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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게 묻다
▲ 동길산 산문집 길에게 묻다
ⓒ 산지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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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길을 가고 있어도 길이 그립다

길은 어디에 있을까. 길을 걷고 있지만 길은 언제나 없다. 길인듯 해서 걸어가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고, 길을 찾아 헤매다 보면 또 낯선 길이 손짓한다. 인생은 길 위의 나그네. 나그네는 길 위에서 한시도 쉴 수 없다는 말처럼, 동길산 시인의 산문집, <길에게 묻다>는 길을 통해, 우리가 진정 닿고 싶어하는 길의 이정표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필자 동길산 시인은 1989년 무크지 <지평>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현재 경남 고성 마을에서 시와 산문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필자는 산문집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부산일보와 국제신문 등을 통해 그의 맛깔스러운 산문은 무척 독자에게 낯이 익다.

뾰족하다. 이파리도 뾰족하고 이파리를 키운 나무도 뾰족하다. 뾰족하다. 나무와 나무를 옮겨 다니는 새. 새가 내민 부리도 뾰족하고 부리가 쪼아대는 소리도 뾰족하다. 숲에 감도는 기운, 뾰족하다. 숨을 깊숙이 들이킨다. 심호흡한다. 숲에 감도는 기운이 몸 안에 퍼진다. 몸 안이 뾰족해진다. 뾰족해서 따금거린다. 숨을 들이키면서 따끔거리고 들이킨 숨을 내쉬면서 따끔거린다. 숨을 들이키고 내 쉬는 일, 따금하다.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동길산, <길에게 묻다>의 '진주 경남 수목원 침엽수길' 일부

시집으로는 <을축년 시초(詩抄)> <바닥은 늘 비어 있다> < 줄기보다 긴 뿌리가 꽃을 피우다> <무화과 한 그루> 등 여러 권의 시집을 갖고 있다. 이번 산문집 <길에서 묻다>의 출간은, 마치 등단 20년을 기념하는 출간이 된 셈.

<길에게 묻다>는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경남 등지의 20여개의 시와 군, 읍 등을 다박다박 걸어서 다니며 발품으로 쓴 부산·경남 기행 산문집. 그러나 이 기행산문집은 여느 여행 산문집과 다르다. 단순한 지역 소개나 저자의 개인적인 기행소감문이나, 여행안내서는 더욱 아니다.

<길에게 묻다>는 시인의 길에 대한 오랜 사유와 에스프리가 녹아 흐르고 있다. 그래서 가볍지 않다. 읽는 속도를 낼 수 없다. 마치 어린 아이가 눈깔 사탕을 녹여 먹으며 단맛을 음미하듯이, 동길산 시인의 감칠맛 나는 문장 하나를 깊이 새겨 읽어나가야 한다. 여행은 길에서 시작하고 길에서 끝나지만, <길에게 묻다>에는 동길산 시인의 내면의 길이 깊이 뻗어있다. 해서 읽어갈수록 시인의 정신의 오솔길로 이끈다.  

사람은 길을 통해 떠돌지만, 떠도는 그 많은 길을 다 걸어볼 수 없다. 저자는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길은 두가지 길이 있다. 가본 길과 가 보지 않은 길 모든 길은 그립다. 가본 길은 가봐서 그립다, 사람도 두가지 사람이 있다. 만나 본 사람과 만나보지 않은 사람. 모든 사람은 그립다. 만나 본 사람은 만나봐서 그립고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만나보지 않아서 그립다. 길과 사람. 길은 사람이 있어서 길이고 사람은 길이 있어서 사람이다. 가본 길과 만나본 사람, 가보지 않은 길과 만나보지 않은 사람. 그들이 그립다. 길이 그립고 사람이 그립다."

길을 묻다
▲ 이윽고 길은 바다에 닿아 길을 묻다
ⓒ 박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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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따라 해안이 절경이다.
▲ 부산의 이기대 공원 산책로 따라 해안이 절경이다.
ⓒ 박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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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그립고 사람이 그립다

여행 산문집<길에게 묻다>의 산문을 쓴 동길산 시인과 <길에게 묻다> 사진을 찍은 이는 박정화 사진작가이다. 두 사람은 드물게도 어려운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부부. 두 사람의 합동 작품집이라고 해도 그닥 어색하지 않다. 이는 동길산 시인의 서정과 에스프리가 흐르는 문체를 빛내주는 박정화 사진작가의 사진이 없다면, 맛깔스러운 산문이 빛날 수 없다. 그렇다고 박정화 사진작가의 사진만으로, 다박다박 걸어서 느린 속도로 담아낸 각 고장의 아름다운 풍광과 인물과 역사 유물 등의 에피소드를 일목요연하게 담아낼 수는 없을 터다.

해서 두 작가가 함께 다박다박 걸어가 본 합천 밤마리 들길이며, 해운대 청사포, 이기대, 거창 빼재 고갯길, 총 35군데의 여행지에 대한 시가 흐르는 여행기와 박정화 사진 작품이 함께 게재된 <길에게 묻다>. 길위에서 함께 했지만, 서로 다른 예술의 길을 다박다박  걸었던 두 갈래 길이, 종국에는 함께 만나는, 부부의 길처럼 한권의 <길에게 묻다>로 발간됐다. 

비는
위부터 적시지만
가장 많이 적는 것은
바닥이다.
피함도 없이
거부도 없이
모든 물기를 받아들인다.
비에 젖지 않는 것은 없지만
바닥에 이르러 비로소 흥건히 젖는다
바닥은 늘 비어있다.
<바닥 1> 동길산

1부에서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는 자연 경관이 뛰어난 아름다운 산책길을 소개한다. 둘이 걸어도 좋고 혼자서 걸으며 사색에 잠겨도 좋은 그런 숲길이 독자를 안내한다. 2부에서는 길위에서 문화와 그 고향의 정신을 만날 수 있는 곳을 17군데나 소개하고 있다. 안개에 잠긴 지리산 아래 산청 산천재에서 남명 조식도 만나고, 김해 천문대에 올라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만난다. 통영 남망산에서 박경리, 윤이상을 비롯한 통영의 예술가들을 추억한다. 사천 굴항과 군위숲에서는 조선 바다를 지키기 위해 왜적에 맞서 싸우다 죽어간 이순신과 이름 없는 조선 수군을 애도한다.
<길에게 묻다> 산지니 출판사 서평 중

동길산 시인의 문체는 싱싱한 물고기 비늘같다. 이에 박정화 사진작가의 아름다운 사진이 게재된 여행 산문집<길에게 묻다>. 이 책은 부산 경남권의 뿌리 깊은 문화지리지에 다름아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담은 박정화 작가의 사진과 각 지역의 특별한 인물 등을 만나는 길의 재미도 흥겹다.

길은 발길이 떠도는 길 위에서도 사람을 그리워 하는 속성이, 나그네로 하여금 길고 긴 여행길로 떠나게 한다. 저자의 말처럼 두 가지 사람이 있듯이, 길은 분명 하나인데, 길 안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흐른다. 이처럼 <길에게 묻다>는 독자에게 여행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길의 영혼, 길의 꿈과 길의 낭만이 어울린 아름다운 풍경 속에 시인의 자작시와 흘러간 유행가 등으로 길의 아름다운 여백미를 안겨준다. 여기에 소근소근거리는 풀벌레의 길, 길을 떠날 수 없는 나무의 길, 둥둥 정처 없이 흘러가는 구름의 길, 훨훨 나는 나비와 새의 길, 바람의 길 … 자연 속에 내재된 길의 여여(如如)를 시적 언어로 기술하고 있다. 

들길 한가운데에 나를 세운다. 내 몸이 낭창대고 내 마음이 낭창댄다. 나는 말뚝이인가 문둥이인가. 아니면 말뚝이가 놀리는 대상인가 여전히 불구인 문둥인가. 한가운데에 서서 내가 걸어온 길을 본다. 걸어갈 길을 본다. 걸어온 길도 걸어갈 길도 강바람에 흔들린다. 흔들리며 걸어온 길 흔들려도 걸어가야 할 길이다. 바람이 불자 마늘밭 매운 내가 하필이면 내가 서 있는 쪽으로만 불어 닥친다. (합천 밤마리 들길 중에서-동길산)

덧붙이는 글 | <길에게 묻다>여행 산문집을 발간한 동길산 시인은,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을축년 詩抄』 『바닥은 늘 비어 있다』 『줄기보다 긴 뿌리가 꽃을 피우다』 『무화과 한 그루』를 펴냈다.
<길에게 묻다>여행산문집에 사진을 게재한, 박정화 작가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6년 인도기행사진전을 연 바 있다.



길에게 묻다

동길산 지음, 박정화 사진, 산지니(2009)


태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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