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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남포동과 서구 충무동에 걸쳐있는 부산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자 수산물 시장인 자갈치 시장
▲ 자갈치시장 부산 중구 남포동과 서구 충무동에 걸쳐있는 부산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자 수산물 시장인 자갈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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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이 세 글자, 이 세 마디로 긴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부산 자갈치시장 사람들. "됐나?", "됐다"란 억세고 짤막한 말 한 마디로 수산물 흥정을 끝내는 자갈치시장 아지메들. 말만 잘하면 가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산물을 듬뿍듬뿍 덤으로 얹어주는 살가운 정이 흐르는 자갈치시장.

그 시장에 가면 지갑이 얄팍한 사람들이 몰려와 가진 돈만큼 안주를 시켜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살가운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시장에 가면 수족관에서 '날 잡아봐라~' 하듯 힘차게 노닐고 있는 물고기들이 지나치는 손님들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 시장에 가면 오랜 돈가뭄에 허덕이는 세월이 은근슬쩍 꼬리를 내리는 듯하다.

국내 최대를 자랑하는 공동 어시장 자갈치.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흔히들 '자갈치 아지메'로 통하는 여성들이다. 그렇다고 남자 상인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시장 안 제법 반듯해 보이는 가게에서 가끔 한두 사람쯤 남자 상인을 마주칠 때가 있긴 하지만 노점상 대부분은 자갈치 아지메들이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부산하면 자갈치시장이요, 자갈치시장을 상징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억척스레 장사를 하고 있는 자갈치 아지메들이다. 이들 아지메들에게 있어서 자갈치 시장은 딸 아들을 대학까지 공부시켜 주는 기름진 논밭이요, 오랜 불황을 견뎌내고 이기게 해주는 알뜰살뜰한 살림방이다.

짙푸른 바다를 입에 문 부두에 묶여 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고깃배들이 비릿한 내음을 훅 풍기고 있는 자갈치 시장
▲ 자갈치시장 짙푸른 바다를 입에 문 부두에 묶여 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고깃배들이 비릿한 내음을 훅 풍기고 있는 자갈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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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부산 시내 음식점에서 오르내리는 먹을거리 가운데 해산물이라면 으레 자갈치 시장에서 가져온 것이라 할 만큼 부산 맛을 대표하는 자갈치 시장
▲ 자갈치 시장 예로부터 부산 시내 음식점에서 오르내리는 먹을거리 가운데 해산물이라면 으레 자갈치 시장에서 가져온 것이라 할 만큼 부산 맛을 대표하는 자갈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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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전마다 수산물 값 천차만별, 부르는 게 값!  

"자~ 떠리미 떠리미. 말만 잘 하모 공짜로도 줍니더."
"제주산 은갈치가 한 마리에 만 원! 만 원!"
"아재! 오데로 자꾸 쳐다보능교? 자갈치에서 수산물이 가장 싼 집이 우리 집이라카이."
"아지벰(아주버니)! 싱싱한 주꾸미에 쏘주 한 잔 걸치고 가이소. 꼼장어, 도다리, 우럭도 있고예, 바다에서 잡히는 고기란 고기는 다 있어예."

예로부터 부산 시내 음식점에서 오르내리는 먹을거리 가운데 해산물이라면 으레 자갈치 시장에서 가져온 것이라 할 만큼 부산 맛을 대표하는 자갈치시장. 시간마다 자리마다 철마다 나도는 수산물이 다르고, 값도 천차만별 다른 곳이 자갈치시장이다. 따라서 자갈치시장에 나와 있는 수산물 가격을 표준으로 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부산어패류처리장'이라는 이름표를 내건 반듯하게 지은 건물에서 좀 비싼 값에 팔리는 수산물이 있는가 하면, 시장 길바닥에 널판지 하나 덜렁 펼쳐놓고 수산물을 값싸게 팔고 있는, '판데기 장수 아지메'들까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가면 수산물 흥정을 놓고 밀고 당기고를 계속하고 있는 '알뜰 아지메'들도 자주 눈에 띤다.  

그뿐이 아니다. 저만치 바다를 끼고 다닥다닥 들어붙은 2평 남짓한 구멍가게 곳곳에는 꼼장어구이를 안주 삼아 소주를 홀짝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연탄불 위에서 연탄불빛처럼 발갛게 익어가고 있는 꼼장어구이 곁에는 싱싱한 우렁쉥이와 해삼을 사이에 두고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젊은 아낙들도 서넛 있다.

자갈치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이 붉은 빛이 고운 우렁쉥이다
▲ 자갈치시장 자갈치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이 붉은 빛이 고운 우렁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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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난전에는 이 지역 사람들이 겨울철마다 즐겨 먹는다는 주꾸미가 동그란 양철 접시마다 수북이 쌓여 있다
▲ 자갈치 시장 그 옆 난전에는 이 지역 사람들이 겨울철마다 즐겨 먹는다는 주꾸미가 동그란 양철 접시마다 수북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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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것도 아님시로 와 자꾸 물어쌓노?"

1월 24일(토) 오후 4시쯤 찾은 부산 자갈치시장. 짙푸른 바다를 입에 문 부두에 묶여 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고깃배들이 비릿한 내음을 훅 풍기고 있는, 그날 자갈치시장 모습도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자갈치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이 붉은 빛이 고운 우렁쉥이다. 크기에 따라 1kg에 3~5천원. 그 옆 난전에는 이 지역 사람들이 겨울철마다 즐겨 먹는다는 주꾸미가 동그란 양철 접시마다 수북이 쌓여 있다. 나그네가 7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할머니에게 한 접시 얼마냐고 묻자 "살 것도 아님시로 와 자꾸 물어쌓노?" 한다.

'아, 뜨거라' 싶어 다시 발길을 생선가게 쪽으로 옮긴다. 고등어(크기에 따라 마리당 1~3천원), 조기(10마리 5천원), 제주산 은갈치(크기에 따라 마리당 1~1만5천원), 반쯤 꾸덕꾸덕 말린 갈치, 코다리, 문어 등 바다에서 나는 생선이란 생선은 모조리 이곳에 집합시킨 듯 줄을 잇고 있다. 바다 생선 백화점이 따로 없다.

저만치 말림틀에 빼곡이 매달려 겨울햇살을 먹으며 꾸덕하게 말라가는 오징어와 코다리 아래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생태와 오징어를 손질하고 있다. 맨바닥에 그저 도마 하나 덩그러니 놓고 부엌칼로 생선 내장을 끄집어내고 있는 할머니 손길이 너무나 재빠르다.
  
시간마다 자리마다 철마다 나도는 수산물이 다르고, 값도 천차만별 다른 곳이 자갈치 시장이다
▲ 자갈치 시장 시간마다 자리마다 철마다 나도는 수산물이 다르고, 값도 천차만별 다른 곳이 자갈치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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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떠리미 떠리미. 말만 잘 하모 공짜로도 줍니더."
▲ 자갈치 시장 "자~ 떠리미 떠리미. 말만 잘 하모 공짜로도 줍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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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시장 원조는 1889년 일본인이 세운 부산수산주식회사  

"부산 어시장은 북항의 부산수산주식회사와 남항의 부산어협 위탁판매장으로 양분되었다. 그 뒤 부산수산주식회사는 국내 최대의 어시장인 부산 공동어시장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남항에 출어하는 영세 어선들의 어획물을 다루는 영세 상인들이 부산어협 위탁판매장 주변에 모여 지금의 자갈치시장을 이루었다." - '부산 자갈치축제' 홈피

부산 자갈치시장 역사는 1889년 일본 사람들이 일본 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남포동 가까이 부산수산주식회사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안내자료에는 "그곳으로 상인들이 몰리자 자갈치시장 상인들도 근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며, "1922년에는 부산어업협동조합이 남포동에 건물을 짓고 위탁판매를 시작함으로써 상인들이 모여 들었다"고 적혀 있다.

자갈치시장은 처음 "충무동 쪽 보수천(寶水川) 하구 일대가 자갈투성이였던 자리에 시장이 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자갈치 시장은 '자갈치어패류처리장'이 들어서 있는 남포동을 중심으로 하는 갯가 시장을 말한다. 이 시장은 '자갈치어패류처리장'이 가건물로 서 있었던 곳이다.

그 가건물이 한국전쟁 뒤 지금의 '자갈치어패류처리장'으로 말끔하게 들어서면서 그동안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판자집 가게들이 모두 철거되었다 한다. 이 시장은 그 뒤에도 큰불이 난 데다 건물까지 낡아 현대식 건물을 새로 지어 1986년 1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 이곳에는 부산어업협동조합, 어패류조합 등 480여 개 수산물 가게가 들어서 있다.

고등어(크기에 따라 마리당 1~3천원), 조기(10마리 5천원), 제주산 은갈치(크기에 따라 마리당 1~1만5천원), 반쯤 꾸덕꾸덕 말린 갈치, 코다리, 문어 등 바다에서 나는 생선이란 생선은 모조리 이곳에 집합시킨 듯 줄을 잇고 있다
▲ 자갈치 시장 고등어(크기에 따라 마리당 1~3천원), 조기(10마리 5천원), 제주산 은갈치(크기에 따라 마리당 1~1만5천원), 반쯤 꾸덕꾸덕 말린 갈치, 코다리, 문어 등 바다에서 나는 생선이란 생선은 모조리 이곳에 집합시킨 듯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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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말림틀에 빼곡이 매달려 겨울햇살을 먹으며 꾸덕하게 말라가고 있는 오징어와 코다리 아래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생태와 오징어를 손질하고 있다
▲ 자갈치 시장 저만치 말림틀에 빼곡이 매달려 겨울햇살을 먹으며 꾸덕하게 말라가고 있는 오징어와 코다리 아래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생태와 오징어를 손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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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대기 장수 아지메'들이 썰어주는 꼼장어와 고래고기

지금 '부산어패류처리장' 위층에는 생선횟집이 늘어서 있어 싱싱한 생선회를 싼 값으로 맛볼 수 있다. 이곳 특징은 생선을 손님들이 지켜보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손질해준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소주 한 잔 커! 하며 싱싱한 생선회를 초장에 찍어 상추에 싸서 먹고 있는 손님들 얼굴에는 미소가 매달려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 눈길과 발길을 한꺼번에 잡아 끄는 곳은 자갈치시장 노점상이다. '부산어패류처리장' 서쪽에 있는 시장 골목 귀퉁이 곳곳에서 판대기 하나 걸쳐놓고 쉰 목소리로 생선을 팔고 있는, 이른 바 '판대기 장수 아지메'들과 부딪쳐보지 않고서는 자갈치 시장 속내를 제대로 훑었다고 할 수 없다.  

어디 그뿐이랴. '부산어패류처리장' 동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꼼장어구이 '판데기 장수'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특히 뱀처럼 마구 꿈틀거리는 꼼장어 껍데기를 마치 파껍질 벗기듯이 스르륵 스르륵 벗겨내 고추장과 양념에 버무려 연탄불에 굽고 있는 자갈치 시장 아지메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소주 한 잔 생각이 절로 난다. 

자갈치시장 '판데기 장수 아지메'는 이뿐만이 아니다. 삶은 고래고기를 그 자리에서 썰어주는 '판대기 장수 아지메들', 물기가 번득이는 싱싱한 물미역과 진초록 빛을 머금고 있는 톳나물, 청각을 파는 '판대기 장수 아지메'들도 있다. 말 그대로 자갈치시장에 가면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은 몽땅 다 있다고 해도 허풍이 아니다.

사람들 눈길과 발길을 한꺼번에 잡아 끄는 곳은 자갈치 시장 노점상이다
▲ 자갈치 시장 사람들 눈길과 발길을 한꺼번에 잡아 끄는 곳은 자갈치 시장 노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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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남포동과 서구 충무동에 걸쳐있는 부산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자 수산물 시장인 자갈치시장. 오늘도 부산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서민들 꿈을 올올이 엮어주고 있는 자갈치시장. 이 시장에 가면 오랜 불황을 이겨내려는 자갈치 아지메들 억센 삶이 메아리친다. 이 시장에 가면 지갑이 얇아도 몸과 마음이 든든해진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부산-자갈치역-자갈치시장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자갈치 시장, #판대기 아지메, #국내 최대 수산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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