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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요? 저는 학창시절 때부터 아버지를 싫어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더라고요."

 

슬하에 딸 하나를 둔 평범한 가장인 임상철(44)씨도 아버지를 닮아가는 게 싫었다고 합니다. 그가 아버지를 싫어한 이유는 '술'과 '무관심'이었다 합니다.

 

"어릴 적, 교사였던 아버지는 술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가족들은 술 취해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를 무척 싫어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집이 멀어 오시는 길에 술 드시는가 보다며 아버지의 직장이었던 학교 정문 앞으로 이사를 했어요."

 

이사로 인해 귀가 시간이 빨라질 걸로 알았는데, 아버지의 귀가는 여전했다 합니다. 대신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집이 있는 학교 정문으로 나오시는 게 아니라, 집을 피해 살짝살짝 후문으로 나가 술을 드시는 거예요. 비열한 방법이었지요. 흐느적거리는 아버지를 보며 절망도 했고요. 자식과 놀아주는 아버지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탓이죠."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아버지가 싫었다!"

 

세월이 지나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버지에 대한 기대는 변하지 않나 봅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바랬던 마음이 상처로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하여, 그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싹틀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가족을 등한히 하는 아버지가 너무 이기적이라 생각했어요. 자신 밖에 모르는 무책임하고, 자식에게 관심이 없는 아버지라 여겼지요."

 

임상철씨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술을 드시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이해하기에는 벅찬 일이었겠지요.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 이해하겠더랍니다.

 

"아버지가 술을 그렇게 드시고 다녔던 건, 70년대 사회에 대한 반항이었지 않았나 싶어요. 아버지의 방황이 외로움과 고독 때문이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지요."

 

유년의 나쁜 기억은 앙금처럼 오래도록 남아

 

아버지를 이해할 즈음에도 아버지와 관계가 여전히 서먹서먹했다 합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은 아니지만, 유년의 기억이 쉽게 다가갈 수 없게 만들었다 합니다.

 

지금 여든넷인 그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하여, 서울에서 고향까지 내려와 병간호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아프고 나서야 스스로와 화해를 한 것입니다.

 

그랬던 그도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이기적인 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더랍니다. 평일에는 바쁜 중에도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잠자리에 들기에 바쁩니다. 주말이면 피곤하단 핑계로 잠만 내리 잡니다. 세상은 돌고 돈다더니 그런 건가요?

 

여기에서 미술 심리 치료를 하고 있는 홍영란씨의 말을 진지하게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을 치료하다 보면 유년의 기억 때문에 힘들어 하신 분들이 많아요. 좋았던 추억보다 나빴던 기억들은 앙금처럼 남아 더 오래가기 때문이죠. 나쁜 기억은 치료 기간도 더 걸려요. 부모들은 자식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해요."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궁금하세요?

그렇담, 물어보세요. 답은 그 안에 있지 않겠어요?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거뉴스와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아버지, #유년의 기억, #술,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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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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