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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흥, 그가 던져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봉기의 남자, 여자, 소녀
 정봉기의 남자, 여자, 소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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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조그만 미술관 OS 갤러리에서 매월 작품을 바꿔 가며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 1월의 전시회는 개관 1주년 기념전으로 미협 충주지부 회원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수채화, 유화, 조소, 도자기 등 18명의 다양한 작품이 선보였다.

특히 정봉기의 조소 작품이 인상적이다. 사암과 옥으로 만든 사람 형상인데 타이틀도 남자, 여자, 소녀이다. 남자와 여자는 아메리카 수입돌인 인디안 갈로로 만들었다. 머리의 투박한 질감과 매끈하게 다듬은 피부의 질감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소녀는 트라베스티노라는 이란 옥으로 만들었는데 타이틀만큼이나 돌의 재질이 깨끗하다. 그리고 소녀의 포즈 역시 대단히 예술적이다.

수채화 작가 6인 초대전
 수채화 작가 6인 초대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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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월의 전시는 ‘수채화 작가 6인 초대전’으로 이 지방에서 활동하는 6명의 수채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 6명이 박인흥, 연은주, 장명남, 정봉길, 정인순, 조근영이다. 이 중 절반은 교사로 활동하고, 나머지 절반은 순수하게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들 전시 작품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박인흥의 ‘하얀 기억’이다. 입구에 걸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림의 기법이 색다르기 때문이다. 수채화하면 색깔의 조합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그림은 거의 흑백으로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돌들이 물에 씻겨 둥그렇게 되고 구멍도 나 있다. 세월의 연륜 속에서 닳고 닳은 공기돌의 모습이다. 타이틀에 보이는 ‘하얀’은 아득하다는 뜻을 가진 것 같다.

박인흥의 하얀 기억
 박인흥의 하얀 기억
ⓒ 박인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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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흥은 또한 물가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통해 세월을 이야기하고 기억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의 작품이 던져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 다른 작품 ‘쑥부쟁이’와 ‘감국’ 역시 가을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쑥부쟁이’는 퍼져나감(奔散)을 ‘감국’은 모여듬(集中)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정봉길, 녹색과 빛의 마술사

정봉길
 정봉길
ⓒ 정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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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길은 색과 빛의 마술사로 보인다. 초록색을 통해 한 여름의 왕성한 자연력을 표현한다. 배경과 대상이 같이 초록인데 농담을 통해 분명히 다르게 나타난다. 콘트라스트의 달인이다. 구름이 덮인 ‘운산’은 과감한 붓터치를 통해 신비스런 느낌을 창조해 냈다. ‘엉겅퀴’ 역시 이제 막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다. 화면 가운데 위에서 아래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림 속에서 초록의 향연을 표현하고 있다. 계절은 분명 여름이다.

이에 비해 ‘가을 나무’는 잎이 절반쯤 떨어진 가을 풍경이다. 오후 늦게 해가 넘어가는 시점이다. 나무가 햇살을 받아 노랗게 물들었다. 그 노란 빛이 화려하게 번쩍인다. 노란 반사광과 노란 잎이 같은 계열의 색상임에도 분명히 구분된다. 그런 점에서 정봉길은 색과 빛의 마술사이다. 사진이 실제 작품을 제대로 복제하지 못해 아쉽다. 노란 반사광의 강렬함이 사진 속에서는 사라졌다.

겨울날 아침
 겨울날 아침
ⓒ 정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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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작품 ‘아침’은 겨울날 시골 풍경이다. 마을이 온통 눈에 파묻혔다.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겨울을 나고 있다. 그런데 산과 나무에는 눈이 없다. 그 대비가 신선하다. 고즈넉하고 편한 마음은 마을과 산 모두에게서 나온다. 근경의 벼 집가리, 중경의 나무들이 그림의 단조로움을 상쇄해 준다.   

연은주, 그가 태풍 매미에서 느낀 것

연은주의 그림은 상당히 여성적이다. 또 대상도 우리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동식물을 주로 이용했다.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어항에서 놀고 있는 관상어들, 우리가 흔히 보는 초본류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새로운 모습은 없다. 한마디로 이상적 사실주의이다.

태풍 매미
 태풍 매미
ⓒ 연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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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우리는 지난 여름 태풍(매미)을 얼마만큼 기억하고 있을까!’이다. 우선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태풍 매미는 2003년 9월 남부지방을 강타한 초대형 태풍이었다. 작가는 아마 이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그림을 그린 것 같다.

전체적으로 무서움에 떨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을 수채화의 풍김 기법을 통해 표현했다. 그 옆에는 건물이 약간 휘어진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배경의 색은 폭풍우 때문인지 퍼렇다. 파란색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작가가 던져주고자 하는 주제는 그 안에 표현된 6개의 작은 그림 속에 있는 듯하다.

OS gallery를 찾은 관객들
 OS gallery를 찾은 관객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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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모면 모든 것이 다 문드러지고 망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무도 건물도 논도 길도. 이들 모두를 작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그것을 기억해 주도록 관객들에게 촉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목의 느낌표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파괴를 기억하라(Memento distruzione). 

꽃들의 향연, 추(醜)미학이 조금은 그리운

장명남의 유혹
 장명남의 유혹
ⓒ 장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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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남, 정인순, 조근영의 대상은 주로 꽃이다. 물론 구체적인 대상은 다 다르다. 장명남은 야생화를 즐겨 그렸고, 정인순은 꽃에 잠자리를 접목시켰다. 그리고 조근영은 꽃잎이 큰 관상화를 그렸다. 이들 작가는 대상뿐 아니라 표현 기법도 서로 서로 다르다.

장명남이 그린 야생화는 물봉선과 고마리, 양귀비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타이틀로 이름 붙여졌다. 물봉선은 ‘수줍음’이고 고마리는 ‘축제’이며 양귀비는 ‘유혹’이다. 개개의 꽃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지만 조금은 상투적이다. 그 정도로는 작가가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관객에게 파고들지 못한다.

정인순의 사랑
 정인순의 사랑
ⓒ 정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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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순의 잠자리 꽃 시도는 참신하다. 그런데 그게 강렬하게 와 닿지를 않는다. 왜일까? 그로테스크를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꽃술 부분을 잠자리의 머리로 표현했다. 그런데 그런 정도는 그로테스크의 초보 수준이다. 그로테스크의 강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조근영의 작품 역시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평화스럽다. 화병에 꽂혀있는 화사한 꽃, 탁자 위에 누워있는 아름다운 장미, 싱그러운 나뭇잎.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이상적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움 외에 추함도 있다. 꽃에서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그 반대 개념인 추함을 찾을 수는 없는 건가? 추악함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면 아름다움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예술의 속성이 이제 다름과 파괴라는 사실을.

조근영의 청야(淸夜)
 조근영의 청야(淸夜)
ⓒ 조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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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충주 OS gallery에서 '수채화 작가 6인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기간은 2월5일부터 2월27일까지이며,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문을 연다. 문 여는 시간은 오전 11시이고 문 닫는 시간은 오후 7시이다. 직장인을 위해 저녁 7시까지 문을 열어놓고 있다.



태그:#수채화 , #충주 OS GALLERY, #박인흥, #정봉길, #연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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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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