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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단아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이끼의 삭
▲ 솔이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단아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이끼의 삭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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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따스한 봄날입니다.
이런 날은 봄이 오는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을 활짝 펴고 싶습니다.
봄의 전령이라 불리는 꽃들보다도 더 먼저 봄을 알려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것들, 흔하디흔한 것들이라 밟히고 잡초라 불리는 것들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자연은 흔하다고, 낮은 곳에 피어난다고 피차간에 박대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흔하고 낮은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별을 받고 살아갑니다.

자연처럼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자책하며 살아갈 때가 잦습니다. 그러나 별 볼일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봄을 맞이하여 새싹이 돋아난다. 단아한 그의 모습 역시도 '봄의 전령'이다.
▲ 이끼의 새싹 봄을 맞이하여 새싹이 돋아난다. 단아한 그의 모습 역시도 '봄의 전령'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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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푸른 빛을 잃지 않았던 이끼, 씨앗을 감싸주고, 죽은 것들을 감싸 안아 썩어지게 하여 또 다른 존재의 밥이 되게 함으로 새 존재로 피어나게 하는 힘을 가진 이끼를 봅니다. 이 땅 가장 낮은 곳에 피어나 밟히는 것도 서러운 일인데, 봄날 피어난 새싹도 밋밋하기만 합니다. 이파리도 없이 그냥 일자로 하늘을 향해 비죽 올라온 이끼의 새싹은 단아하고 간결한 모습입니다.

낮은 삶, 단아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완연한 봄이 오기 전 우리는 존경하는 어른을 하늘나라에 보냈습니다. 살아계실 때보다 죽어서 더 많은 이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이유는 그의 삶이 낮아지므로 단아한 삶을 살아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정도의 위치라면 더 많은 것을 누리고 가졌어도 흠이 되지 않을 터인데 텅 빈 충만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물욕에 찌든 우리들의 허한 마음을 치유해 준 것입니다.

작고 단아함으로 다른 것과도 넉넉하게 어울린다.
▲ 이끼와 물방울 작고 단아함으로 다른 것과도 넉넉하게 어울린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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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금력을 동시에 가진 이들 틈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이상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미친 듯이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과 똑같이 가지려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의 눈에 이상하고 미친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악순환의 고리를 풀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봄이 오건만 우리 사람들의 삶에 봄이 오지 않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그 길이 아닌 것을 뻔히 말면서도, 같이 경쟁한다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하나쯤은 그 대열에 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깨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별 볼일 없는 인생인 것처럼 혹은 실패한 인생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봄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봄 소식을 알리며 새싹을 내는 솔이끼를 바라봅니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이 세상도 더 따스해질 터인데 생각하며 말입니다. 봄의 전령, 매화나 춘란같이 도도한 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흔하디흔한 것들, 그래서 잡초라고 불리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이 땅을 초록 세상으로 바꿔가는 봄의 전령들입니다. 그래서 내겐 그들이 매화나 춘란보다도 더 예쁜 봄의 전령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봄의전령, #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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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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