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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치타 슬로

슬로 시티 최초의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
 슬로 시티 최초의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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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슬로 시티라는 처음 듣게 되었다. 번역을 하면 느린 도시, 느림의 도시, 느리게 사는 도시 정도로 옮겨 적을 수 있겠다. 보편적으로 느림의 미학, 느림의 철학을 추구하는 정신자세를 말한다. 그러나 슬로 시티의 배경과 목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슬로 시티 운동은 생태주의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전통을 보존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슬로 시티 운동은 1999년 10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시작되었다. 슬로 푸드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으며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빠르게 획일화되어 가는 세상에 반대하면서 작은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의 특성을 지키며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자는 운동이다.

독일 최초의 슬로 시티 헤르스브룩
 독일 최초의 슬로 시티 헤르스브룩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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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운동의 명칭이 치타슬로(Cittaslow)였다. 치타슬로는 차츰 유럽으로 확대되었고 현재는 12개 국가 101개 도시가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2007년 12월1일 전남의 4개 도시(신안 증도, 담양 창평 삼지천 마을, 완도 청산도, 장흥 유치의 반월 마을과 장평의 우산 마을)가 슬로 시티로 지정되었다.

슬로 시티는 치타슬로 국제연맹의 실사를 거쳐 자격이 부여된다. 인구가 5만명 이하여야 하며 전통적인 수공업과 조리법이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자연친화적인 농법을 사용해야 한다. 속도가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도시가 슬로 시티이다. 슬로 시티는 3년마다 재평가를 받는다.

슬로 시티가 갖춰야 할 조건들

창평의 대보름 동제
 창평의 대보름 동제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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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시티는 지향점이 여섯 가지 정도 된다. 첫째가 요즘 많이 사용하는 지속가능한 환경정책이다.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발전한다는 뜻이다. 환경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연과 자원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해 자연과 자원을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전형적인 문화현상이 있어야 한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독특해야 한다. 그러한 독특함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러한 독특함이 모여 다양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문화현상은 또한 문화유산과 문화시설을 남긴다.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문화재와 문화유적이 역사 속에서 하드웨어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문화유산의 또 다른 측면인 정신적인 유산이 소프트웨어로 존재한다. 그것이 도덕이고 윤리고 민속이고 풍속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문화유산 때문에 창평의 슬로 시티 대보름 동제(洞祭) 같은 행사가 가능한 것이다.

전통가옥 체험
 전통가옥 체험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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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중요한 것이 특징적인 도시 구조이다. 길이 형성되고 집이 지어지고 주거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특징적인 마을과 도시의 구조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도시 구조 속에는 그곳의 역사성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나 역사성만이 슬로 시티의 모든 것은 아니다. 도시가 현상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면서 지속적으로 변해가야 한다. 도시가 과거지향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네 번째로 슬로시티는 지역의 특산물이 있어야 한다. 이번 창평에 가보니 창평의 특산물은 쌀엿이었다. 과장을 하면 한 집 건너 쌀엿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특산물이 있어야 경제가 유지되고 느린 삶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작물의 재배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면서 자연친화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창평에는 마늘과 파, 보리가 들판에서 파릇파릇 싹을 키워가고 있었다.

다섯 번째로 지역의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어야 한다. 사실 이게 쉽지는 않다. 작은 도시는 생산하는 물건이 그 지역에서 소화시킬 만큼 큰 시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제품의 대량 소비처는 대도시이다. 유럽의 작은 도시들에서는 식료품과 꽃 등을 직거래를 통해 팔기도 하고 주말시장 등을 이용해 거래를 한다. 우리의 슬로 시티들도 5일장 등을 이용해 시장을 활성화하려고 노력하는데, 관광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어려움이 있다.

개방성을 보여주는 환영 문구
 개방성을 보여주는 환영 문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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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슬로 시티의 조건들이다. 나는 이를 동질성, 진정성, 친절함, 개방성이라 말하고 싶다. 동질성은 그 지역 슬로 시티만의 특징을 말한다. 담양의 삼지천 마을은 돌담길 사이로 보이는 전통가옥이 동질성의 한 축이다. 그리고 신안 증도는 소금과 염전이 마을의 동질성을 이룬다.

다음은 진정성과 친절함이다. 진정성은 가식이 아닌 진실한 마음이다. 사람이 진실된 마음을 가질 때 친절은 저절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또 한 가지 개방성도 필수적이다. 전통가옥에 접근할 수 없고 염전 사이 옛길을 갈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들 네 가지 덕목이 슬로 시티가 갖춰야 할 무형의 자산이다.

신안 증도와 완도 청산도

증도의 염전
 증도의 염전
ⓒ 섬들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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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군이다. 그 중에서도 증도는 소금과 염전으로 유명하다. 1953년 염전이 조성되어 그 역사가 56년이나 된다. 증도 염전은 단일 염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동서로 이어진 염전을 가로지르는 길은 소금창고까지 3㎞에 이른다. 이곳에는 2007년에 만들어진 소금 박물관이 있다. 옛날 소금창고였던 곳을 개조해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소금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고 염전 체험도 가능하다.

전남의 또 다른 슬로 시티 섬으로는 완도의 청산도가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푸르다고 해서 청산도라 이름 붙였다. 이곳에서는 누렁소가 밭을 가는 구들장 논을 볼 수 있고 상서마을에서는 유서 깊은 돌담길을 볼 수 있다. 구들장 논이란 땅을 파내 돌을 쌓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덮어 만든 척박한 논을 말한다.

청산도의 봄
 청산도의 봄
ⓒ 오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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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 마을의 몽돌갯돌밭은 신흥 해수욕장과 어우러져 여름철 최고의 관광지이다. 운치 있는 해변에서 몽돌 구르는 소리를 체험할 수 있다. 이곳은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유명하고 드라마 <봄의 왈츠>의 세트장으로 유명하다. 이른 봄 청산도에 피는 유채꽃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사람들의 눈을 시리게 한다. 청산도에서는 또한 전복 등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담양 창평 삼지천 마을

삼지천 마을의 2층 기와집
 삼지천 마을의 2층 기와집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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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번에 찾은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은 16세기 초에 형성된 전통 한옥 마을이다. 돌담길 사이로 보이는 전통 가옥의 모습은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굽이굽이 돌고 도는 돌담길은 걷기만 해도 슬로 시티를 체험하게 해 준다. 이러한 집에서 만드는 슬로 푸드 역시 창평의 맛을 보여준다. 창평은 맛과 멋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슬로 시티이다.

창평의 멋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가 한옥마을이다. 시도 민속자료 제5호인 고재선 가옥을 중심으로 여러 채의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의병장인 고경명 장군이 후손이 들어와 살면서 고씨들의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전통 한옥이 고재선, 고정주, 고광표, 고재욱 고가이다.

창평의 또 다른 맛은 쌀엿과 전통 장류에서 나온다. 조청으로 알려진 쌀엿을 이곳에서는 찹쌀로 만든다. 생강을 섞어 맛을 내는데 입에 붙지 않는 엿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들 쌀엿을 원료로 해서 한과도 만든다. 찹쌀을 삭혀 가루를 내고 다시 찐 다음 공기가 골고루 매도록 공이로 쳐서 만든다고 한다.

빈도림 꿀초
 빈도림 꿀초
ⓒ 빈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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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장류로는 기순도 전통장이 유명하다. 10대째 내려오는 죽염 된장과 간장으로 창평을 대표하는 또 다른 맛이다. 맑은 바람과 햇볕을 받으면서 전통 옹기 속에서 숙성되기 때문에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 이곳 창평에는 또 천연 밀랍을 이용해 만드는 꿀초가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20년 동안 거주한 독일인 빈도림(Dirk Findling) 씨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수제초이다. 토종별의 벌집을 정제한 밀랍을 이용하기 때문에 천연향이 풍겨 나온다.

장흥 유치의 반월 마을과 장평의 우산 마을

장흥 가지산 보림사
 장흥 가지산 보림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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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하면 가지산 보림사를 생각하고 소설가 이청준을 생각한다. 보림사와 이청준 역시 전통과 잘 어울리는 문화유산이고 사람이다. 그런 터전에 자연과 생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슬로 시티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유치의 반월 마을과 장평의 우산 마을이다.

유치면 반월리 반월은 장수풍뎅이 마을이다. 장흥댐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청정 환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자연친화적으로 표고버섯을 재배하면서 그 지목(이용 후 버리는 나무)을 이용 장수풍뎅이를 사육한다. 이곳에는 표고버섯 학습장, 생태체험장, 장수풍뎅이 사육장 등이 있다. 이곳은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도시민에게는 체험과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장흥 우산마을의 지렁이 생태 학습장
 장흥 우산마을의 지렁이 생태 학습장
ⓒ 장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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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면 우산리 우산은 지렁이 마을이다. 꼬불꼬불 지구 청소부 지렁이 꼬불이와 함께 자연 속 생태 즐기기“라는 캐치플레이로 지렁이 생태학습장을 만들었다. 지렁이 생태학습장은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는 체험 학습장으로 장평 초교 우산분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장평 우산 마을은 농업과 임업이 함께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태그:#슬로 시티, #치타 슬로, #그레베 인 키안티, #증도와 청산도, #장흥 반월과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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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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