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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선택권을 주었다고 '불복종' 죄로 파면 · 해임한 교사들 얘기가 매체들에서 점점 사그라지려 할 때, 교육과학부가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획에도 없던 일제고사 결과를 기습 발표해서 또다시 일제고사 얘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이번엔 '성적 조작'입니다.  여기저기서 성적 조작 사례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이밖에도 드러나지 않고 드러날 수 없는 성적 조작 사례들이 무척 많을 거라 쉽게 짐작합니다. 안타깝게도 교육과학부와 언론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임실의 기적'이란 말이 성적을 조작하는 사례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임실지역은 '재수없게', '약지 못해서' 드러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0이 아닌 두세 명으로 보고해서 전국 1등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교육과학부 지시로 현장학교에 '전면 재조사' 하는 모습을 보면 기초학습미달자 숫자를 0으로 보고한 학교를 중심으로 조사하고 있거든요. 이번 일 뒤로, 앞으로 교육청에서 보고를 하라고 하면, 기초미달자 숫자가 0이어도 0으로 보고하는 학교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많으면 많다고 징계한다 하고 0이면 0이라고 성적 조작을 의심하면서 귀찮게구니 대충 두서너 명쯤으로 보고하겠지요.

 

그런데, 그동안 일제고사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불복종, 성적 조작, 그리고 어느 지역 학업성취수준이 높다와 어느 지역은 낮다와 같은 얘기는 결국 일제고사 평가문항이 아이들의 기초학력과 학업성취수준을 잴 수 있는 평가문항으로 완벽했을 때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요? 과연 일제고사 평가문항이 기초학력과 학업성취수준을 잴 수 있게 출제된 것일까요? 제가 살펴보니 절대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가문항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일제고사 뒤로 제가 '보기 빠진 일제고사, 쪽지 시험보다 못해', '국어 기초도 못 갖춘 일제고사 읽기 ·쓰기 평가지', '어린이 창의성도 무시한 기초학력 평가', '초등학교 일제고사 질적 분석'같은 글을 썼습니다.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서도 다른 분들이 여러 곳에서 평가문항의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고사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문항의 이의제기에 대해 교육과학부는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한번 제가 제기했던 일제고사 평가문항의 잘못 가운데 두드러지는 잘못을 몇 가지 보여주면서 이에 대한 교육과학부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또 일제고사를 둘러싸고 여러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일제고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얘기도 듣고 싶습니다.

 

'일제고사를 봐야 학력이 올라간다.', '어차피 평가는 필요하기 때문에 일제고사는 봐야 한다', '어떻게 문제가 완벽할 수 있느냐?', '초등학생 문제가 다 그렇지 뭐' 하는 얘기는 제발 빼고요.

 

다음은 작년 10월에 전국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본 기초학력진단평가 문제입니다.

 

기초수학 28번 문항 그림입니다. 아무리 수학 문제라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산 한라산 모습을 이렇게 왜곡시킬 수 있는 것인가요?

 

 

다음은 쓰기 19번 문항입니다.

 

 

표에 나와 있는 차이점을 보면 줄넘기는 '뛰어 넘는다'로 되어 있고, 훌라후프는 '돌린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잘못 나타낸 것입니다. 줄넘기만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훌라후프도 뛰어넘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또 훌라후프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돌리는 것으로 치면 줄넘기야말로 돌리는 것 아닌가요? 결국 '뛰어 넘는다'와 '돌린다'는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인 셈입니다.

 

이는 평가 문항 출제자가 줄넘기와 훌라후프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는 아이들에게 줄넘기는 오직 '뛰어넘고', 훌라후프는 '돌린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어 위험합니다.

 

또 답이 '㉠ 운동할 때 사용한다' '㉡ 둥글다'로 한 가지씩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아이들이 답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많습니다. ㉠에 대한 다른 답만 봐도 '놀 수 있다', '돈 주고 사는 것이다.', '우리 집에 있는 것이다.', '내가 잘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색깔이 화려하다'…… 같은 것도 있습니다.

 

다음은 쓰기 25번 문항입니다.

 

 

장난감 같은 배를 타고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 그림을 보고 '알맞은 말'을 쓰랍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의 기초학력으로 그림을 보고 설명을 하는 말을 쓰게 하면서, 하필이면 도시, 농어산촌 할 것 없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보기 힘든 '어부'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 출제는 초등학생의 교육 내용과 방법이 어린이의 생활과 경험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초등교육과정 내용과 평가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일입니다. 이런 문제가 바로 우리나라 평가문항의 수준인 것이지요.

 

이번에 다시한번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분명 지난 기초학력진단평가에서 인쇄가 잘못된 평가지로 평가를 했습니다. 인쇄과정에서 보기가 빠진 문제에 대해서 교육청은 시험이 끝난 뒤에야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쇄가 잘못된 평가지로 평가를 한 뒤, 아이들에게 기초학습도달여부를 통보해 주라고만 했습니다.

 

3학년 아이들이 11번째 보기가 빠진 문항을 만나면서 매우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분명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다른 문제를 푸는 것에 적잖이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마다 기초수학 11번에 대한 조치가 다 달랐습니다. 어느 학교는 거둔 평가지를 다시 나누어주고 답을 다시 쓰게 한 학교도 있었고, 어느 학교는 평가가 끝난 뒤 그냥 거두어두고 말았다고도 하고, 어느 학교는 그 문제는 잘못됐으니 빼놓고 풀라고 했다 합니다.

 

 

비록 한 문제가 잘못 인쇄된 것이지만, 평가를 보는 3학년 아이들에게는 전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매우 큰일입니다. 한 문제로 기초학습도달자와 미달자로 나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육과학부와 교육청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듯 이에 대한 조처와 대책 없이 어느 지역에 미달자가 많고 적은지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교사 승진과 징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아참! 잊을 뻔했습니다. 지난 1월 5일까지 교육청 지시에 의해서 각 학교에서는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만 보고한 게 아니라, 기초학력진단평가 결과도 같이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왜 교육과학부에서는 기초학력진단평가 결과는 쏙 빼놓고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만 발표한 것일까요?

 

왜? 곧 4학년으로 진급하는 아이들이 본 기초학력진단평가 결과는 빼놓고, 졸업하고 없는 아이들이 본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만 발표했을까요? 중요한 것으로 치면 학업성취수준 미달자보다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쉬운 셈조차 못하는 기초학력미달자가 아닐까요? 기초학습미달자부터 구제해야 하는 것이 맞는 얘기 아닌가요?

 

왜 기초학력미달자에 대한 대책은 발표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혹시 교육과학부에 각 시도교육청이 보고한 기초학력미달자 숫자가 0인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교육부에서 우리나라 어린이들 중에는 기초학력미달자가 0이라고 결론 내린 것 아닐까요? 아닌가요?

덧붙이는 글 | 교사를 여러 명 파면시키면서까지 강행하고 앞으로도 국가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는, 명색이 '국가수준' 평가인 일제고사가 정작 평가문항을 보면 너무나 질이 낮아 우리나라 '국가수준'을 의심하게 합니다. 그런데 잘못 인쇄된 문제지와 잘못 출제된 평가문항에 대해서 지금까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관계자의 답을 듣고 싶어 다시한번 평가문항의 문제를 제기해 봅니다. 잘못 출제된 평가문항에 대해서는 붙인파일에 자세히 정리해 놓았습니다.


태그:#일제고사, #국가수준기초학력진단평가, #평가문항오류, #문제출제,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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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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