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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녹색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많이 들어본 건 아마 최근 몇 달간이 아닐까 한다. 지난해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8·15 기념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후 우리 사회에는 녹색이란 말이 넘쳐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뉴질랜드 방문에서 '녹색협력' 강화를 주제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말만 무성할 뿐, 되어가는 양상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는 것이다. 녹색은 무릇 자연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연을 아끼고 보전하며 손상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와 가치를 의미하는데, 과연 지난 1년간 정부의 다양한 정책과 행위가 녹색이란 이름에 값하는 것이었을까?

 

되짚어 보자면 우리 사회에서 성장전략에 환경을 결합시켜 구호로 내건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 21세기는 기후변화로 대변되는 환경위기의 시대, 고유가로 대변되는 에너지위기의 시대라 불린다. 이에 정부는 이러한 위기의 파고를 넘으면서 성장을 이루자며, 아니 이러한 위기를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자며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구호를 전면에 내걸었다. 저탄소 녹색성장! 예전의 개발지상주의적 구호에 비해 거부감을 유발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매력적이라 느껴지기조차 한다.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성장하고, 환경을 돌보는 것이 오히려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기치를 높이 내걸어서 환경에 대해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배려하거나 고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도 현정부가 환경친화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저탄소 녹색성장 개념의 화려한 등장

 

녹색 성장담론 못지않게 강(江)에 대한 담론이 이명박정부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을 보면 녹색의 실체가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반대한다면 대선공약이었던 대운하사업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이 나오기 전, 경부운하는 한반도 대운하로 범위가 넓어졌고 운하의 목적도 '물류운하'에서 '관광운하', '지역개발운하'로, 나중에는 '지구온난화문제 해결 운하'로 여러차례 바뀌었다. 도무지 운하 건설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 시민들은 운하논쟁에 휘말려야 했고, 한동안 이 문제는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을 필두로 운하반대 전국 교수 모임, 운하반대 국민행동 등의 문제제기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가면서, 여론조사에서 80% 이상의 국민이 운하 건설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후 "국민이 반대하면"이라는 단서가 붙은 상태이긴 했지만 그렇게 운하문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고 잠정적이었으며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2008년 12월 15일에 발표된 '지역발전 종합대책'에 4대강 정비사업이 핵심 사업으로 포함됨으로써 다시금 강이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게다가 올해 1월 6일 정부가 다시 '4대강 살리기 및 주변정비사업'을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녹색 뉴딜사업으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대통령의 6월 운하 관련 선언에 이어 운하태스크포스가 해체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은 비밀리에 태스크포스팀이 가동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해 12월 29일 사업 선도지구로 선정된 경북 낙동강 안동 지구와 전남 영산강 나주 지구에서 '사전 환경성 검토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착공식이 있었다. 그리고 3월부터는 운하건설 작업에 착수할 태세이다.

 

지금도 4대강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고 4대강을 되살리려는 사업은 현재 추진 예정인 4대강 정비사업과는 달라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며 경인운하의 경제성 분석에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견을 모으고 들으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치수(治水)와 이수(利水), 친수(親水)라는 이름으로 강의 모양을 바꾸고 바닥을 파내고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곳에 각종 체육시설과 놀이공간을 만들고 자전거 길을 만들려 한다. 도대체 무엇이 녹색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렇게 집권 1년이 넘도록 운하라는 망령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전국토가 공사현장처럼 보이게 건설의 망치소리가 들려야 한다"거나 "4대강 유역 사업은 준비되는 대로 빨리 전광석화처럼 시작해야 한다"는 발언은 우리가 개발시대로 회귀한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명박정부 1년은 '녹색담론'이 전면에 부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가 전혀 녹색스럽지 않다는 비극적 역설의 결정판이다.

 

환경부의 자기부정과 정체성 상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담론의 역행과정에서 국토환경 보전을 존재이유로 하는 환경부는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부처가 만들어진 이래 환경부는 이제껏 다양한 개발정책이나 환경파괴적 경제활동에 대해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일정정도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1년 동안 환경부가 다른 부처에 맞서는 모습을 보인 적은 거의 없으며, 4대강 정비나 경인운하 사업과 관련해서 개발부처와 갈등을 겪는다는 이야기 한번 들리지 않았다. 4대강이 죽어 있다면 그간 4대강 수질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환경부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다는 얘긴데,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는 모습을 보기도 어려우며, 역으로 그간의 부실(?)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환경부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지난해 초부터 환경부는 규제완화를 단행해왔다. 지난 4월 중점 관리과제 5건, 일반과제 72건을 대상으로 하는 1차 규제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래 규제개혁을 실시했는데, 11월에 발표된 이행실적에 따르면 등록과제 수가 122건으로 늘어나 있으며 완료된 사업이 46건에 이른다. 한때 규제 성공사례로 환경부의 낯을 세워주었던 1회용 컵 보증금 폐지를 시작으로 상수원 보호구역 공장입지 규제 완화, 소규모 공장에 대한 사전 환경성 검토 면제, 공사장 소음기준 후퇴,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규제 완화, 수도권 자연보전권역 규제 완화, 수도권 공장 신·증설 대폭 허용, 그린벨트 해제 등 그간 사전예방의 원칙을 향해 꾸준히 다듬어왔던 다양한 환경규제가 봇물 터지듯 해제 또는 완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규제완화 조치로도 지속가능성을 너끈히 유지하거나 높여갈 수 있다면 뭐가 문제가 될까마는, 널리 알려진 대로 우리 사회의 환경지속성 지수는 2005년 기준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의 ESI 평가 결과 146개국 중 122위였다. 그나마 2008년 환경성과지수(EPI)에서 149개국 중 51위였지만 생태계 지속성 분야에서는 109위에 머물렀다. 지금 우리가 규제를 완화할 때인가?

 

환경부가 진단한 사업의 성과를 보면 대부분이 (개발)사업자의 부담 경감, 산업계의 경제적 부담 완화 등이다. 그리고 다시 2009년에는 불합리한 토지이용규제 개선, 기업경영환경 개선, 국민생활 편의 제고, 저탄소 녹색성장 지원 및 기술개발 저해규제 정비 등 4대 분야 86건의 규제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제껏 환경부는 어떤 명분으로 지금 풀고 있는 규제정책을 지속해왔는지 새삼 의아할 지경이며, 환경부의 존재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대운하에 대해서도 환경부는 하천정비와 수질관리를 명분으로 사업추진을 지지했으며, 심지어는 운하사업 추진을 지원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하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수질관리는 환경부가 더 잘 알듯이 하천으로 흘러드는 폐수를 제대로 관리하는 데서 시작해야지 준설과 제방 쌓기, 친수시설 만들기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환경에 관심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경부의 최근 행태에 대해 자기부정 행위이자 정체성 상실 행위라고 개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부 스스로는 지난 1년간의 행적에 대해 자화자찬에 가까운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환경부가 발표한 '환경정책 1년 평가'에서 환경부는 "환경·경제·사회의 조화로운 발전 기반 마련"이라는 총평을 내리면서 2012년까지 22만 5천개의 일자리 창출, 사전 환경성 검토 면제 확대, 상수원 입지규제 완화 등 환경규제 합리화 등을 주요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성과들이 환경부의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것인가? 아마 발행기관명을 감춘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국토해양부의 보고서로 착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환경부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녹색성장,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이명박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된 녹색성장에서는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도 묻지 않은 채 성장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녹색은 성장을 견인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녹색이 성장을 위한 포장용 수사나 말의 성찬으로 보이는 것은 진정한 녹색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이 부족하고 맥락을 제거한 자연개조형 토목공사가 녹색인 양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한물간 녹슨 성장전략의 반복일 뿐이다. 녹색이 녹색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창비주간논평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윤순진 기자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입니다. 


태그:#이명박정부, #녹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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