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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후 인천 남동공단 자티전자 노동자들이 텅빈 회사 사무실에 앉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2일 오후 인천 남동공단 자티전자 노동자들이 텅빈 회사 사무실에 앉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선대식

"회사의 고통분담은 야반도주였다."

2일 오후 인천 남동공단 자티전자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참담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노동자들은 지난달 25일 새벽 서울 관악구 인헌동에 있던 회사가 직원 몰래 이곳으로 이전된 후, 처음으로 회사에 찾아온 것이다.

회사 쪽 관계자들이 직원들에게 "왜 왔느냐?"며 출입을 막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새 회사 건물은 급하게 이전한 탓인지 생산설비는커녕, 정수기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직원 김윤서(가명·43)씨는 "회사 이전은 출퇴근이 어려운 직원을 자르기 위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반면, 회사는 "적자 폭이 큰 상황에서 이전은 불가피했다"고 반박했다.

자티전자의 '도둑 이전'은 심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현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많다. 노조 관계자는 "이미 한국경제가 중소사업장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전했다.

노동자 "고통 분담"... 회사, 일방적 협상 파기 후 야반도주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방배동 이광순 자티전자 대표이사 사택 앞에서 자티전자 노동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방배동 이광순 자티전자 대표이사 사택 앞에서 자티전자 노동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자티전자 노조

자티전자는 핸즈프리, 내비게이션 등을 만드는 벤처기업으로 연 매출은 약 110억원, 직원수는 120여 명이다. 10년 전 조그마한 사무실을 임대했던 이 회사는 현재 공시가 270억원에 이르는 10층짜리 사옥을 보유할 정도로 비약적인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지난 3년간 누적적자가 120억원에 달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지 못했고, 회사는 결국 지난 1월 6일 직원 38명에게 일방적으로 사직을 권고했다.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하자, 회사는 갑작스럽게 인천 남동공단 이전을 발표했다.

회사 쪽 김영진 총무이사는 "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연 임대료가 1억2천만원인 남동공단으로 회사를 이전하면 인헌동 사옥에서 7억원의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1월 20일 노조 설립 직후 이전 계약을 마쳤고, 2월 5일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하기 직전, 사옥 내 생산시설을 해체했다. 이 사이 직원 18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이후 노조는 "회사가 이전을 취소하면, 직원 1/2 휴업 임금 30% 삭감 등을 통해 매달 1억원의 인건비를 절감하는 고통 분담에 나서겠다"고 제안했다. '매달 1억원'은 이광순 자티전자 대표이사가 밝힌,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절감 목표액이다.

2월 13일 회사는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휴업 안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회사는 갑작스럽게 24일 오후 "회사를 이전할 수밖에 없다"며 일방적으로 교섭 내용을 파기했고, 결국 이튿날 새벽 회사 간부와 용역 직원이 '도둑 이전'에 나선 것이다.

"노조와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힌 김영진 총무이사는 "밤에 이전한 것은 낮에는 입주기업에게 피해를 끼치고 교통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을 정확히 언제 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은 (잘못으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노동자에게만 고통 전가... 회사 쪽 고통 분담은?

 2일 오전 인천 남동공단 자티전자 내부는 생산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채 텅 비어있다.
2일 오전 인천 남동공단 자티전자 내부는 생산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채 텅 비어있다. ⓒ 선대식

회사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하는 이전임을 이해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갑자기 합의를 깨고 '도둑 이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출퇴근하기 어려운 직원들을 자르기 위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서울 미아동에 사는 김수정(가명·44)씨는 "오전 6시 반 집에서 나와야 한다. 학교 가는 아이들을 깨우지도, 밥해 먹이지도 못했다"며 "경기도 남양주·의정부·구리·성남에 사는 직원들은 인천까지 도저히 출퇴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유진(가명·40)씨는 "이광순 대표이사가 2월 간담회에서 '직원 20%만 있으면 된다', '회사 이전 후, 6개월이면 모두 정리될 것'이라고 했다"며 "회사의 목표는 노동자 해고"라고 전했다.

또한 노동자들은 "지난 4년간 임금 한 푼 안 올랐지만, 대표이사 월급은 계속 올라 2000만원"이라며 "노동자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했지만, 회사는 근무조건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등 고통 전가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영진의 고통 분담과 관련, 회사는 "앞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120여 명의 직원 중 관리직·연구원 90명을 제외한 여성 생산직 노동자 30여 명의 한 달 평균 월급은 112만원에 불과하다. 연·월차가 전혀 없고, 결근을 하게 되면 월급에서 3만5천원이 빠졌다. 또한 이들은 독성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산재보험을 사용하지 못했다.

입사 7년차 김지수(가명·45)씨는 "IC칩 부식방지를 위해 독성물질 PBT를 사용하는데, 냄새가 지독하고, 눈이 아프고, 구토가 난다"며 "회사에서는 300원짜리 마스크 하나 사주지 않았고, 결국 2년 전 고막에 구멍이 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씨의 병에 대해 회사는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3~5월에는 회사가 "고통 분담하라"며 직원들에게 내비게이션 신제품을 강매했고, 이에 불응한 직원 20명을 쫓아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임동석 금속노조 자티분회 분회장은 "앞으로 일하면서 회사 이전 철회와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직한 남편과 함께 대학생(2학년)·고등학생(3학년) 자녀를 키우고 있는 김숙자(가명·40)씨는 "현재 월급 110만원으로도 매달 100만원씩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도, 무급휴직·임금삭감에 동의했다"면서 "고통 전가는 부당하다"고 전했다.

90여 명에 이르는 관리직·연구원들의 분노 역시 극에 달했다. 이상헌 기술연구소 과장은 "대졸 초임이 1800만원으로 동종업계에서도 꽤 열악한 대우지만, 열심히 일해 회사를 키웠다는 보람과 자부심이 있었다. 이번에 무참히 깨졌다. 싸우겠다"고 밝혔다.

자티전자 노동자를 돕고 있는 구자현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이번 자티전자 야반도주는 고용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담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배 늘었다.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를 띄우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선 중소사업장을 중심으로 해고 등 노동자에 대한 고통전가가 이뤄지고 있다. 결국 내수 침체로 이어질 텐데,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자티전자#야반도주#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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