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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장애영아원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작은아들. 누가 뭐래도 '참 착하고 마음이 여린',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지난 1월, 장애영아원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작은아들. 누가 뭐래도 '참 착하고 마음이 여린',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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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으로 고물스쿠터(49cc)를 샀다가, 면허 없이도 운전할 수 있는 줄 알고 탔다가 겨우 5분 만에 무면허 운전으로 경찰에 붙잡힌, 지지리도 운도 없는 무면허운전 '초범' 고등학교 1학년 작은아들이 오늘(17일) 검찰에 불려갔습니다.

제가 함께 가려고 했는데 업무 때문에 아내가 동행했습니다. 검찰출두 관련 이야기는 아내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예비소집으로 학교에 갔다 온 작은아들은 타가지고 온 2학년 교과서를 집에 두고 부랴부랴 검찰로 달려갔습니다. 엄마를 검찰청사에서 만난 아들은 검찰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었을까? 아내와 아들이 청사 별관에 들어가려 하자 청원경찰이 '검찰에 불려온 놈이면 뻔하지 뭐!' 이런 표정으로 학생증 제시를 요구했습니다.

"아들이 걱정돼서 같이 오셨군요."
"네. 이런 얘들 많이 오나 봐요."
"그렇죠, 뭐! 폭력사건입니까?"
"아니요, 스쿠터 무면허 운전 때문에 왔습니다."

작은아들 사건 담당자는 다행히도 맘이 좋아 보이는 여성 수사관이었습니다. 아내는 수사관에게 아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손해를 강조하면서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번 사건으로 많이 무서워하고 많이 놀랐습니다. 선처 좀 해주세요!"
"그래, L아 많이 무서웠어?"
"그날만 무서웠어요!"

반성문을 쓰고 있는 아들에게 엄마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대답해서 엄마를 불안하게 만들었냐고 말입니다.

"아까 왜 '그날만 무서웠다'고 말했어?"
"만날 무서웠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서 그랬어요."

아들은 반성문에서 차비를 아끼려고 세뱃돈으로 스쿠터를 구매한 경위, 50cc 이하는 운전면허 없이도 탈 수 있는 것으로 알았던 잘못, 부모님과 여러 어른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린 것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빌었습니다.

"검사님,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무면허 운전을 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절대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바른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반성문을 수사관에게 갖다 드리자 "검사님이 결정하시겠지만 기소유예 정도가 될 것 같다, 기소유예란 두고 보겠다는 뜻이니 5년간 주의해야 한다"고 타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아들은 수사관에게 선처해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드리고 검찰 청사를 빠져나왔습니다.

고물 스쿠터 팔렸지만... 이번엔 구매자에게 속은 큰아들

문제의 고물스쿠터
 문제의 고물스쿠터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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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5분 타고 잡혀서 저렇게 고생하냐. 참 불쌍하다, 정말 불쌍하다."

누나의 코멘트입니다. 스쿠터는 속아서 샀지요, 경찰에 잡혔지요, 아빠에겐 이렇게 저렇게 혼났지요, 고개는 들 수 없지요…. 코가 석자나 빠져 있는 동생을 보면서 누나가 동정여론을 조성했습니다.

"아빠,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검찰에 출두하고 온 소감을 묻자 작은아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이렇게 말하곤 자기 방으로 들어가 'dust in the wind'(바람속의 먼지)를 기타로 연주하며 힘들었던 마음을 달랩니다. 

고물 스쿠터를 속아 산 것도 억울한 데, 그것도 겨우 5분 타고서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니는 등 대가가 너무 큽니다. 한 달 용돈(5만원)에 두 배가 넘는 12만원을 손해 본 것이 직접적 타격입니다. 스쿠터를 26만원에 구매했지요, 지구대에 보관된 스쿠터를 용달차에 싣고 오느라  5만원 들었지요. 도합 31만원 들어간 스쿠터를 겨우 19만원에 팔았으니 손해 막심합니다.

여기서 '스쿠터를 속아 산 것도 부족해서 스쿠터를 팔면서까지 속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들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지구대에서 스쿠터를 실어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부려 놓은 그 다음 날, 인터넷을 통해 구매의사를 밝힌 학생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그랬습니다. '저런 고물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 있긴 있구나!' 어쨌든 열 받게 하는 물건을 속히 치웠다고 하니 잘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들 왜 이리 바보인지 모르겠습니다.

작은아들이 20만원에 스쿠터를 팔겠다고 인터넷에 올려놓자마자 구매자가 나타났는데, 학원에 가야하는 사정으로 대학 1학년 형에게 거래를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정도로 보이는 구매자에게 대금을 받고 스쿠터와 키를 넘겨주었는데 글쎄, 집에 와서 돈을 세어보니 1만원 부족한 19만원이라는 것입니다. 구매자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속인 것에 대해 항의했지만 그 학생은 어영부영 개기면서 그걸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인생 살면서 손해 많이 볼 어수룩한 아들놈들입니다. '그래, 등치고 사는 것보다는 손해를 보고 사는 게 훨씬 낫더라. 정직하고 열심히 살면 손해 보더라도 하늘이 대신 채워주더라.' 작은아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학교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쓰라린 인생수업을 받았습니다. 그 경험이 작은아들의 인생을 살찌우는데 좋은 거름이 될 것이라고 크게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댓글로 위로해주시면서 사건에 대해 이해하도록 도와주신 현직 경찰 '유진기'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법과 원칙 사이엔 살벌하고 경직된 처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의 아닌 실수에 대한 선처로 인생의 길을 더 올곧고 튼튼하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의미의 법의 원칙이 적용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스쿠터, #아들 , #검찰,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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