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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 다 타는고마(탄다). 밥 안 차려오고 머하노(뭐하냐)!"
잠드신 줄 알았던 어머니가 팩 고함을 쳐서 나는 깜짝 놀랐지만 일부러 돌아보지도 않고 대꾸를 했다.
"밥 안 타요."
출판사 두 곳에서 각기 책을 내기로 해서 무지 바쁘기도 하지만 이미 밥 다 해 놓고 어머니 일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지라 나름대로 여유를 부린답시고 밥이 타는지 안 타는지에만 초점을 맞춰 대답을 했던 것이다.

"안 타기는 뭐가 안 타. 밥 됐다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밥이 안 타?"
어머니는 옛날처럼 아궁이에 불 때서 밥 하는 줄로 아신다. 나무로 불을 모아서 밥을 하면 밥솥이 넘을 때 불을 빼 내고 불잉걸로 뜸을 들인 다음 눋기 전에 밥을 퍼야지 안 그러면 누룽지가 생기면서 밥이 몇 그릇이나 축이 난다고 늘 잔소리시다.

이번에도 나는 어머니를 돌아보지도 않고 컴퓨터만 쳐다 본 채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전기밥솥이라서 밥 안 타요."
어머니가 사서 하는 걱정들에 대한 일종의 대처법이다. '호의적 무시'라고나 할까.

밥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 숨 자고 일어나도 여태 부엌에 안 나가고 있으니 어머니는 속이 탄 모양이다. 어머니는 한 숨 주무셨는지 모르지만 시간은 그대로였다. 부엌에서 바로 밥상을 차려 와서 아침을 먹는데 어머니는 타지 않은 밥상을 받은 게 도리어 언짢으신 표정이다. 당신의 빗나간 예측 때문인지 모르지만.

어머니 기색을 살피며 밥을 다 먹고 나서 사과 하나 드릴까요 물었더니 "사과가 오대인노?" 하셨다. 드시고 싶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아니, 아침부터 역정을 내고 밥 재촉을 한데 대해 나랑 화해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한 답변은 뻔하다. 어머니 드리려고 아까-부터 부엌 찬장 안에 사과를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놨다는 대답이었다. ‘아까-부터’는 어머니 특유의 화법인데 ‘아주 아주 오래 전’이라는 뜻이다.

사과 반쪽을 다시 4등분하시는 어머니. 폰카로 찍은 사진이라 흐리다.
▲ 사과 사과 반쪽을 다시 4등분하시는 어머니. 폰카로 찍은 사진이라 흐리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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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예쁘게 깎으시던 어머니가 힐끔힐끔 나를 쳐다 보시는 듯 했지만 나는 모른 척 하고 컴퓨터만 했다. 순전히 내 짐작이지만, 어머니가 사과를 청하신 것은 정말로 내게 사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다음 어머니 태도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야야...(아들을 자애롭게 부를 때 하는 말) 너도 사과 항 개 묵으끼가(먹을래)?"
내 눈치를 봐 가며 사과 하나를 아그작 아그작 잡수시던 어머니가 나 한테 사과 한 쪽을 건네시는데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엉덩이를 휙 돌려 앉으며 "안 먹어~!" 했다.

민망하진 어머니가 혼자 사과를 또 아그작 아그작 잡수시는데 좀 초조해지셨나보다. 한 참 있다가 어머니가 내 무릎을 치셨다. 사과 반쪽이 깎이지 않은 채 접시 위에 남아 있었다.

먹지좋게 껍질을 깎고 계시는 어머니.
▲ 사과 먹지좋게 껍질을 깎고 계시는 어머니.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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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너 좀 깎아 죽까? 사과 너 좀 죽까?"하셨다. 나는 거침없이 "네!" 하고 소리쳤다.
얼른 사과랑 칼을 집어 든 어머니는 얼굴이 활짝 펴지셨고 소리 내어 웃었다. 토라졌던 내가 사과가 먹고 싶어서 참다 참다 못 참고 끝내 사과를 먹겠다고 한 걸로 아신 모양이다.

"으하하하. 개가 똥을 참아라. 하하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늙으신 부모를 모시는 카페<부모를 모시는 사람들(www.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치매, #어머니, #김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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