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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대지에서는 교음이 들려옵니다. 새싹을 싹틔우기 위해 흙을 헤집는 식물들의 몸부림이 교음으로 들려옵니다. 라디오파를 듣지 못하고, TV전파를 보이지 못하는 게 인간들의 심성이며 능력이니 돋아 오르는 새싹, 피어나는 꽃들이 무수히 던지는 말들 또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할 뿐일 겁니다. 인간 위주로 생각하고, 인간 우선으로 판단하는 그 이기심 때문에 한생명의 탄생만큼이나 숭고할 수도 있는 자연의 소리를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봄날의 대지에 교교히 울려 퍼지고 있는 그들만의 교음을 들으려 두 눈이 땅에 닿을 만큼 납작 엎드려 자세를 낮추고, 흘러가는 풍문도 걸려 들 만큼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젖힌 채 봄날의 대지를 더듬더듬 더듬어 봤습니다.

 

봄날의 교음을 듣기도 전에 경험 없는 미소녀가 바짓가랑이에 흘린 초경처럼 새봄과 싹틔움을 경험하지 못한 노루귀가 이파리도 피우지 못하고 초경이라도 하듯 대지에 피워 낸 분홍빛 꽃을 먼저 보았습니다. 웃자란 수풀 사이로 두 귀 삐죽 내밀고 두런두런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노루처럼 거무튀튀한 흙더미 사이로 동글동글한 꽃잎을 뾰족이 내밀고 가녀린 모습으로 돋아 꽃을 피웠습니다.

 

식물들에게 있어 꽃은 자궁입니다. 씨앗을 맺기 위한 수정이 이루어지고,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한 열매를 맺는 곳이니 식물에게 있어 꽃은 동물들에게 있어서의 자궁이 분명합니다.

 

자웅(雌雄)을 달리해 암컷과 수컷으로 나뉘는 동물들과는 달리 대개의 꽃들은 한 송이에 암술과 수술, 여자 생식기의 상징인 자궁과 남자 생식기의 앙증맞은 표현인 꼬추가 함께 들어 있어서 그 이름이 꽃(꼬추)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피식 웃어봅니다.

 

보송보송한 솜털을 뒤집어쓰고 있는 할미꽃과 목련, 성숙한 여인네처럼 속내까지도 훤히 드러나게 만개한 아네모네와 수선화, 입맞춤이라도 받아야 피어나겠다는 듯 삐죽하게 입술을 내밀고 있는 튤립 등이 봄날의 대지에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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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신음소리처럼 들려오는 물소리에 눈길을 돌리니 개구리와 도롱뇽의 알이 뭉텅뭉텅 잠겨 있습니다. 들리지 않는 교음에 마음 흔들리고, 보이지 않는 태동에 두 눈 깜빡이고 있으니 여자에겐 춘심으로 남자에겐 춘풍으로 다가온다는 봄이 이미 이만큼이나 다가와 있는 모양입니다. 다가와 있는 봄에서 춘풍이 일고 있음을 느끼고 있으니 50의 나이일지언정 아직은 청춘이려니 하며 행복한 착각에 빠져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중 사진은 지난 일요일(3월 8일) 찍은 것입니다.


태그:#노루귀, #초경, #행복,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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