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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라고 하는 ‘아내의 유혹’에 집사람이 푹 빠져 있습니다. 퇴근후 저녁을 먹고 나면 설거지도 미룬 채 일단 ‘아내의 유혹’을 보기위해 TV앞에 코 박고 앉습니다. 별 시덥잖은 3류 잡지같은 얘기에 빠지는 여자들의 드라마 심리를 탐탁치 않게 여기다가 한두 번 보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이 드라마를 보기위해 채널을 고정시켜 놓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송을 볼 수 없어 요즘은 할 수 없이 시청하다 보니 어느새 ‘아내의 유혹’아닌 ‘남자의 유혹’으로 시청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극중 은재(장서희)의 복수에 대해 통쾌함를 느끼나봅니다. ‘아내의 유혹’을 보며 교빈(변우민)의 파렴치한 행위에 몸을 떨기도 하면서 ‘저런 남자는 천벌을 받아야 해!’ 하며 천하의 죽일 놈으로 취급합니다. 요즘 은재가 복수의 칼을 세우자 아내도 덩달아 신났습니다. 친구의 남편을 빼앗은 애리(김서형)는 같은 여자로서도 용서가 안되나 봅니다. 점점 숨통을 조여오는 애리의 곤경과 피맺힌 한을 풀려는 은재의 칼날 앞에 신난 것은 비단 제 아내뿐이 아니라 대다수 주부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보는 ‘아내의 유혹’은 여자들과는 좀 다릅니다. 우선 교빈의 캐릭터는 요즘 남자들과는 다릅니다. 바람을 피워도 우선 대상을 잘못 선택했습니다. (물론 남자들의 불륜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하필 아내의 친구, 그것도 처남 강재의 결혼대상자를 상대로 바람을 피웠다는 것부터가 조금 멍청한 듯 보입니다. 그리고 애리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도 너무 허술합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하는데, 다리 뻗을 곳도 없으면서 무턱대로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앞뒤 가릴 줄 모르는 쑥맥입니다. 불륜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지만 교빈의 행동은 우매하고, 사리 판단이 부족해 보입니다.

 

SBS '아내의 유혹' 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애리에 대한 일방적 복수보다 그 이면의 아픔도 보아야 한다.
SBS '아내의 유혹' 드라마아내의 유혹은 애리에 대한 일방적 복수보다 그 이면의 아픔도 보아야 한다. ⓒ 카푸리

 

또한 아무리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은재가 민소희로 변했다 해도 결혼 후 한 이불을 덮고 잔 아내를 몰라본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자기 아내는 먼 발치에서 봐도 금방 알아보는게 보통인데, 코앞에서 보는 아내 은재를 몰라보다니 드라마 설정치고는 조금 유치합니다. 뭐 얼굴에 점하나 찍어 붙였다고 모른채 하는 건 아니겠지요? 이 정도까지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해도 교빈이 소희의 꼬임에 넘어가 회사자금 200억을 도박장에서 한순간에 날리는 것도 작위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아버지가 졸부라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하루 저녁에 회사 공금 200억을 날릴 만큼 간 큰 남자는 요즘 세상에 찾기 힘듭니다.

 

또한 은재의 교빈을 향한 복수의 칼날은 조금 고전적입니다. 요즘 여자들은 남자들이 싫다하면 그냥 돌아서는데, 은재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아이까지 가진 은재를 바닷물에 빠뜨려 죽이려한 교빈은 천벌을 받을 죄입니다. 은재가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듯한 한을 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교빈이 덕분에 민소희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며 민소희의 오빠 민건우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굳이 교빈에게 복수를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글은 서두에서 밝혔듯이 여자들이 보는 '아내의 유혹‘이 아니라 남자들이 보는 입장에서 쓴 ’남자의 유혹‘이란 것을 다시 한번 밝혀 둡니다.)

 

고아로 자라다가 은재의 집에서 20년간이나 눈치 아닌 눈칫밥을 먹으며 신분 상승을 꿈꿨던 애리의 악행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요즘 여자들이 애리의 입장이었다면  많은 여자들이 이런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다만 그 생각을 마음속에만 갖고 있느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느냐의 차이지만 애리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비록 은재가 교빈과 결혼을 했더라고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다.'는 마음으로 교빈과 결혼하게된 애리는 경쟁에서 이긴 것입니다. 다만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 과정과 결과를 놓고 보면 당찬 여자입니다.

 

악녀 애리는 당연히 은재의 복수의 칼을 맞아야 합니다. 애리는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과거를 자식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 요즘 온갖 수모와 굴욕을 당하면서도 모성 본능만은 잃지 않고 있습니다. 교빈과 이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아버지 없이 불행하게 자랄 아들을 생각해서입니다. 민여사(정애리)에게 찾아가 무릎까지 꿇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애리의 모습속에서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죄는 밉지만 자식은 무슨 죄가 있어서 아버지 없이 자라야 하는 건지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왕 업지러진 물인데, 불행과 복수를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자들이 보는 은재의 복수에 대한 생각입니다. 복수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클리세 굴레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이 ‘아내의 유혹’을 보고 광분하며 은재의 복수에 통쾌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말처럼 애리는 또 다른 불행을 맞게 되고 그녀의 아들 역시 원하지 않는 아픔을 겪으며 애리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애리와 교빈의 원죄(?), 그리고 두 남녀를 인민재판 하듯이 천하의 '나쁜 XX'들로 몰아붙이기에는 그 이면의 아픔들이 또 다른 불행을 초래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자들이 보는 ‘아내의 유혹’과 남자들이 보는 ‘남자의 유혹’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보는 '남자의 유혹' 입장만 강조하다 보면 요즘 '아내의 유혹'을 보며 공분을 사고 있는 애리를 두둔하느냐며, 아내로부터 먼저 비난을 받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 아내가 보는 '아내의 유혹'을 보지 않고 '남자의 유혹'으로 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되었습니다.


#아내의 유혹#장서희#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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