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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 10일 밤 서울 숭례문에서 화재가 발생해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작년 2월 10일 밤 서울 숭례문에서 화재가 발생해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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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광희문. 숭례문 화재 이전까지만해도 관리가 허술했지만 이제 무인경비 시스템과 초소도 생겼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방범 초소가 설치된 광희문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광희문. 숭례문 화재 이전까지만해도 관리가 허술했지만 이제 무인경비 시스템과 초소도 생겼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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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아침, 서울시가 지난해 2월 발생한 숭례문 방화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전담 경비인력 86명을 흥인지문 등 주요 문화재 22곳에 배치하는 등 '문화재 종합 안전관리 대책'을 시행 중이라는 내용의 보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문화재 안전관리예산을 1억800만 원으로 편성했다가 41억5200만 원으로 재편성했으며 올해 관련 예산을 61억5600만 원으로 증액했다고 합니다. 저희 집 근처 광희문에 마련된 초소도 이 예산으로 제작된 것이겠지요.

보도를 접하고 있자니 쓴 웃음이 나옵니다. 소 잃고 외양간 한번 심하게 고치는구나 싶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오전 내내 서울시가 이러한 홍보를 할 자격이 있는지 다시금 반문해 봤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발생한 용산 철거민 폭력진압을 묵인했던, 지난해 청사 사적지정을 두고 문화재청과 마찰을 빚었던 서울시가 이러한 홍보를 한다는 것이 왠지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숭례문 화재의 본질, 일방적인 재개발 논리

매일 출퇴근길에 바라보게 되는 숭례문 복원현장. 사이사이 내부를 조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지만 과거의 화려하고 웅장한 숭례문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 숭례문 복원 현장 매일 출퇴근길에 바라보게 되는 숭례문 복원현장. 사이사이 내부를 조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지만 과거의 화려하고 웅장한 숭례문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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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 발생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년 전 퇴근길에 숭례문 화재를 처음으로 목격해 신고했고, 방화용의자인 채모씨를 검거하는 현장까지 동행했었기에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물론 당시에는 숭례문 화재를 막지는 못했지만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일조했다는 데 나름 자부심도 가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제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숭례문 화재, 그 이면의 진실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1년 전, 숭례문 화재가 발생하고 방화용의자 채모씨를 검거하기 위해 형사들과 동행하면서 문제가 된 일산의 '알박기' 땅을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층 아파트 사이에 자리 잡은 20여 평 남짓한 공간이 채모씨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고백하건대 당시에는 '그깟 돈 몇 푼 더 받겠다고 이런 일을 벌인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돈이 무엇이기에 국보를 태워가며 받아내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하면 채모씨의 극단적 행동도 폭압적인 재개발과 대기업 편들어주기 행정이 빗어낸 참혹한 결과였습니다.

채모씨는 검찰에서 "내 땅, 내 집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이 억울하다"고 수차례 밝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국보를 불태우고 국민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준 죄, 벌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나이 일흔의 백발노인이 이처럼 참담하고 무모한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그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지 못한 우리 자신부터 반성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1년이 지나서야 생각하게 됩니다.

탐욕이 부른 용산 참사, 숭례문 화재의 복제판

용산 철거민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3주가 지나갑니다. 이번 비극은 서울시와 용산구 그리고 재개발조합측이 법적으로 규정된 휴업보상비 3개월분과 주거이전비(집세) 4개월분을 세입자들에게 지급키로 하자 세입자들은 생계와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비현실적인 액수라며 반발하고 나서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특히 상가 세입자들은 대체 상가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이러한 요구에는 관심도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문화재청을 무시하고 신청사 짓기에 급급했듯, 용산에서도 그런 재개발을 꿈꿨나 봅니다. 결국 서울시의 일방주의는 여섯 사람의 꿈과 희망을 한 번에 앗아 갔습니다.

용산 참사 소식을 접하며 어릴 적 읽었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올랐습니다. 30년 전 쓰인 이 책의 이야기가 왜 2010년을 바라보는 우리 앞에서 현실이 되는 것일까요.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폭식공룡이 이제 30살 나이를 통해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나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잡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공룡 앞에서 새파랗게 질린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는 결국 무엇이 될까요.

서울에서 처음으로 얻었던 신당동 사글세방.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공룡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렸다.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고 누군가는 지난 추억을 잃어 버렸다
▲ 재개발이 한창인 신당동 서울에서 처음으로 얻었던 신당동 사글세방.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공룡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렸다.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고 누군가는 지난 추억을 잃어 버렸다
ⓒ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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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동네 공원으로 향하는 길, 처음 서울에 올라와 사글세 살았던 집을 찾았습니다(참고로 제가 사는 신당동도 요즘 재개발이 한창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잔소리 꽤나 늘어놓으시던 주인 아주머니가 사시던 건물은 이제 을씨년스럽게 변해있었습니다. 이 개발의 후폭풍 속에서 아주머니는 얼마의 보상을 받고 정든 고향을 등지셨을까요. 또, 누군가는 보상 대신 자신이 가꿔온 터전과 고향을 잃어 버렸겠지요.

탐욕과 개발에 대한 일방주의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한, 제2의 제3의 숭례문 화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늦은 밤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태그:#숭례문화재, #용산참사, #재개발, #뉴타운, #난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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