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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레인 온천 행 야간버스를 타기 위해 테헤란 터미널로 왔습니다. 차 시간까지는 시간이 있어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간 2층 식당에서 심각한 슬럼프를 경험했습니다. 이란으로 여행 나와 있는 현재의 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아까운 돈 써가며 왜 여기 있는 거야?'

 첼로케밥. 양고기로 만든 음식이다. 이 음식이 이란인이 가장 많이 먹는 대중식 중 하나다.
 첼로케밥. 양고기로 만든 음식이다. 이 음식이 이란인이 가장 많이 먹는 대중식 중 하나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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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돈 써가며 왜 여기 있는 거야?'

이 슬럼프의 발단은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의 음식 재료에 있습니다. 이란의 식당들은 우리나라 정육점처럼 안이 들여다보이는 냉장고에 식재료를 보관하다가 손님이 오면 꺼내서 만들어줍니다. 터미널 식당에서 그 식재료를 통해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한계를 봤던 것입니다.

기내식이나 아슈라 축제 때 길거리서 먹은 음식에는 실망했지만 그래도 돈 내고 먹는 식당 음식은 나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는데 그 희망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돼지 간처럼 생겼는데 이 나라가 돼지고기를 안 먹으니까 양간이 분명한데 그게 재료 칸에 떡하니 버티고 있고, 희멀건 고기는 꼬치에 꿰져있는데 그 모습 또한 먹음직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내 욕망을 절대로 채워줄 수 없을 것 같은 재료였습니다. 오히려 없던 식욕도 달아나게 할 모습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보따리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밥 좀 못 먹었다고 너무 호들갑스럽게 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앞으로도 내내 한국음식은 구경도 못할 테고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고기들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납덩이가 들어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사실 굶긴 굶었습니다. 이란 행 비행기를 타고부터 음식다운 음식 구경을 못했습니다. 이것저것 이란 음식을 맛봤지만 입에 안 맞아서 거의 맛보는 정도로 먹었기에 난 사실 서른여섯 시간 굶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끼만 굶어도 비이성적으로 변하는데 서른여섯 시간 동안 굶었으니 예민해질 법도 했습니다. 그러니 구경이고 뭐고 다 귀찮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음식은 습관이고, 익숙함이고, 길들여짐

언젠가 신문에서 중국 여행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먹을 게 없다고 투정하고,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사람까지 있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나라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한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국인이 이해가 갔습니다.

그리고 신혼 초 남편이 내가 만든 음식에 꼬투리를 자주 잡아서 섭섭했었는데 남편의 그 행동도 이해가 갔습니다. 충청도 사람인 남편은 '지진다'로 표현하는 국물이 자박자박한 그런 음식을 먹고 자랐는데 나는 '볶는다' 스타일의 음식만 만들었으니 남편의 불만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음식은 그냥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지요. 음식은 습관이고, 익숙함이고, 길들여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괴로운 것은, 난 맵고 짠 한국음식에 길들여졌고, 싱겁고 단 이란 음식에는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행의 목적은 익숙한 환경에서 낯선 환경으로 삶의 공간을 바꾸는 것입니다. 거기서 오는 스릴을 즐기는 것이고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간 속에, 변화무상한 공간 속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새로운 자신을 찾아내는 것일 것입니다. 익숙함만 고집하려면 여행을 나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결국 나의 고민은 난 여행을 나오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는 자조 때문이었지요.

"따끈따끈한 밥 위에 잘 익은 김치를 올려서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이 생각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터미널 2층 식당에서 폭풍처럼 엄습한 절망감은  고집스런 나에 대한 좌절이었습니다. 이 상태로 여행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 지 정말 걱정됐습니다.

 식재료가 보이는 냉장고. 이란의 식당은 이 식재료칸을 사이에 두고 한 쪽은 손님석, 한쪽은 주인이 요리를 만드는 곳이다.
 식재료가 보이는 냉장고. 이란의 식당은 이 식재료칸을 사이에 두고 한 쪽은 손님석, 한쪽은 주인이 요리를 만드는 곳이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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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위에 김치 올려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뭔가 먹여야 할 것 같아서 주문대 앞에 섰습니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아가씨는 내게 별로 신경을 안 썼습니다. 몇 시간을 고민을 하던지 말던지 주문 하나 하는데 하룻밤을 꼬박 새워도 신경 안 쓰겠다는 태도로 내가 앞에 서있는 건 아랑곳 않고 자기 일을 했습니다.

난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치킨 케밥을 주문했습니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치킨 케밥 아니면 양고기 케밥인데 양고기는 안 먹으니까 주문에서 제외하면 남는 건 치킨 케밥 뿐인데 그런데도 난 고민했던 것입니다. 식재료 칸에서 본 치킨의 모양새를 보고나니까 이 치킨 케밥도 마뜩찮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식당 안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밥 먹는 손님은 한 명도 없고 두 테이블에는 남자들이 모여 앉아 물 담배 파이프를 돌려가며 빨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뿜는 연기가 식당에 고여 있더군요. 그러나 담배처럼 매캐하지는 않았습니다. 물 담배는 니코틴이 없고, 박하나 사과, 오렌지 같은 좋은 향이 나기 때문입니다.

창가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마침내 음식이 왔습니다.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준 총각은 아주 작고 새카만 행주를 갖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먼저 그 더러운 행주로 식탁 위를 훔쳤습니다. 차라리 안 닦아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불결한 행주였습니다. 그는 행주질을 하면서 쓸데없이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아마 외국인을 처음 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낯설고 재미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가 가져다준 건 치킨 케밥인데, 닭고기와 밥, 난이라는 빵과 구운 토마토가 함께 나왔습니다. 애들은 토마토는 잘 먹었습니다. 탄 껍질을 벗겨내고 나도 한 조각 먹었는데 맛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토마토와 달리 수분이 적고 찰졌습니다. 

그런데 밥과 닭은 거의 남겼습니다. 불면 날아갈 것처럼 부스스한 밥은 먹기 어렵다 쳐도 사실 닭고기는 특별한 양념 없이 그냥 구웠기에 맛이 없을 것도 없는데 이란 고기는 너무 싱겁기 때문에 누린내가 난다는 선입견이 이란 음식을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란음식을 거의 못 먹고 있는 우리 가족과 달리 옆 테이블에 앉은 우리 일행 중 두 사람은 닭고기 케밥이 아니라 양고기 케밥을 시켰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도 현지인들처럼 버터를 넣고 비벼서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우리와 달리 그들은 이란 음식을 즐겼습니다.

그이도 나처럼 한국 사람이라 된장을 즐기고 김치를 즐기고 맵고 짠 한국음식에 길들여졌을 텐데, 그런데도 우리 음식과는 완전히 다른 맛을 갖고 있는 이란 음식을 즐기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익숙함에 대한 집착 보다는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수용의식이 강한 사람인 모양입니다. 그런 면에서 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이 별거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받아들이면 행복한 거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것이지요. 현지의 내 현실은 이란 음식인데 난 이 현실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태그:#이란음식, #첼로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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