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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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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년 전 일이다! 1년 전 오늘(2008. 2. 25 약간 어두웠던 날) 이명박 대통령은 '선진화 원년 선언문'이라 이름 지을 만한 취임사를 대한민국 온 국민 앞에 당당한 자세로 목소리 높여 내어놓았다. 그날 이후, 세월은 더딘 건지 빠른 건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유유히 흘러 가 1년 뒤 같은 날에 이르렀다.

다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 되었다고 난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좋아서? 아니, 여태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느냐 하는 푸념들이 많다. 온 국민이 다 그렇다고는 하지 않겠다. 죽으나 사나 이명박 대통령 지지하는 분들을 싸잡아 한통속으로 몰면 그분들이 서운하게 여길 터이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보수 인사들도 걸핏하면 이 대통령에게 짐짓 훈수 두고 여당 내에서도 시시때때로 볼멘소리 하는 것을 보면 뭔가 수가 뒤틀린 일이 많긴 한가보다. 어쨌든, 그렇게 기어이 1년이 흘렀다.

대한민국 산은 거기 늘 제자리에 있어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대한민국 강과 계곡 역시 거기 늘 같은 자리에 있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디 겉모습뿐이랴. 다들 제 모습만큼이나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아, 어디 그것뿐인가. 수십 년, 아니지 수백 수천 년을 거쳐 다듬어졌을 그 산과 강과 계곡은 어디 하나 함부로 손대면 안될 만큼 지금 모습 그대로 하는 일이 참 귀하다. 온갖 생물이 거기 깃들어 살지 않는가.

그러면 사람도 자기 능력껏 자기 분수껏 제자리 지키고 사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일 텐데, 너나 할 것 없이 '나도 최고 한 번 해보자' 하는 통에 시시때때로 이 나라는 사람이 사람을 잡으려는 것도 모자라 온 세상을 잡아먹을 것 같은 추태를 보이기도 한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자리 내 역할도 잘 감당치 못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자니 문득 이 대통령은 고단했을 1년을 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참조. 선진화의 길, 다함께 열어갑시다(이 대통령 취임사 전문/2008.2.25/오마이뉴스)]

1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무엇을 약속했나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2008년 2월 25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보고 있다.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2008년 2월 25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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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되었다. 아무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간이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대통령 취임 1주년인데 뭔가 의미심장한 행사들이 들려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내가 청와대 소식에 둔감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축 행사 소식에 대한 얘기를 듣기가 어렵다. 어쨌거나, 아무런 명성 없는 나 같은 이도 이렇게 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억하고 되짚어보고 있는데 말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대통령 취임사를 다시 보려 한다. 이유는 이렇다. 이 대통령이 2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4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5년 임기 꽉 채운 것도 아닌데 취임 1주년 된 이 시점에 벌써부터 5년치 분량이 될 만한 일들을 죄다 벌려놓고 연일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대통령은 마치 연호를 만들겠다는 것처럼 2008년을 '선진화 원년'이라 이름 지었다. 2008년은 그렇게 '선진화 원년'이라는 이름을 안고 출발했다.

이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을 진심으로 존경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요즘 같으면, 용산 철거민 참사 유가족에게 가서 물어보면 제일 빠르고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분명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해외동포 여러분"을 향해 취임사 말문을 열었다.

서두에 해당하는 말이 있은 뒤, 이 대통령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두 단락에 걸쳐 쏟아내었다. 아주 중요하다 본 두 단락 중 첫 단락은 국민에게 드리는 약속이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습니다. 문화를 창달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겠습니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평화 통일의 기반을 다지겠습니다.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겠습니다."

국민을 섬기겠다, 나라를 편안히 하겠다, 라고 말했다. 지난 1년이 마치 5년 분량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임 전부터 공교육 토대를 사정없이 뒤흔들고(영어몰입교육이 그 대표적 사건) 일본과 새로운 관계를 다진다며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비슷한 발언을 하기 시작했고 5월 전후로 불붙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는 아주 결정적으로 국민들 마음을 사정없이 뒤집어놓았다. 자, 이 대통령이 지난 1년간 국민과 나라를 편안히 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이 대통령께서 1주년 기념으로 자평해주시기 바란다.

이어서 이 대통령은 취임 1년차인 2008년에 애칭을 붙이듯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잃었던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업을 동시에 이루어 내었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힘으로 일구었습니다."

가만, 작년 광복절 때 우리는 광복절이 순식간에 건국절로 뒤바뀌어버린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우리는 분명 '건국 60주년'이라 이름 붙인 대대적인 정부 행사들을 보았다. 물론, 너나 할 것 없이 이는 헌법에 적시된 대한민국 법통을 무시하는 일이요 미군정 아래 치러진 선거로 시작된 정부 수립일에 말도 안 되는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라 질타했었다. 지금 다시 취임사를 보니, 건국 60주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말들이 있은 뒤, 이 대통령은 '선진화 원년'을 선포하기 위한 디딤돌을 두려는 의도였는지 대한민국 국민들의 피와 땀이 서린 지난 시간들을 추켜세우고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의 제약을 여유롭게 바라보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함께 전진"하자고 했다. 아,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라는 말이 왜 일본의 과거사 문제 흐리기와 겹쳐지는지 모를 일이며 "현실의 제약을 여유롭게 바라보"자는 말이 왜 재벌기업·대기업들에게만 해당하는 말로 들리는지 모를 일이다.

정신을 좀 차릴 즈음, 이 대통령은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이룩하는 데에 나와 너가 따로 없고, 우리와 그들의 차별이 없습니다. 협력과 조화를 향한 실용정신으로 계층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고자" 한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그런가보다 할 수 있는데 그 뒤에 이어진 말이 지금 상황에서 보면 아주 이율배반이다.

"정부가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는 나라,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가고 노사가 한마음 되어 소수와 약자를 따뜻이 배려하는 나라, 훌륭한 인재를 길러 세계로 보내고 세계의 인재를 불러들이는 나라, 바로 제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자, 다들 이를 어찌 해석하시려는가. 어떻게 받아들이시겠는가. 이 대통령이 지난 1년 간 그려온 대한민국의 모습이 지금 위 발언과 조금이라도 일치하거나 비슷하기라도 한가 말이다. 이 대통령과 정부가 지난 1년간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고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가게 하"고 "노사가 한마음 되어 소수와 약자를 따뜻이 배려하"게 여건을 조성하고 훌륭한 인재가 그렇게 원활하게 오고 가는 나라를 만들었는가 말이다. 이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이에 대해 속시원한 답을 해 줄 수 없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라고 이를 속 시원히 다 말해줄까. 사실상 완전히 사장된 것이나 다름 없는 그 '747공약'처럼 말 꼬리나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 발언 상당 부분을 경제 분야로 채웠다. 정부마다 동일하게 언급할 만한 문제들(남북 문제, 한미관계, 동북아 관계, 교육·여성·복지·장애인·청년(실업)·주택·중소기업·농어민(지원) 문제 등등)은 어김없이 들어 있었다. 재밌는 것은 "다음 60년의 국운"이나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표현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표현은 현재로선 오로지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에나 어울릴 용어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이 말하는 정치의 근본은... 국민을 불안하게?

2008년 2월 25일 오전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 전국에서 모인 수만명의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
 2008년 2월 25일 오전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 전국에서 모인 수만명의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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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 대통령 취임사는 그렇게 흘러갔다. 마음에 들거나 그렇지 않거나 무난하게 끝나는가 싶었지만, 물론 그땐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 보면 다시 한 번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가 뒷목 잡을 만한 발언이 취임사 후반부에 다시 끼어들었다.

"정치의 근본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변하지 않고는 선진일류국가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발전 방향과 실천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합니다. 민생고를 덜어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실용정치의 기본입니다."

더 이상 같은 말을 반복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으로 건넬 만한 덕담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만일 이 대통령이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으니 오히려 남은 4년을 지켜봐달라'는 말을 한다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정책의 뼈대요 토대인 '실용정치'가 여전히 그 의미조차 불분명한 마당에 1년차 대통령의 지난 1년치 국정 운영 결과를 논한다는 것은 100% 무의미한 일일 뿐이다.

지금은 보수 세력도 여권도 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드러내놓고 축하해줄 상황이 아니다. 다만, 임기 시작 전부터 섬기는 지도력을 실천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한 이 대통령 스스로 자숙하고 또 자숙하면서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고 긴(!?) 4년 국정 운영 토대를 재설정해야 한다.

한편, 이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지 말지 알 수 없는 사이,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은 오로지 다음과 같은 미묘한 말 한 마디를 밑도 끝도 없이 곱씹어 볼 뿐이다.

'정치의 근본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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