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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건 낮이건 하늘이 천둥 치듯 하는데 어떻게 편하게 자겠어? 그 시끄러운 크락샤를 새벽 한시까지 돌려. 돌가루가 날아와 빨래며 장독에 수북하게 쌓여. 크락샤만 없으면 백 살까지도 살겠는데 그 징한 소리 때문에 하루도 편하게 잘 수가 없다니까."

올해 나이가 아흔인 박성자 할머니는 오늘(17일)도 주민 50여 명과 함께 전남 담양군청 앞에서 '데모'를 하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데모인데 군청 앞에서만 벌써 석 달 가까이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엔 마을 근처에 있는 한 공장 앞에서 데모하다가 농번기 때 잠시 쉬고는 시위장소를 군청 앞으로 옮겼다.

쇄석기가 뿜어대는 소음과 먼지 때문에 생활을 못하는 주민들

담양군 무정면 주민들이 담양군청 앞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담양군이 한 업체의 명백한 불법을 방조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담양군 무정면 주민들이 담양군청 앞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담양군이 한 업체의 명백한 불법을 방조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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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할머니가 난생처음 데모를 하게 된 것은 담양군 무정면에 있는 'D석재'가 일명 '크락샤'라고 불리는 석재 파쇄·분쇄기(이하 쇄석기)를 불법적으로 돌렸기 때문. 이 공장이 위치한 무정면의 5개 마을 주민들은 "크락샤 때문에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크락샤 가동중지와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평순(65) 할머니는 "돌가루가 막 날아와서 들깨며 고춧잎에 쌓여서 채소들이 햇볕을 못 쬐서 죄다 시들해져 버려 내다 팔지도 못했다"면서 "시골에서 농사로 먹고사는데 크락샤 때문에 다 망쳐 버렸다"고 분노했다.

보통 밤 열 시까지 쇄석기가 돌 깨는 소리에 잠자리에 못 들던 여철구(57)씨는 "군청에 수십 번 항의전화도 하면서 조치를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알았다'고만 하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군청의 태도를 지적했다. 여씨는 "도회지에서 간만에 애들이 집에 쉬러 와도 크락샤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며 "무슨 행정이 저 모양인지 아무 대책이 없다"고 거듭 담양군의 행태를 질타했다.

무정면 주민들이 쇄석기를 돌리는 회사는 물론 담양군의 태도를 문제 삼는 이유가 있다. 문제의 회사가 버젓이 불법시설물인 '크락샤'를 돌리고 있음에도 가동중지나 철거명령 등 단호한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숙 담양군 무정면 쇄석기불법설치반대 대책위원장은 "담양군이 업체의 불법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며 "주민들의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민원과 문제제기를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하는 담양군의 태도를 보면서 모욕감마저 느꼈다"고 토로했다.

검찰, 쇄석기 돌리는 회사 8가지 혐의로 기소

한 석재회사가 쇄석기를 불법가동하자 돌가루가 심하게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주민들은 이 돌가루와 때문에 빨래도 제대로 널지 못하고, 밤 늦도록 돌아가는 쇄석기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 석재회사가 쇄석기를 불법가동하자 돌가루가 심하게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주민들은 이 돌가루와 때문에 빨래도 제대로 널지 못하고, 밤 늦도록 돌아가는 쇄석기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 주민대책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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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D석재가 쇄석기를 가동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이 회사가 검찰에 의해 기소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30일 D석재를 불법쇄석기 가동과 불법 파쇄, 산림훼손과 무단 형질변경, 배출시설 위반, 소음진동배출시설 위반, 골재채취법 위반, 관할권 신고불이행 등 무려 8가지 혐의로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D석재가 쇄석기를 돌리는 것은 불법이라고 담양군도 인정하고 있다. D석재는 원래 레미콘제조업으로 공장등록을 한 회사로 '업종추가 신고'를 담양군이 받아주지 않으면 쇄석기를 가동해선 안 된다.

이 회사가 낸 '업종추가 신고'는 2월 17일 현재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D석재는 보란 듯이 평균 밤10시까지, 심지어 새벽 1시까지 쇄석기를 돌리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담양군은 "회사도 주민도 다 민원인"이라며 뭉그적거리고 있다.

담양군의 한 관계자는 "현재 업체가 업종추가 신고를 낸 상태이고 업종추가가 적법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업종추가 신고를 (받아들일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즉 주민들 민원만 없으면 업종추가 신고를 받아줘도 된다는 뜻이다.

D석재, 업종추가 신고 신청... 담양군이 나서서 면죄부?

담양군이 레미콘제조회사인 D석재가 업종추가 신고만 하면 석재파쇄업을 해도 된다고 파악하는 근거는 통계청이 분류한 산업분류표에 '비금속광물분쇄생산업'이 광업이 아닌 제조업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양군의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다. 한 환경컨설턴트는 "담양군 주장대로 D석재가 석재파쇄업을 해도 상관없는 제조업을 하고 있다면 왜 하지도 않아도 되는 사전환경성 조사를 했는지부터 밝혀야 한다"고 꼬집었다.

즉 석재 파쇄가 광업이 아닌 제조업이라면, 또 담양군이 주장하는 것처럼 추가해서 신고하는 사항이라면 왜 '업종변경 신청(허가)'을 할 때 요구되는 절차인 사전환경성 조사를 했냐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주민들은 "백번 양보해서 담양군이 D석재를 굳이 레미콘 제조업으로 분류해주고 싶으면 최소한 D석재에 레미콘 제조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주장을 <오마이뉴스>가 담양군에 확인하자 한 관계자는 "D석재에 레미콘 제조시설이 없는 건 맞다"고 확인했다. 레미콘 제조시설이 뜯어진 자리엔 쇄석기가 들어앉아 있다. 

이렇듯 석연찮은 담양군의 태도에 주민들은 "담양군이 나서서 D석재의 불법에 면죄부를 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꼴"이라고 코웃음을 쳤다.  

한편, D석재 관계자는 "공장이나 시설물이 들어서면 소음이나 분진 등 불편함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담양군에서 어떤 보완을 요구하면 거기에 맞춰갈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담양군, #무정면, #석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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