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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눈은 몇 번을 나를 향해 사랑어린 눈길을 주더니 이내 눈꺼풀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선한 눈을 감기기 위해 는개는 밤새 온 대지 위에 내려앉았나 보다
 선한 눈은 몇 번을 나를 향해 사랑어린 눈길을 주더니 이내 눈꺼풀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선한 눈을 감기기 위해 는개는 밤새 온 대지 위에 내려앉았나 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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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서정주 시인은 그리도 애달픈 국화꽃 피는 사연을 노래했는데, 그 애잔함이 오늘처럼 가슴에 사무치는 날도 없다 싶다.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왜 이리 이른 아침에 어르신들이 궁금해졌을까.

오랜만의 이른 기상, 그 이유는?

이상도 하다. 많은 밤들을 지내며 전혀 궁금하지 않던 그들(할아버지)의 밤, 그녀들(할머니)의 밤을 이토록 둘러보고 싶은 마음으로 펌프질을 하는 것은 도대체 그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다 나은 감기기운도 아니다. 누가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도 아니다. 눈이 와 부지런한 류 권사님이 눈 쓰는 소리를 내기 때문도 아니다. 낮에 마신 커피 탓도 아니다. 이미 서너 잔은 거뜬하니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밤새 설익은 숨소리만 탓하다 그냥 일어나고 말았다. 온밤을 살라먹고 난 후 다가온 내 맘속의 애잔함이라?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아 켜보니 4시 24분이라고 가르쳐줬다. 이유 없는 이른 기상은 무엇을 기대하라는 하나님의 계시? 아니면 무언가 불길한 징조? 그도 저도 아닌 그저 우연?

아무래도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운 소쩍새 울음이 아니면 해명이 안 된다. 나의 간밤을 살라버린 놈은 도대체 누군가. 항상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있는 법이긴 하다. 온갖 구실을 둘러다 대도 여전히 일어날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난 이미 일어나 앉아있다. 그리곤 벌써 일어섰다. 또 무작정 걸어간다. 어르신들이 잠든 숙소를 향해.

‘사랑의마을’의 아침예배는 7시다. 보통의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4시 반이나 5시쯤 하는 것하고는 아주 다르다. ‘사랑의마을’은 어르신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노인요양시설이고 보면 딱히 새벽부터 일어나 수선을 떨며 예배란 걸 드릴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목사인 나의 기상시간도 다른 목사들보다는 늦을 수밖에. 그런데 오늘은(4일) 왜 이리 일찍 눈이 떠졌는지.

일상이 아닌 범상, 그 이유는?

벌써? 하지만 이미 내 발길은 ‘사랑의마을(어르신들의 숙소)’로 들어선다. ‘아니 내가 왜 이리로 가지?’ 무의식이 무의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도 여전히 가던 길을 되돌리지 않는다. 다른 때 같으면 교회바닥에 엎드려 기도하거나, 아니면 세수하고 책 나부랭이들을 들추고 있을 텐데. 나 자신도 모르게 어르신들이 고이 잠들었을 게 뻔한 숙소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예배를 드리는 곳과 숙소는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다. 근데 그 짧은 거리를 가면서 오늘따라 는개가 너무 자욱이 내려앉았구나 생각했다. 어떻게 이리도 심한 는개가 낄 수 있을까. 하도 짧은 거리라서 는개에 대한 상상은 그저 ‘좀 심한데?’ 정도로 접고 1동을 둘러보았다. 고이 잠든 이들의 새근거리는 콧소리만 들릴 뿐이다.

누가 켜놓은 채 잠들었는지 모를 화장실 불을 껐다. 2동으로 내려와 들어서자마자 식당을 담당하시는 조 집사님이 불을 켜는지, 내가 들어선 복도에서는 금방 어둠이 밝음에게 자리를 내주고 줄행랑을 친다. 문 유리로 비친 어르신들의 세 방안은 조요하다. 한 방에서만 할아버지 한 분이 막 깼는지 옷을 주섬주섬 입고 계신다.

다른 이들은 자고 있기에 조용히 2층으로 향했다.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서자마자 어느 방에선가 튀어나온 직원 강 선생님이 나를 반기며 말한다.

“목사님 웬일이세요?”
“별일 없으시죠?”
“○○○ 할머니 좀 봐주세요.”
“응? 왜요?

직원이 홀연히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진 방으로 들어서는데 같이 밤새 어르신들을 돌보던 직원인 홍 권사님이 뒤따르며 외친다.

“○○○ 할머니가 이상해요. 아무래도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들은 경험상 세상에서 삶을 접을 것 같은 이들이 있을 때만 이런 말을 한다. 이미 때가 됐다는 것이다. 두 직원과 함께 뛰어든 ○○○ 할머니 방, 그의 침대 앞에 섰을 때, 가래가 차 숨을 헐떡이는 할머니가 가엾게 쪼그리고 앉아있다. 가래 때문에 눕혀드리지도 못한 그 상태에서 할머니가 선한 눈을 떠 나를 본다.

눈을 감기기 위한 눈뜸일 줄이야

선한 눈은 몇 번을 나를 향해 사랑어린 눈길을 주더니 이내 눈꺼풀 속으로 사라진다. 10여분이 지났을까. 가래는 더욱 드세게 벌린 입가로 새어나오고, 숨은 점점 사윈다.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써 눈을 치뜨더니 예의 선한 눈빛을 내게 주곤 더 이상 뜨지 않는다. 그렇게 선한 눈을 감기기 위해 는개는 밤새 온 대지 위에 내려앉았나 보다.

코 위에 얹어놓은 화장지조차 미동하지 않을 때 가족과 간호사에게 연락을 했다. 두 손으로 눈을 꼭 감겨드렸다. 어그러지고 비틀렸던 팔다리를 주물러 가지런히 눕혀주었다. 그리곤 나를 만나고야 간 그 선한 눈을 위해 기도드렸다. 목사가 지키는 임종을 성도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 기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님, 천국에서 ○○○ 할머님 맘껏 사랑해 주세요. 당당한 당신의 딸로 받아주세요.”

직원인 홍 권사님이 말한다. 비신앙인인 강 선생님도 수긍한다는 듯 고갯짓을 한다.

“평소에 그렇게 곱고 좋으시더니 목사님께서 환송하고야 가시네요.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알겠어요. 그 고요히 가는 모습이 어딜 가셨는지 보여주시네요.”
“…….”

병원으로 이송하고 가족에게 인계하고, 그리고 저녁 때 선한 눈의 그녀를 위해 병원 장례식장으로 우리 마을 식구들과 함께 찾아가 이별의 예배를 드리고 돌아왔다. 아침 일찍 눈뜰 때만 해도 내가 오늘따라 일찍 눈을 뜬 이유를 몰랐다. 긴 하루를 마감하면서 분명한 이유를 알았다. 고운 눈을 감기기 위한 눈뜸이라는 것을.

평소에도 잔잔하시던 할머니, 있는지 없는지 티를 안 내시던 할머니, 수다쟁이 욕쟁이들 사이에서 유독 돋보이던 선하고 고운 눈을 가진 할머니,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편으론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를 놓아준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 또 하나 별리(別離)의 아름다움을 배워가는 것이려니.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남 연기군 소재 '사랑의마을'이라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신앙생활을 돕는 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른과 함께살기]는 그들과 살며 느끼는 이야기들을 적은 글로 계속 올라옵니다.
*이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보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랑의마을, #임종, #노인요양원, #목사,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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