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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3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넘었고 서당개가 풍월을 읊는다는 10년이 넘었습니다. 뭐가 13년이냐고요? 내가 인천 남동구의 한 빌라로 이사해서 살고 있는 지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 동안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처음 입주했던 14가구 가운데 아직까지 살고 있는 가구는 내 집까지 포함해서 딱 두 집뿐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액에다 고이자의 은행 대출금을 막아내기가 어려워서였을 것입니다. IMF 때 대출받았던 2100만원에 대한 17%의 이자는 중산층도 아닌 서민들로서는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집집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또 이사를 왔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입주했을 때는 서로 알고 지냈는데, 이제는 누가 누군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니까 복도를 오르내리다가 마주칠 때도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갈 뿐입니다.

몇 년 전에는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며 멀리 희미하게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게 즐거웠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옥상에 올라가는 일이 뜸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옥상 공간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옥상에 올라갈 때부터 조짐이 안 좋았습니다. 계단에 담배꽁초가 두 개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따금 내 집 철문 앞에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나마 그 위층 계단에 있었으니 다행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 집 문 앞에 버려져 있곤 하던 담배꽁초가 한 층 위에 버려져 있는 것은 그래도 다행한 일일까요?
▲ 사이좋게 바라보고 있는 담배꽁초 내 집 문 앞에 버려져 있곤 하던 담배꽁초가 한 층 위에 버려져 있는 것은 그래도 다행한 일일까요?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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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많이 피웠을까요, 두 사람이 사이좋게 많이 피웠을까요, 아니면 여러 사람이 모여서 피웠을까요?
▲ 여긴 더 많군요 한 사람이 많이 피웠을까요, 두 사람이 사이좋게 많이 피웠을까요, 아니면 여러 사람이 모여서 피웠을까요?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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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일이? 옥상 문을 열고 옥상 바닥을 밟은 나는 눈앞에 펼쳐지는 고약한 풍경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사는 빌라라서 창피한 얘기지만, 옥상 구석구석에는 담배꽁초들이 마치, 전시장에 일부러 공들 들여 차려놓은 것처럼 무더기로 모여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국산도 아닌 일제 마일드세븐 담배갑까지 말씀이죠.       

이따금 추운 겨울인데도 옥상에서 남녀 고등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나는데, 꼭 그 아이들이 담배를 피웠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어쨌거나 무수한 담배꽁초의 양으로 보아 옥상에 자주 올라가는 사람들이 피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개의 담배갑 중에 다른 것은 없고 마일드세븐밖에 없는 걸로 미루어 한 일행들이 그렇게 고약한 경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경범죄처벌법 제1조 관련 범칙행위 및 범칙금액표를 보면, 담배꽁초 한 개를 버리다가 걸리면 물어야 하는 범칙금이 3만원입니다. 담배 12갑을 살 돈입니다. 그런데 저 패잔병처럼 무수히 널려 있는 담배꽁초에다 3만원을 곱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금액이겠습니까. 10개면 30만원, 100개면 300만원입니다.

물이 있는 곳에 일부러 버린 건지, 버련 뒤에 물이 고인 건지 궁금하네요
▲ 담배꽁초가 물을 좋아하나봐요 물이 있는 곳에 일부러 버린 건지, 버련 뒤에 물이 고인 건지 궁금하네요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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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만 버리니까 아쉬웠나봐요, 담배갑까지 추가했군요
▲ 여긴 진짜 많군요 담배꽁초만 버리니까 아쉬웠나봐요, 담배갑까지 추가했군요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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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환경미화원들이 청소를 하니까 그렇지, 길거리에서도 담배꽁초를 발견하기란 아주 쉬운 일입니다. 번화가에서는 쉼터에서 멀쩡하게 생긴 20대 여자들이 서거나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도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한 방법이라면 "그래요, 좋습니다"라고 합시다.. 문제는 아무데나 버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지적이고 점잖게 생긴 한 20대 여성이 골목에서 나오는데 입에 담배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발견하더니 조금 무안한지 담배를 길바닥에다 침 뱉듯이 툭 하고 버립니다. 까무러칠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고약한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의무경찰 세 명이 조를 이루어 순찰을 도는 것을 볼 때가 있는데, 그 고생하는 분들에게 담배꽁초 투기 단속의 힘을 실어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니, 차라리 환경미화원들에게 담배꽁초 투기 단속의 권리를 주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세수(稅收)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어떻습니까? 담배를 안 피웁니까? 어제 신문 연재소설 건으로 만났던 지역신문 편집국장님이 물으시더군요.

"담배 안 피우세요?"
"예, 안 피웁니다."
"원래 안 피우셨어요?"
"아뇨. 상고 졸업하고 직장 다닐 때나, 직장 그만 두고 대학 다닐 때는 정말 골초였습니다."

"글 쓰시는 데 담배 피우지 않으면 답답하지 않으세요?"
"글쎄요, 담배 피우는 건 사실 글 쓸 때 피우는 맛보다 10분간 휴식할 때 피우는 게 더 맛있지요. 글 한참 쓰다가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커피 마시고 그랬는데, 그것도 담배가 떨어지면 담배 사러 가기가 귀찮아지니까 좀 그렇더라구요. 그리고 담배값이 훌쩍 오른 뒤로 담배 사기가 버거워졌구요. 그래서 담배를 아껴 피우기 시작했죠. 10분간 휴식 때도 커피만 마시고, 밥 먹은 뒤에 한 개비, 화장실 가서 한 개비, 뭐 이렇게 피웠죠."
"그러다가 완전히 끊으신 거예요?"

"하여간 날이 갈수록 가난해지니까, 피울 담배 살 돈이라는 게 어디 있어야지요. 어쩌다 술자리에서 담배 좋아하는 아무개라는 사람이 두 갑 사와서 한 갑씩을 주고 하니까, 집에 가서도 그게 눈에 띄어서 이따금 피우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그 사람이 사업장을 서울로 옮기고 나서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니까, 쌀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나한테 담배 산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 되어버렸지요.

생각해 보세요. 담배가 없는데 담배 사러 가기 귀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담배 살 돈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돈의 여유가 있을 때까지는 담배를 안 피우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단골 실내포장마차 외상값을 몇 년 동안 못 갚을 정도로 돈의 여유가 장기간 생기지 않다 보니까 담배와는 아예 상면조차 하지 못했지요.

모든 게 버릇이잖아요. 풍습이라는 것도 그렇고, 이 닦는 것도 그렇고, 목욕하는 것도 그렇고, 청소하는 것도 그렇고, 술 마시는 것도 그렇고, 담배 피우는 것도 그렇지요. 해 버릇하면 저절로 하게 되는 거고, 안 해 버릇하면 저절로 안 하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담배 사는 것과 담배 피우는 일을 하지 않을 버릇하니까, 어쩌다 돈에 여유가 좀 생겨도 담배 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하하."
"듣고 보니 그렇네요."

어떻습니까? 담배 끊기 너무 쉽지 않습니까? 이참에 <오마이뉴스> 독자 분들 중에 흡연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올려야겠어요. 담배 끊기 어려우세요? 저처럼 가난해져 보세요. 5000원이 있으면 배가 고픈데 밥을 사 먹어야지 담배 두 갑을 사 먹겠습니까? 담배 살 재주가 없으면 담배 피울 재주도 없어진답니다. 아셨죠? 담배 끊기가 세상 일 중에 제일 쉬운 일이랍니다.

하지만 담배갑을 가운데 두고 맥주병은 차렷 자세를, 소주병은 낮은 포복을 하고 있군요
▲ 다행히 담배꽁초는 발견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담배갑을 가운데 두고 맥주병은 차렷 자세를, 소주병은 낮은 포복을 하고 있군요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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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담배꽁초, #흡연, #담배, #금연, #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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