨스토이의 이미지는 다르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나 <바보이반> <참회록> <인생독본>에 들려오는 톨스토이의 목소리는 현자다. 예수를 연상시키는 긴 머리칼과 수염, 묵상하는 듯한 두 눈, 일렁이는 촛불아래서 글을 쓰는 그의 초상은 '대문호'에 가깝다. 지금껏 내가 알고있던 톨스토이의 이미지는 그랬다.

 

그러나 그는 젊은시절 주색잡기와 도박에 빠져 지냈다. 큰 빚을 지기도 했다. 그리고 늙어서도 가출과 부부싸움을 일삼았다. 생의 임종도 기차역에서 맞이했다. 객사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문제적'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인생의 문제를 던지고 답을 구하고 그리고 또 문제를 던졌다. 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끝내버리지 않고 소설을 통해 인간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거기에 톨스토이의 위대함이 있다.

 

세상의 모든 통속적인 작가가 모두 위대한 작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위대한 작가는 통속적인 작가가 될 수밖에 없음을 톨스토이의 '금서'를 보며 느낀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양장)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2010)


태그:#크로이처 소나타,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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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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