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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형님과 형수, 동생과 함께 경기도 평택에 다녀왔습니다. 금요일(6일)이 막내 누님 생일이었거든요. 오전에 전화로 축하를 대신하고 일을 보고 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와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누님 집에 도착하니까, 조카들이 케이크와 촛불, 술까지 준비하고 삼촌들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조카들과 오랜만에 둘러앉아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자르며 '생일 축하노래'를 합창하고, 동생이 준비해간 돼지곱창과 통닭을 안주로 맥주와 소주를 마시며 막내 누님의 예순세 번째 생일을 마음껏 축하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생일을 축하하고 즐겁게 보내기는 했지만, 지난 2월 중순에 자궁암 3기 진단을 받고 7시간 동안의 대수술 끝에 천만 다행히도 회복이 빨라 퇴원해서 항암치료를 시작한 막내 누님 문병을 다녀왔다고 해야 맞겠네요.  

 

2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고 자원봉사를 다닐 정도로 건강이 좋아져 모두 기뻐했고, 지난 연말과 설을 전후해서도 집에 다녀갔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자궁암 3기 진단이 내려졌다고 해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요즘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속담이 저를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송년회 때도 7남매가 모여 웃고 즐겼던 10년 전과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지요.

 

10년 전만 해도 건강했던 큰 누님은 노인성 치매로 자식도 못 알아보고, 둘째 누님은 합병증에 다리가 부실해서 행동이 부자연스러우며, 셋째 누님은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상에 있는 매형을 10년 넘게 병간호하느라 고생하고, 막내 누님까지 이렇게 되었으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크고 작은 병고를 치르는 게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명이라고는 하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형제가 아플 때 병문안하러 다니고, 가족이 모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막내누님

 

여자는 좋은 남편을 만나 자식 낳고 일부종사(一夫從事)하는 게 가장 큰 미덕이요 행복이라고 믿었던 부모님 뜻에 따라 누님 넷은 모두 초등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밥을 해먹으며 살림하는 법과 바느질 등을 배워서 일찍 결혼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하던 해 가을에 셋째 누님이 시집가자 바통을 넘겨받아 곧바로 밥을 해먹기 시작했던 막내 누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중학교만 졸업했어도 집에만 있지 않았을 거여"라는 말을 했는데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외상값을 못 갚은 빚쟁이처럼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명함판 흑백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야, 이 사진은 목욕탕에 갔다가 오는 길에 생각나서 찍은 사진인데, 꼭 여고생 같지?"라고 묻더군요. 어린 마음이었지만, "누가 봐도 그렇게 보겠네!"라고 하면서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막내 누님은 10년 가까이 밥을 해먹다 24세에 중매로 결혼했는데요. 형제들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나이 차가 4년밖에 되지 않아 친구처럼 지냈던 동생 처지에서 '미안하고, 안쓰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와서는 새벽기도 나가는 신앙촌의 새벽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들려주고, 해가 저물도록 운동회 연습을 하고 와서는 고생하는 여선생님 얘기를 해주는 등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얘기를 해주던 누님이거든요.

 

중학교에 진학한 초등학교 동창들이 교복을 입고 골목 앞으로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던 막내 누님 심정을 이해하는데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이지만, 누구보다 소중하고 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다녀온 여교수보다 존경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삶

 

어려서부터 살림꾼으로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했고, 집념이 강했던 막내 누님은 여군 하사관 시험을 보고 싶은데 자격이 중학교 졸업 이상이어야 한다며 속상해하다, 미용학원에 다녔고, 미용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합니다.  

 

미용사 자격증을 어렵게 취득한 누님은 가족은 물론 식객들의 밥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에 미용실에 다니지도 못하고 24세 되던 해에 초등학교 교사인 지금의 매형과 중매로 결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큰 뜻을 품고 교사직을 그만둔 매형 일이 잘 풀리지 않자, 가족의 생계를 떠안게 되는데요. 지하식당을 운영하며 이사 횟수가 20회는 넘고 30회는 조금 모자랄 것 같으니 시험을 봐야 확실한 답이 나올 것 같다는 말에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사 횟수가 말해주듯 온갖 역경 속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웃음을 잃지 않고 10년을 버텨온 보람이 있었는지, 매형이 교사로 복직되고 자원을 해서 섬으로 들어가 자린고비 정신으로 월급 100%를 저축하는 섬 생활이 시작됩니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어떻게 5년을 견뎠느냐고 물었더니, 학교 사택에서 살았으니 주거비는 하나도 들지 않았고, 찬거리는 텃밭에 가꿔 먹었으며, 생활비는 우유배달과 결혼 전에 배운 미용 기술로 섬 주민들 머리를 해주면서 해결했다고 하더군요.

 

생활비 절약에서 그치지 않고, 초등학교와 중학생이던 조카들도 어머니를 따라 우유와 신문 배달을 해서 집안경제에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해서 아파트도 남보다 일찍 구입했던 막내 누님은 매형이 정년퇴직하고서 연금이 나오는데도, 과수원으로 과일을 따러 다니면서 일당을 받아 모은 돈으로 집도 두 채나 장만하고, 자원봉사와 불우이웃 돕기 등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살았습니다.

 

 

이제는 딸도 좋은 직장에 다니고, 아들들도 결혼해서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있어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보며 아름답고 평안한 노년을 보내야 할 막내 누님이 유방암에 이어 자궁암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머지않아 누님이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난달 병원으로 문병을 갔을 때도 일곱 시간이나 걸린 자궁암 수술을 받은 환자라고 하기엔 너무 표정이 밝았고, 삶에 대한 욕구와 정신력이 누구보다 강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작년 6월 제 생일 때는 '쑥 개떡'을 해서 매형과 함께 부산까지 내려와 산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동백섬에 놀러 가서 사진을 찍으니까, "네 생일날 쑥 개떡 먹는 사진도 훗날에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꺼여."라며 만족해했던 막내 누님, 빠른 쾌유를 기원하며 예순세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막내누님#자궁암#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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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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