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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36년 차이가 나는 띠 동갑 아들이 하나 있다.

원래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호방한(?) 성격인지라 일류 대학은 못 가고 지방 대학의 사진학과에 겨우 진학하여 1학년을 마치더니 작년 3월에 군대를 가겠다며 덜렁 휴학을 하고 올라와 신체검사 과정에서 면제 받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는지(?) 6살 때 다니던 병원까지 찾아다니며 진단서를 떼어 병무청에 제출하는 등 군대 면제받으려고 노력을 하더니 결국은 포기하고 군대를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약 1년을 놀면서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나름대로 세상 경험을 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일견 없지 않았으나  중요한 시기에 1년을 허송세월 하는 것 같아 부모로서 속도 많이 끓었다.

하지만 막상 군대를 간다하니 짠한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3월 2일 월요일 오후 한 시까지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라는 명령을 받아두고 약 한 달을 연락 없이 집에 안 들어오는 등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행동했는데 입대하는 녀석을 뭐라고 나무랄 수가 없다.

입대 전전날 격려차 방문한 이종 사촌 형들과 함께 한 빡빡머리 장정
▲ 격려차 방문한 이종 사촌 형들과 입대 전전날 격려차 방문한 이종 사촌 형들과 함께 한 빡빡머리 장정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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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 내가 군에 입대할 때는 어린 나이에도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야 한다"라는 굳은 신념 같은 것이 있었던 터라 가기 싫고, 어쩌고 한 것을 느낄 경황조차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만큼 자유분방하게 생활을 하고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군대라는 조직이 속박된 생활을 해야 하고,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하고,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얼마나 가기 싫을 것인가?

입대 전날 파르라니 깎은 빡빡머리에 털모자를 눌러쓴 모습을 보고 정말 입대를 하기는 하는가 보다 싶다. 체격은 크지만 철없는 것을 생각하며 "하루 휴가를 내고 논산훈련소까지 데려다 주겠다" 했더니 펄쩍 뛰면서 반대를 한다. 월요일 1시까지 입소니 일요일 저녁에 고속버스로 대전으로 내려가서 친구 집에서 자고 친구와 함께 논산으로 가 입대하겠다며 고속버스 터미널에도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의외로 강경하다.

입대 전날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다시 데려다 주겠다"고 했으나 절대로 싫다는 것이다. 말은 조용히 다녀오겠다는 것이 이유라고 하나, 아마도 TV 등에서 입소하는 장정이나 부모가 헤어지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 등을 보고 나름대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도, 보기도 싫은 모양이다.

결국은 설득(?)을 하여 입대 전날 대전 친구 집으로 내려가서 하룻밤을 자는 계획은 포기하고 집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입소하는 월요일 새벽에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만 태워주는 것으로 낙찰을 보았다.

입대하는 날 새벽 5시에 잠을 깨워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6시 10분경이다. 분식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연무대행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가기 싫어하는 어정쩡한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사진도 찍고 여러 가지 얘기를 많이 했다.

고속버스 터미널 연무대행 승강장 앞에서 찍은 우리 가족 사진이다.
▲ 가족사진 고속버스 터미널 연무대행 승강장 앞에서 찍은 우리 가족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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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타기 전 아들 아이의 모습
 고속버스 타기 전 아들 아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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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군대에 입대하는 본인이나 부모, 다 같이 걱정이 많은 것은 당연한가 보다. 이유는 군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 원인일 것이다. 가기 싫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자식이나, 의연한 척 하려는 부모 마음이 눈에 보인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아들 녀석이 무심코 던진 "아들은 나라에 팔려간다" 라는 말 한마디가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하고도 남는다. 얼마나 가기 싫으면 저런 얘기가 나오는가 싶어 너무 짠하다.

논산행 고속버스의 표지판이 36년 전 내가 강원도 철원 근무할때 영종여객의 "철원행" 이라는 표지판 같은 느낌이 든다.
▲ 드디어 논산행 버스에... 논산행 고속버스의 표지판이 36년 전 내가 강원도 철원 근무할때 영종여객의 "철원행" 이라는 표지판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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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가기 싫은 표정을 감추려 억지 미소를 띠는 아들놈을 태운 고속버스가 승강장을 미끄러져 나가자 아내 또한 안타까움을 보이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짠한 부모 마음을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떠나는 버스 안에서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기는 하지만 미소의 의미를 도통 이해 할 수없는 애매한 분위기
▲ 알 수 없는 표정 떠나는 버스 안에서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기는 하지만 미소의 의미를 도통 이해 할 수없는 애매한 분위기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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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을 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여 9시 반쯤 되었다 싶은데 어느새 아들놈으로부터 문자가 온다. "아빠 연무대 앞 도착. 친구 기다리고 있음" "그래! 양주열 파이팅!" 하고 다시 문자를 보내고 눈을 감으니 갑자기 37년 전 논산훈련소 훈련병 시절 젊은 군종 장교가 정훈시간에 한 말이 생각난다.

"훈련병 여러분! 군대는 필요 악(惡)입니다. 국가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기는 한데 전쟁을 하기 위한 군인을 양성하는 곳이므로 악(惡)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군인이 있어야 합니다"하는 어쩌면 충격적이고 신선한 말이 생각난다. 맞는 말이라고 기억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징병제로 많은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인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정권유지 차원에서 남북문제가 다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병제로 되어가길 기원도 해보지만 출생률이 이렇게 낮은 상황에서는 어림없는 일인 것 같다. 부를 축적하여 외국인을 용병으로 쓰는 용병제 도입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2시 반쯤 점심을 먹는데 전화기가 다시 부르르 떨어 열어보니 아들 아이 문자다.

"이제 친구 만나 안으로 들어감. 걱정마숑. 자대 배치 받으면 연락하겠슴다. 건강 조심하세용."

제법 의젓한 신세대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벌써 보고 싶고, 더 걱정스러워지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손발은 청결히 할 것인가? 빨래는 제대로 하고, 관물 정돈도 제대로 할 것인가. 덜렁대는 성격은 어쩔 것인가?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 증세가 있는데 이는 어쩔 것인가?' 등등 너무 많은 걱정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이것이 부모 마음인가? 제발 아무 사고 없이 의무 기간을 마치고 의젓한 대한 남아가 되어서 귀향하기를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비는 것이 부모 마음인가 보다.

입대 전에 "주열이 데리고 목욕탕 가 때나 한번 밀어서 보내지" 했던 아내의 얘기가 새삼 귓전을 맴돈다.


태그:#논산훈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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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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