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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낭소리> 할아버지. 성치 않은 노구를 이끌고,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아 수확을 올리는 반복적인 생활. 이게 어디 그 할아버지뿐이겠습니까?

 

머리가 하얗다 못해 파뿌리처럼 새하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시금치 밭에서 연신 허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생활화된 동작의 반복이었지요.

 

"할머니 뭐하세요?"

"보믄 몰러. 집에 있는디, 봄나물 냄새가 코를 간질거리잖여. 참을 수가 있어야지."

 

햐! 표현 하나 멋드러집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토요일 저희 부부도 산행 도중 "봄나물 냄새가 코를 간질거려" 여수시 소라면 현천으로 발길을 돌린 참이었습니다.

 

 

새하얀 머리 할머니를 움직이게 한 봄나물 '향기'

 

"시금치 밭에 달롱개(달래)가 있네요. 누가 씨를 뿌린 거예요?"

"아니여. 시금치 밭에 달롱개가 자꾸 나서 뽑는 중이여! 요건 뽑아도 뽑아도 자꾸 나. 지들이 알아서 씨를 뿌린당께. 이게 자연이여!"

 

"먹고 싶은 마음에 봄나물 향기가 코를 간질거린 게 아니라, 시금치가 잘 자라게 해달라고 조르는 거였네요?"

"고거시 먼 소리 다냐? 좀 쉽게 말 혀. 뭐~라고?"

 

"밭 매러 나오셨냐고요?"

"밭도 매고, 요 쌉싸름한 달롱개도 캘라고 나왔지."

 

"할머니 시금치 씨는 누가 뿌렸어요?"

"나넌 혼자 살어. 새끼들은 다 서울에 살어. 그랑께 이걸 누가 뿌리것써. 나가 뿌릿제. 요리 혼자서 싸박싸박 움직여야 써."

 

 

봄 향기, 할머니 표 '달래 파장'으로 피어나다

 

여든 넷인 박대례 할머니, 허리는 굽었어도 정정하십니다. 말씀도 거침없습니다. 파뿌리가 된 허연 머리를 이고 사시면서, 밭에 시금치 씨를 뿌린 걸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그게 즐거움이시니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삶의 방식일 테니까요.

 

박 할머니를 대하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워낭소리> 할아버지와 노동의 반복. 허리 굽은 할머니께서 몸을 놀리는 건 나름의 철학일 것입니다.

 

"요 달롱개는 파장 만들어 묵으믄 좋지, 향도 좋고."

 

이렇게 할머니의 봄나물 향기는 간장에 넣는 '달래 파장'으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거뉴스와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봄 향기, #워낭소리, #파장, #달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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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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