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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금)은 스물일곱 번째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82년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데요. 1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빼고 가장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1982년 2월20일 축하객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마치고 장인·장모님께 절하는 모습. 몇 년 전에 치른 것 같습니다.
 1982년 2월20일 축하객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마치고 장인·장모님께 절하는 모습. 몇 년 전에 치른 것 같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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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10년은 재미있는 대화를 하다가도 생각이 다르면 티격태격하기 일쑤였고, 그 후 10년은 다투면서도 조금은 인내심을 발휘했으며, 7년은 싸워봐야 이득 될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보살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해야겠지요.

50대가 되기 전까지는 다투고 나서도 서로 '네 탓이오!'라며 자존심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동갑네기 부부들은 자주 다툰다더라'라는 속설을 믿고 그런가보다 하고 지내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결혼기념일 오전, 3일 연속 나이트(밤근무)를 뛰고 퇴근해서 쓰러지듯 누워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어떻게 즐거운 하루를 보낼까 고민하다 '청소부터 하자'는 생각이 들어 거실, 안방, 주방 청소와 음식물 찌꺼기도 내다버리고, 거실 양탄자도 들고나가 털어냈습니다. 평소 하는 청소지만 눈에 띄게 했지요.

기관지가 약한 아내에게 계피와 생강을 넣고 끓인 물에 잣을 작은 수저로 한 수저씩 넣어 아침마다 챙겨주고 있는데요.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깬 아내에게 "결혼기념일이라서 두 수저 넣었으니까 그렇게 알고 먹으라고" 했더니 웃더라고요.

며칠을 고민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간단한 외식으로 자축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해서 저녁에 삼계탕이나 한 그릇 사먹고 오자고 했더니 시원한 아귀탕이 어떠냐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까 저도 입맛이 당겨 해질녘쯤 째보선창에 있는 '아복집'으로 향했습니다.

서비스로 나온 별미 '복껍질 무침'

 오이와 배가 들어가서인지 봄향기를 느낄 수 있었던 ‘복껍질무침’. 매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오이와 배가 들어가서인지 봄향기를 느낄 수 있었던 ‘복껍질무침’. 매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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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뱃사람들과 경매꾼들의 고함소리로 왁자지껄했던 째보선창, '언청이'를 이르는 '째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물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호칭인데요. '아복집'은 시멘트로 복개되어 주차장이 된 물길 옆에 있습니다. 특히 50년 전 어머니 쌀가게 길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고,  제가 자란 동네라서 갈 때마다 남다른 정이 느껴집니다. 

식당에 들어서니까 아주머니 세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알고 보니 한 사람은 딸이었는데요. 저녁 먹기에는 이른 때라서 한가했고, 아내와 자리를 잡고 앉아 '아귀탕' 두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3일전에 형님이랑 동생이랑 와서 먹고 갔는디, 아구탕 국물이 하도 개운허고 시원혀서 오늘은 집사람허고 왔습니다."
"그려유? 하이고 고마워서 어찐댜!"
"사실은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거든요. 분위기 있는 고급 레스토랑들도 많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아구탕 먹는 게 젤 좋을 것 같아서 왔응게 맛있게 끓여줘야 합니다."
"결혼기념일인디 왜 이런디를 오셨댜. 인자사 축하허는 것도 그렇고, 하이간, 탕이라도 맛있게 잘 끓여드려야지유."

호주머니 사정으로 한 그릇에 2만원인 '참복탕'도 시키지 못하고, 고급 레스토랑에도 못 갔으면서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 말하고 나니까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음식상이 차려졌습니다.

싱싱한 굴무침, 조개무침, 파무침과 각종 조림 등 깔끔한 밑반찬과 함께 아주머니가 "귀헌 것잉게 맛이나 보셔유"라며 무침 한 접시를 내왔습니다. 서비스까지 주셔서 고맙다며 뭐냐고 물었더니 "금방 무친 것잉게, 묻지 말고 그냥 잡수세유"라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알고나 먹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더니 '복껍질무침'이라고 하더군요. 그러자 아내가 맛을 보고는 맛있다며 마구 집어 먹더니 미안했는지 저에게 먹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아내의 권유도 권유지만, 맛이라도 보라는 주인아주머니의 퍼주기 인심과 정성이 담겨 있어 흐뭇했고 맛도 별미 중에 별미였습니다.

처음엔 맛만 보다 몇 첨을 집어넣고 씹었더니 복사시미를 먹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야릇한 맛과 봄나물처럼 상큼한 맛이 입안에 감돌면서, "째보선창 '아복집' 과연 '명불허전'이로세!"라는 감탄사가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복껍질무침'은 신선한 참복을 다룰 때 뱃가죽 부분 껍질과 꼬리부분을 보관해두었다가 미나리, 오이, 배 등을 넣고 갖은양념을 해서 버무린 것인데요. 팔지는 않고 서비스로 나온다고 합니다. '아복집' 단골들이 가장 받기 원하는 옵션 음식이라고 하더군요.

'개운하고 맛있다!'며 좋아하는 아내

 집된장을 풀어낸 육수라서 그런지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아귀탕’. 아귀탕에는 씹을 수록 상큼한 향이 더하는 미나리가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집된장을 풀어낸 육수라서 그런지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아귀탕’. 아귀탕에는 씹을 수록 상큼한 향이 더하는 미나리가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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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릇에서 건져낸 아귀. 아귀탕은 오돌오돌하고 쫄깃쫄깃한 지느러미와 상체 부분을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그릇에서 건져낸 아귀. 아귀탕은 오돌오돌하고 쫄깃쫄깃한 지느러미와 상체 부분을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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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껍질무침'을 먹고 조금 있으니까 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하는 '아귀탕'이 나왔는데요. 애주가도 아니면서 뜨끈뜨끈한 국물을 후루룩 들이키며 "개운하고 맛있다!"를 연발하는 아내를 보니까 괜히 신이 났습니다.

'까치복탕'과 '참복탕'으로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아복집' 아귀탕은 싱싱한 생물로 끓여내기 때문에 육질이 쫄깃쫄깃하고 국물도 시원합니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하니까 특별히 생각해서 넣어줬는지 날감지(지느러미)와 껍질, 내장이 모두 담겨 있더군요.  

24년 전에 개업한 '아복집'은 젊은이들부터 노인까지 손님 층이 다양합니다. 젊은 딸과 육순이 코앞인 어머니가 함께 주방을 지키고 있는데요. 어머니는 중년 이상의 입맛을, 딸은 40대 이하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남편은 싱싱한 재료(생선, 미나리 등) 담당이라고 하더군요.

국물 맛이 깊고 얼큰하고 개운해서 주당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아귀탕은 뱃사람들이 주로 다녔던 군산 째보선창가 선술집들이 원조일 것입니다. 아귀를 살짝 말렸다가 끓여서 술안주와 해장국으로 내놨고, 애호가들이 늘면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음식이 되었으니까요.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귀탕은 막걸리나 소주를 사먹으면 서비스로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식가들은 부드러운 살코기보다 지느러미와 껍질, 상체 부분을 선호하는데요. 아귀 맛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쫀득쫀득한 '암뽕'(내장)은 고소한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며 먹는 행복감에 빠져들게 합니다. '아복집' 주인도 탕이나 찜을 주문하면서 '암뽕'을 많이 넣어달라는 손님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고 하더군요. 

아귀는 얼굴이 흉측스럽고 이빨도 악어처럼 뾰쪽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요. 못생긴 물메기가 사춘기에 방황하는 청소년이라면, 흉물스런 아귀는 주먹을 휘두르는 밤길의 무법자처럼 무섭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고질병인 당뇨예방과 고혈압에 좋다니 고마운 생선이지요.     

아귀탕을 맛있게 먹고 벽에 걸린 액자에, TV에 출연했던 주인아주머니 사진이 있기에 "지금도 미인이지만, 방송에 출연했던 7년 전에도 미인이셨네요"라며 덕담을 건넸더니 웃으며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농담도 곁들여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단체손님들이 몰려오기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꽃샘추위로 밤바람이 차가웠지만, 2만원으로 별미인 '복껍질무침'을 맛보고 얼큰하고 개운한 아귀탕을 오감으로 느끼는 즐거움 속에 상큼한 봄 향기까지 느낄 수 있었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결혼기념일, #아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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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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