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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가장 즐거우면서도 편안한 존재, 그러면서도 2009년 현재 가장 대책없고 각박한 존재. 저마다의 개성과 생각이 살아 숨쉬지만 '일자리' 혹은 '안정성'이라는 말에 여지없이 주저앉고 마는 집단. 대학생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눈은 과연 어떨까? 내가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한국 YMCA 전국연맹 이학영 사무총장. 시골에서 농사를 질 것만 같은 푸근한 인상, 양복보단 평상복이 자연스러울 것 같은 그런 사람과 난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8년 촛불 광장에서였다. 대한민국의 한 아저씨가 공권력에 뭇매를 맞는 그 광장에서 난 그를 처음 만났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 안 좋다고 해서 살좀 찌우려고 노력해요!" 밥을 먹는 도중 접해들은 그의 말과 같이 한 없이 여린 몸이지만, 뭐랄까 그 속의 꼿꼿함 혹은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가 물씬 느껴지곤 했다. 왜였을까?

 

사무총장,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엄청 높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사무실 한쪽에 놓여있는 컵을 손수 씻어 국화차를 내오셨다. "국화차는 한 번도 못 먹어봤죠?" 그렇게까지가 너무 자연스러워 보는 내가 어색하기만 했다.

 

"대학생이라면 모름지기 '즐겁다'는 것을 추구해야죠. 판검사, 의사, 공무원, 선생님. 모두 좋은 직업이에요.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거죠. 부모의 의중에 의해, 안정성이라는 굴레에 의해 삶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슬픈 일이죠."

 

국화차를 한 모금 들이키기가 무섭게 대학생에 대한 그의 생각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취업 전쟁 속에 치열하게 전투중인 대학생들에게 그가 던진 말은 '즐겁다'는 것을 추구하라였다.

 

"내가 매일 텐트를 치고 전국을 유랑하더라도, 집이 없고 차가 없더라도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사회안전망이 너무 없는게 맞아요."

 

그렇다. 나만 해도 그저 소소한 공부들을 계속 해내고 싶고, 자유분방하게 글을 쓰면서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그 삶이 그리 쉽지가 않다.

 

"내가 한국에 못 돌아가는 이유가 뭔 줄 알아? 몇 십년간 광부로 사니 암이라는데 여기서는 사회에서 치료해주거든. 한국 가면, 내 돈 주고 치료해야되자나. 나 그럴 돈 없어."

 

2004년 겨울, 1970년 독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한 선생님의 말이다. 대학생은 그게 두렵다. 고소득이나 안정적 직업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내 노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내 가족이 아프다면? 자식들의 교육비는? 난 과연 여가라는 것을 즐길 수 있을까? 배부른 소리가 아닌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는 난제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대학생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국가에 사회안정망을 확실히 만들라고 요구해야지요. 일자리 하나만 놓고 본다면, 엉뚱한 사업해서 일자리 창출한단 소리하지 말고 젊은 사람들 트랜드를 따라가야겠죠. 생각해봅시다. 몇 십년 전만해도 '사회복지사'라는 직업도 없었고, 'B-BOY'라는 직업도 없었어요. 특히 젊은이들이 춤춘다고 하면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 상상이 되죠? 지금 한국의 춤꾼들은 세계 무대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일자리라는게 창출되는 방식이 달라진 거죠."

 

"좀더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예를 들어 대학생이 마음껏 즐기면서 사회에 공익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 부분에선 국가가 지원해야 되지 않을까요? 'B-BOY'가 양로원이나 보육원을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하거나, 역사를 공부한 친구들이 시골지역을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거예요. 거기에 필요한 교통비나 식비 정도를 나라에서 지원한다면요. 그리고 그게 자연스레 사회에 이어지는 거죠. 사회에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럼 직업에 대한 '안정성'이란 측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정성, 중요하죠.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시대에 안정성이라는 의미가 어떻게 변모할지는 모르겠네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여느 사람들처럼 대단한 혁신이나 변화를 시작점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아주 소소한 형태의 제안들이 제법 흥미로웠다. 그리고 정부의 오래된 시스템은 대학생의 트렌드를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20대의 우수한 인재들이 그래요. 공무원 한 자리를 놓고 자기들끼리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같은 구조가 몇 십 년 지속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공무원이 중요하지만 상당수 대학생이 공무원 시험에 목 매다는 이 현상이 기이한 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대학생이 공무원의 어떤 매력 때문에 시험에 매달리는지를 생각하면 섬뜻하기까지 하는데 말이다.

 

"국가에 요구할 것은 반드시 요구해야죠. 이보다 어려운 시대에도 대학생들은 크게 외쳤습니다. 지금은 여건이 훨씬 좋아진 거죠. 그리고 생각해야죠. 과연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안정성이나 눈치보기가 아닌 나한테 질문을 던져야겠죠?"

 

그렇게 이학영 총장과의 만남은 마무리 됐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이 왠지 혼이 없는 것만 같은 느낌, 취업을 위해 건너가는 다리 쯤 되는 위치에 오롯이 내 삶을 살아내는 존재들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 그래서 조금 서글펐다.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대학생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힘이 생겼다. 나만한 자식을 가진 이학영 총장이 부당한 국가권력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게. 다음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학생, #일자리, #이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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