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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밭에 가보았는가. 지난 여름 백 만이 넘는 피서객들이 빼곡하게 찍어놓은 발자국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던가. 그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다시 찍으며 걷는 모래밭에 어떤 아름답고 고운 추억들이, 어떤 슬프고 아픈 추억들이 오래 묵은 흑백필름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며 마음 깊숙이 회오리치던가.

 

저만치 드넓은 바다 끝자락. 수평선을 빨래줄로 삼아 코발트빛 바다를 널어놓고 있는 청자빛 하늘에 무엇이 있던가. 갈매기 한 마리, 지금도 잊지 못하는 옛 사랑처럼 쓸쓸하게 날아다니고 있던가. 그때 애인과 함께, 하얀 갈기를 치켜세우며 세차게 달려오는 파도 위에 쓴 '사랑해'란 세 글자는 하얀 포말로 몰려오던가. 

 

그때 애인과 함께, 모래밭을 또르르 말며 코발트빛 바다 속으로 꼬리를 감추던 그 파도 위에 쓴 '영원히'란 세 글자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에 그대로 매달려 있던가. 그때 주웠다 잃어버린 그 예쁜 조개껍데기, 무지개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그 전복껍데기는 보이던가. 그때 눈빛을 마주치며 쌓은 그 모래성은 남아 있던가.          

 

해운대 모래밭 오른 편에 있는 그 동백섬에는 지금도 동백이 오래 묵은 붉은 해송을 바라보며 올망졸망한 눈망울을 굴리고 있던가. 그때 동백잎에 새긴 우리 이름 세 자는 그대로 남아 있던가. 바다를 짙푸르게 멍들게 만든 그 기기묘묘한 바위에는 지금도 파도가 세차게 부딪쳐 하얀 피를 흘리다가 짙푸른 피멍만 안은 채 맥없이 주저앉고 있던가.

 

 

모래밭에 퍼질고 앉은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1월 24일(토) 오후 3시쯤 찾은 겨울 해운대. 겨울을 맞은 해운대 해수욕장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지난 여름 백만이 훨씬 넘는 피서객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청자빛 하늘에는 갈매기 서너 마리 하늘을 물결 삼아 돛단배처럼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고, 아스라하게 펼쳐진 모래밭에는 사람 그림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길이 1.55km에 면적이 6만 평방미터로 한꺼번에 12만 명이나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는 이 드넓은 모래밭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하 호호 웃으며 디카를 들고 동백섬과 수평선을 밑그림 삼아 사진을 찍고 있는 '동백 아가씨' 넷도 보인다. 어머니와 딸, 손녀로 보이는 사람 셋도 모래밭에 퍼질고 앉아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근데 저 사람은 누군가. 저만치 수평선이 환하게 바라다 보이는 모래밭 한가운데 퍼질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저 사람. 아래 위로 까만 옷을 입고 맥없이 홀로 앉아 있는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여름 해운대에서 만났다 헤어진 한 사람을 애타게 떠올리며 갈매기처럼 꺼이꺼이 울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저 사람은 사업을 하다가 긴 불황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파산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도 아니면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쫓겨난 것은 아닐까. 아프다. 텅 빈 해운대 모래밭에 맥을 놓은 채 퍼질고 앉아 고개를 포옥 숙이고 있는 저 사람, 마치 나그네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다. 

 

 

우리나라 8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해운대

 

눈빛으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밟으며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밭을 천천히 걷는다. 이렇게 수많은 발자국을 누가 다 찍어 놓았을까. 이 발자국들 속에 지난 해 나그네가 찍어놓은 발자국도 남아 있을까. 끝없이 밀려왔다 또르르 말려가는 저 파도 위에 지난 해 나그네가 눈빛으로 새긴 '그리움'이란 세 글자는 남아 있을까.

 

부산 해운대구 중동과 좌동, 우동을 품고 있는 해운대. 해마다 여름이면 한반도 곳곳에서 더위를 피해 몰려온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 8경 중 하나인 해운대. 근데, 왜 사람들은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한반도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수많은 해수욕장을 두고 이곳 해운대를 고집하는 것일까.  

 

아마, 드넓게 펼쳐진 금빛 고운 모래와 짙푸른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해안선이 너무나 곱고 아름답기 때문일 게다. 여기에 해운대 온천과 동백섬, 오륙도, 달맞이길, 청사포(횟집), 올림픽공원, 요트경기장 등이 특급호텔과 함께 어우러져 있고, 샤워장이나 탈의실, 식수대, 화장실 등 여러 가지 시설이 아주 편리하기 때문일 게다. 

 

해운대 모래밭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 있는 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천천히 걷다가 가까이 있는 동백섬으로 올라선다. 행여 동백이 피었을까. 조바심을 내며 기암절벽을 끼고 있는 동백나무 곁으로 다가섰지만 동백나무 가지에 매달린 동글동글한 꽃몽오리는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치원 호 딴 해운대 옛 이름은 '구남 해수온천'

 

"해운대는 신라 끝자락 학자 최치원(崔致遠)이 난세(亂世)를 비관한 끝에 속세의 티끌을 떨어버리기로 작정하고 해인사(海印寺)로 들어가던 중 이곳에 이르러 절경에 감탄한 나머지 동백섬 암반 위에 자신의 호를 따서 '해운대'(海雲臺)라 새긴 데서 비롯되었다. 지금도 그 세 글자는 바위에 뚜렷이 남아 있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이곳 해운대는 옛날 구남 해수온천(龜南海水溫泉)이라 불리울 정도로 온천이 유명했다. 때문에 통일신라 51대 진성여왕이 나랏일을 돌보지 않고 이곳에 자주 놀러와 목욕을 하고 풍악을 즐겼다. 그때 한 용감한 관리가 용감하게 온천을 폐쇄해 버렸다. 그때부터 이곳에는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대마도와 일본이 가까운 이곳 해운대에 왜구가 하도 자주 나타나 노략질을 일삼으며 해수욕을 즐겨 폐탕(廢湯)했다는 말도 떠돈다. 하지만 해운대가 한때 버려진 땅이 된 까닭은 분명치 않다. 해운대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공중욕장이 생겼을 때부터다. 

 

그 뒤 고종 때에는 황실에서 이곳 도남산(圖南山)에 대대적으로 계획조림(計畵造林)까지 하여 높은 관리들이 앞 다투어 별장을 짓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이곳을 차지해 놀이터로 삼았다. 이는 온천장까지 있는 해운대가 그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사람이 즐기기에 좋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9일 오전 10시30분부터 '해운대 달맞이 온천축제' 열려

 

동백섬에서 한동안 기암절벽에 산산이 부서져 하얀 포말로 무너지는 파도와 해송 사이에 걸린 수평선을 바라보며 역사를 더듬다가 다시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나온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월대보름(9일)이 되면 이곳에서 '해운대 달맞이 온천축제'가 열릴 것이다. 올해 해운대에 달이 떠오르는 시간은 오후 5시 41분.

 

올해 열리는 달맞이 축제 중 가장 큰 볼거리는 오전 10시30분에 1000여 명 가까운 연날리기 동호인들이 참가해 펼치는 '국제연날리기대회'다. 이 대회에서는 각양각색으로 만든 창작연과 전통연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윷놀이, 닭싸움, 투호놀이, 널뛰기 등 여러 민속경기 경연대회도 보는 이를 흥겹게 만들 것이다.

 

오후 3시 30분부터는 특설무대에서 참가자들을 즉석에서 신청해 부르는 달집노래방과 초청가수 공연, 온천전설무용극, 길놀이 지신밟기 등도 잇따라 이어진다. 특히 이날 오후 5시에는 해운대 앞바다를 떠난 어선들이 고기잡이를 끝내고 만선의 기쁨을 안은 채 오륙도를 지나 해운대로 돌아오는 '오륙귀범'이 재현된다.

 

마지막 행사인 월령기원제와 달집태우기, 강강수월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인 쥐불놀이와 촛불 기원제 등도 놓치기 어려운 눈요깃거리다. 그밖에 오곡밥과 부럼, 파전 등 정월대보름이 되어야 맛볼 수 있는 전통 먹을거리를 파는 장터도 열린다. 하지만 나그네는 볼거리, 들을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이 행사에 참여할 수가 없다. 서울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에 찾은 해운대 해수욕장과 동백섬. 누가 말했던가. 데이트는 겨울이 가장 좋고, 꽃놀이는 봄이 가장 좋고, 물놀이는 여름이 가장 좋고, 먹을거리는 가을이 가장 좋다고. 그날, 나그네는 해운대 모래밭에 이렇게 썼다. 겨울바다는 혼자가 좋고, 꽃놀이는 동백섬 동백꽃이 좋고, 여름철 물놀이는 해운대가 가장 좋다고.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부산-해운대-동백섬
※KTX나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 해운대로 가는 지하철을 이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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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해운대, #동백섬,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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