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들만의 소통.'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1년차를 줄여 평가하자면 이렇다. 보수와 진보, 여야를 떠나 가장 많이 거론된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이 '소통 부족'이었다는 얘기다.

 

소통 부족은 집권 초기 '강부자' 혹은 '고소영' 내각으로 나타났다. 이어 집권 2년차로 넘어가는 시기에 단행된 4대권력기관 인사에서도 '그들만의 소통'은 고스란히 유지됐다. '친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TK(대구·경북)'에 편중된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세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불통령'이라 꼬집었을까? 그런데 그토록 '소통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 대통령이 최근 '소통의 한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스킨십'을 한껏 발휘해 화제다.

 

 

전여옥엔 "너무 놀랐다" - 차명진엔 "몸 좀 조심하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입원 중인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질랜드-호주-인도네시아 3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이었다.

 

"(폭행사건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세상이 이래서 힘들고 괴롭지만 함께 애써서 바로잡자."

 

이 대통령은 "뉴질랜드 등 순방을 가는데 갔다 와서 만나자"며 "쾌유를 바란다"고 위로했다. 이에 전여옥 의원은 "바쁘신데 감사하다"며 이렇게 화답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라가 위험한 상태에 왔다. 대통령이 더 큰 용기를 내야 하고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두렵고 힘들지만 더 큰 용기를 내겠다."

 

전 의원은 폭행사건의 발단이 된 '동의대사건 재심 법안'과 관련해서도 "소신을 가지고 추진한 것인 만큼 열심히 하겠다"고 강한 집착을 보였다.

 

전 의원은 지난달 27일 '동의대사건 재심 법안' 추진과 관련,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부산지부 회원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과정에서 눈을 다쳐 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그는 전치 3주 진단을 받은 상태다.

 

이 대통령의 스킨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2일)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에게도 위로전화를 걸었다.

 

"왜 만날 앞장서다 다치느냐. 몸 좀 조심하고 쾌유하라."

 

마치 아버지가 다친 아들에게 건네는 말로 착각할 정도로 섬세한 스킨십이다. 이에 차 의원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차 의원은 지난 1일 저녁 7시 30분께 한나라당의 국회 본청 로텐더홀 점거농성에 항의하는 민주당 당직자들과 시비가 붙었다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정작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 '국민 섬기는 정부' 팻말 내려야

 

보통 대통령이 사적으로 개별 의원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이번 경우에는 여당 의원들이 다쳤으니 '사적인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MB 스킨십'은 한나라당의 '입법전쟁'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 목적이야 어떻든 국가지도자가 다친 입법부 의원들에게 전화를 직접 걸어 위로하는 모습은 나쁘지 않다.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자유에 속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정서상 '미담'으로까지 평가할 만한 일이다. 또 국회와의 소통 시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스킨십을 야당 의원들이나 국민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특히 최근 5명의 가족을 잃은 용산철거민참사 유족들에게는 스킨십은커녕 그들을 '폭력의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무법자'로 만들어 버렸다.    

 

유족들은 대국민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검찰수사를 핑계로 '선 진상규명'만 강조하며 대국민사과를 거부했고, 최고책임자였던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게도 지휘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

 

용산철거민참사 때에는 그토록 '진상규명'을 강조하더니 경찰조차 폭력행사의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도 이 대통령은 전 의원에게 위로전화를 걸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힘없는 5명의 시민이 죽고 공권력을 수행하던 경찰이 죽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대통령이 자신이 지시해 MB악법을 처리하다가 다친 의원들은 불쌍했든지 위로전화를 한 모양"이라며 "99%의 서민과 국민은 안중에 없고 1%의 특권층과 지지자들에게만 온 정신을 쏟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은 기억하고 있을까? 최소한 그의 취임사에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는 나라", "소수와 약자를 따뜻이 배려하는 나라"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수사'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그에게는 '고소영'이나 '강부자' 그리고 '여당 의원들'만이 '섬겨야 할 국민'이었던 모양이다.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겠다'는 이 대통령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섬기는 정부'라는 팻말은 내려야 한다.


태그:#이명박, #전여옥, #차명진, #용산철거민참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