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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결혼하여 처음부터 부모님과 함께, 혹은 처가에서 살 수도 있다. 허나, 양가 부모님이 아주 연세가 많으신 것도 아니고 거동도 많이 불편하지 않은 이상, 둘이 독립하여 신혼집에서 신접살림을 해야 한다는 게 우리 결혼과 관련된 이들의 암묵적 합의였다.

그래서 시작된 신혼집 구하기. 우선 장소는 인천과 가까운 서울을 목표로 잡았다. 신도림이나 구로 근처에서 인천까지 급행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나와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대학원에서 박사코스를 밟고 있는 여자 친구와의 가운데 지점이기 때문이었다.

신도림, 구로, 구일... 열심히 발품 팔다

내가 쉴 곳은 어디에 있을까
▲ 저 많고 많은 집 중에 내가 쉴 곳은 어디에 있을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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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우리가 간 곳은 신도림이었다. 2호선과 국철이 맞닿는 교통의 요지 신도림. 개인적으로는 아파트 밖에 보이지 않는 그 휑한 풍경이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었지만 어쨌든 교통의 편리함은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현실은 '신도림쯤 살면 되겠지' 하던 나의 바람을 아주 가볍게, 한낱 철딱서니 없는 꿈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겨우겨우 장만한 자금으로는 이곳에서 주거환경이 깨끗하고 깔끔한 신혼집을 얻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가 그리도 비싼지.

결국 우리는 2주에 걸쳐 아주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신도림에서 구로로, 구로에서 구일로, 구일에서 개봉으로. 지하철 1호선 노선을 따라 우리는 그렇게 서울 중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 턱없어 보였던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우리에게 오피스텔을 적극 권장했다. 아파트랑 다를 바가 없으며 거의 모든 가전기기가 구비된 오피스텔이 요즘 신혼부부에게는 인기라던가.

잔뜩 기대를 품고 올라간 오피스텔. 과연 최근에 지어진 오피스텔들은 깨끗하고 둘이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신혼부부라 하니 그런 집만 소개시켜주는지 모르겠으나 하나같이 아늑하고 깔끔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피스텔 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오피스텔은 법적으로 창문을 열 수 없게 해 놓아 환기가 불편한 탓이었다. 젊은 우리야 상관없다지만 가끔 들르실 양가 어른들이나 곧 태어날지도 모르는 아기를 위해서는 그래도 통풍이 잘 되는 곳이 낫지 싶었다.

대부분의 중개업자들은 우리가 신혼부부라 하니 아파트를 권장했는데 그 중에는 30평 이상의 아파트를 보여주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경제가 어려워진 이후 관리비라도 줄이기 위해 많은 가구들이 평수를 줄였고, 그 때문에 20평수 대 아파트들은 동이 나고 가격이 유지되는 반면 30평 이상 아파트들은 매물이 나오고 가격은 떨어졌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갓 사회 생활을 시작한 우리가 그 관리비를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우리는 다시 다음 부동산 문을 열어야했다.

집을 구하면서 느꼈던 빈부격차, 불쾌하네

집을 구하는데 있어서 신혼부부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 아파트 숲 집을 구하는데 있어서 신혼부부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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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에서부터 시작해서 부천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 25평형(82.64㎡) 20여년된 아파트가 신도림에서는 1억 5천 정도였는데, 지하철 한 정거장씩 멀어질 수록 가격은 1천만원씩  떨어졌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집은 오히려 7~8년 정도된 새 집인데 말이다.

서울에서의 삶을 굳이 고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돈 때문에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주류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 자체가 서글펐기 때문이다. 무슨 1등, 2등 국민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서울과의 거리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는 듯한 이 불쾌감.

물론 지역의 좋고 나쁨에 따라 집값이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결정되는 지금 우리의 현실은 결코 정상적인 것일까? 같은 서울이라 할지라도 근거리에 있는 신도림과 오류동이 이렇게 다른데 도대체 강남과 강북의 차이, 그리고 서울과 지방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방 사람들. 과연 지금의 권력층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의 아픔을 인지나 하고 있을까? 땅값이나 집값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사회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도 돈으로 모든 걸 평가하는 지금 이 시대에. 정부는 4대강 정비 산업을 벌여 지방경제를 살린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지방 토호들에게 돈이 가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그들이 살린다는 서민은 과연 누구일까?

예전 자신의 전시회에서 어느 미술품 콜렉터나 중매쟁이로 보이는 이에게 봉변을 당한 내 여동생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림을 보면서 동생에게 강남에 사냐고 물었던 그이가 화곡동에 산다는 동생의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는 바로 그 이야기. 아마도 그 사람은 동생이 이야기한 지명만으로도 나의 동생의 계급을 추측했을 것이고, 그것으로 동생의 됨됨이를 평가했을 것이다.

집값 떨어졌다고? 전세도 버거운 게 현실

가구 통합과 미분양이 점쳐지는데도 정부는 끊임없이 아파트를 지어대고 있다
▲ 계속해서 지어지는 아파트 가구 통합과 미분양이 점쳐지는데도 정부는 끊임없이 아파트를 지어대고 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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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혼부부가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특히 서울에서 자신이 원하는 집을 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언론들은 집값이 너무 떨어졌다고 난리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집을 자산으로 운용하는 이들의 이야기일 뿐, 우리에게는 집값은커녕 전세금마저 버거운 것이 현실이었다.

미분양된 아파트가 남아돌고, 뉴타운은 계속해서 짓고 있다는데 왜 이리 비싼 건지, 원. 많은 이들이 뒷동산에 올라가 복잡하고 휘황찬란한 서울 시내를 보면서 이 많은 가구 중 왜 내가 살 곳 한 칸 없는지 원망했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디 젊은이들이 독립을 운운하고 언감생심 결혼을 꿈꿀 수 있겠는가. 주거권이 하나의 권리로 인정되지 않고 주택과 토지 소유가 배타적인 사적 소유로만 인지되는 이 사회에서 88만원 세대를 위한 거주공간은 결국 고시원 쪽방 밖에 없다. 부모님을 잘 만나야 살 만하다는 이야기가 결코 헛소리가 아닌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1억 조금 넘는 돈을 들여 오류동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비록 볕이 잘 들지 않고 조금은 시끄럽지만, 신혼집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노을의 풍경만은 매우 아름다운 그런 곳이다. 어렵사리 끝낸 신혼집 장만. 그래서 결혼 준비가 다 끝났느냐고? 아니다. 결혼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려운 절차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파트,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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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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