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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자기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 유디트는 자기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  《안케 드브리스/박정화 옮김-두 친구 이야기》(양철북,2005) 95쪽

유디트라는 아이는 어머니 사랑을 못 받고 살아가는 아이라고 합니다. 늘 주먹질과 몽둥이질에 시달립니다. 어깨 한 번 못 펴고 아픔과 슬픔에 허우적거리며 살아갑니다. 이제 고작 열 살 남짓 되는 어린아이는 벌써부터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 자기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
 │→ 자기가 세상에 없었으면 좋았겠다고
 │→ 자기가 어디에도 없었으면 좋았겠다고
 │→ 자기가 어디론가 사라지면 좋았겠다고
 │→ 자기가 살그머니 없어지면 좋았겠다고
 └ …

아이가 "이 세상에 없었으면" 하고 생각한다면 누구보다도 부모 탓이 크다고 할 테지요. 그런데, 그동안 아이 둘레에 있던 이웃사람이나 학교 교사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또래 동무들은 이 아이를 어떻게 마주했을까요. 고작 열 몇 살짜리 어린이가 죽음을 떠올리도록 하는 일은, 문학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이 자꾸자꾸 듭니다. 나라밖 문학작품 이야기라고만 여기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듭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도 버젓이 일어나는 일일 뿐더러,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우리 아이들이 이처럼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도록 내팽개치거나 내버리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끝없이 듭니다.

말 그대로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을 선물하고 있는데, 이름뿐만이 아닌 참으로 '지옥'인 그 교육 터전을 고치려 하지 않아요. 외려,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몰면서 돈벌이에 매달립니다. 더 큰 돈벌이로 뻗어 나가려 합니다.

아이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고 없었으면" 하고 생각하지 않도록, 이런 생각을 떨쳐 낼 수 있게끔, 이런 생각을 이겨내면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손길은, 마음길은, 눈길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곱씹어 봅니다.

ㄴ. 나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 이 이민족의 문화에 대한 나의 열렬한 사랑을 분석해 보자면, 나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이가 내 마음에 어떤 아름다움과 감동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  《싼마오/조은 옮김-흐느끼는 낙타》(막내집게,2009) 58쪽

"이 이민족(異民族)의 문화에 대(對)한 나의 열렬(熱烈)한 사랑"은 "이 다른 겨레 문화에 뜨겁게 바치는 내 사랑"이나 "이 다른 겨레 문화를 뜨겁게 사랑하는 내 모습"으로 다듬어 봅니다. '분석(分析)해 보자면'은 '살펴보자면'이나 '들여다보자면'으로 손봅니다. '차이(差異)'는 '다름'으로 손질하고, "만들어 내는 것 같다"는 "만들어 내는 듯하다"나 "만들어 낸다고 본다"로 손질해 줍니다.

 ┌ 나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이가
 │
 │→ 나와 그들 사이에 있는 엄청난 다름이
 │→ 나와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엄청난 다름이
 │→ 나와 그들 사이에 벌어져 있는 엄청난 다름이
 └ …

'異'민족이라고 하니, 틀림없이 우리하고는 차'異'가 있기 마련입니다. '다른' 겨레붙이와 우리하고는 '다름'이 있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다름을 놓고서 '다르기에 아름답고 좋고 반갑다'고 느끼는 마음그릇이 있는 한편, '다르니 나쁘다'고 여기는 마음그릇이 있습니다. 다름이 있어 즐겁게 받아들이는 마음그릇이 있으나, 다름 때문에 그 다름을 없애고파 하는 마음그릇이 있습니다.

 ┌ 나와 그들 사이는 엄청나게 달라서
 ├ 나와 그들 사이는 엄청나게 다르기에
 ├ 나와 그들 사이는 엄청나게 벌어져 있어서
 └ …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서로가 아름답게 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서로한테 새삼스러운 맛과 멋이 깃들게 된다고 봅니다. 누군가는 영어를 배우고 누군가는 한문을 배우고 누군가는 일본말을 배우면서, 저희들 나름대로 저희들 삶을 가꾸게 됩니다. 학문을 익힐 수 있으며, 땅을 일굴 수 있고, 자동차를 몰 수 있으며, 기계를 만질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삶을 가꿉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꿈을 키웁니다. 똑같이 맞추는 생각틀이 아닙니다. 다 달리 풀어놓는 생각틀입니다.

똑같은 지식을 집어넣는 학교교육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 달리 다 다른 집에서 다 다른 어머니한테서 태어났는데 다 다른 사람으로 크도록 이끌 수 있는 학교교육이어야 합니다. 한 어머니 배에서 태어났어도 둘은 다른 아이입니다. 한집 식구라 하여도 저마다 다른 사람입니다. 이 다름을 꾸밈없이 느낄 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바라보고 껴안으면서, 서로가 제 즐거움을 찾아 걸어갈 길을 높이 사거나 돌보게 됩니다. 누군가는 골목집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아파트를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멋을 키우면 됩니다. 누군가는 가르치는 데에 보람을 느끼고 누군가는 땀흘리는 데에 보람을 키우는 재미를 살찌우면 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배우고 주고받는 말은 얼핏 느끼기에 똑같은 말 같지만 하나도 똑같은 말이 아닙니다. 고장에 따라 다르고 집안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이 다 다름이 '한겨레 말'이라는 테두리에서 모두어질 뿐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살빛과 몸집과 눈빛과 머리빛이 달라도 '사람'이라는 테두리로 모두어지는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아내는 말그릇을 보듬을 노릇입니다. 서로서로 다른 삶을 나누는 말그릇을 추스를 노릇입니다. 서로서로 다른 넋과 얼을 키우는 말그릇을 가꿀 노릇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존재#한자#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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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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