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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더 먹다

양력설, 음력설이 모두 지났다. 꼼짝없이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철없던 시절은 나이 드는 게 좋아 보여 친구들에게 은근슬쩍 나이를 부풀린다든지, 생일을 앞당기기도 하지마는 쉰 세대가 되면 나이 먹는 게 싫어지고, 누가 나이를 묻는 게 싫다. 아마도 그 까닭은 여러 가지 있을 테지만, 내 경우는 나이가 많다면 도매금으로 구세대로 여겨지는 게 싫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나이 값도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연전까지만 해도 이틀이 멀다하고 세상이야기나 신변잡담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늘어놓았는데 요즘은 글 쓰는 일을 가능한 절제하고 있다.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든 경찰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든 경찰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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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기사를 송고한 다음날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났다. 시뻘건 불더미에 여섯 사람이 타 죽는 동영상을 보면서, 그것이 천재지변도 아닌 인재임에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산에 사는 사람이지만 이 끔찍한 참변에 한 마디 하려다가 사건의 진상도 잘 모르고 불쑥 뱉은 말이 나이 값도 못하는 얘기가 될 것 같아 쑤시는 좀을 무던히 참았다.

그 사이 설이 지나고 나이도 그새 한 살을 더 먹었다. 참사가 난지 열흘이 지나도 아직 사건 진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철거민 시신은 여태 장례도 치루지 못한 상태고 유가족은 억장이 무너진 채 눈물 마르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침묵하는 게  먹물 든 이로서 도리가 아닐 것 같아 자판을 두드린다.

먼저 더 정확한 사건 개요를 알고자 ‘용산참사’검색을 하자 다음과 같다

‘용산 참사’사건개요

2009년 1월 19일 오전 5시 30분 용산 4구역 철거민과 전철연 회원 등 약 30여 명이 서울특별시 한강로 2가에 위치한 5층짜리 상가 건물 옥상을 점거하였으며, 경찰은 경비 병력으로 3개 중대 300여명을 투입하였다. 철거민들은 옥상 건물 위에 망루(望樓)를 짓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철거반에 저항하였으며, 경찰은 물대포, 최루탄을 쏘며 맞섰다. 철거민들은 서울시가 최소한의 보상도 없이 철거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1월 20일 오전 1시 22분,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농성장 옆 상가 건물 가림막에 화재가 났으나 40분 만에 진화되었고, 오전 6시 12분에 경찰은 철거민들에게 물대포 살수를 시작하였다. 6시 45분, 경찰은 건물의 옥상에서 농성하던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컨테이너에 경찰특공대를 태워 옥상으로 올려 보냈으며, 7시에 컨테이너가 옥상으로 올라가자 본격적인 진압이 시작되었다.

7시 20분에 특공대를 실은 두 번째 크레인이 올라가자 3층과 4층에서 불이 났고, 옥상에 있던 망루에도 불길이 번졌다. 7시 30분에서 40분 사이, 4층에서 3명이 불을 피해 창문가로 이동했으며, 1명이 난간에서 떨어졌다. 7시 45분에는 불이 붙은 망루가 무너졌고, 8시 30분에 소방관들이 옥상에 올라가 망루를 해체하였다. 11시 45분 경찰은 망루를 수색하여 사망자 5명(세입자 2명, 전철연 회원 2명, 경찰특공대 대원 1명)을 발견했으며, 23명(경찰 17명, 농성자 6명) 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하였다. 12시 20분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 이상 다음 위키 백과 ‘용산참사’

섶나무를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경찰

그동안 보도된 양측의 주장을 음미해 보면, 화재사건 발생 원인에 대해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다. 저자를 떠나 산골에 사는 사람으로 볼 때, 그동안 시위 현장에서 사라진 화염병이 다시 등장한 것도 안타깝고, 악에 받친 철거민들이 옥상을 점거한지 겨우 24시간 만에 대 테러진압이나 군사작전 하듯이 안전장치도 소홀히 한 채 마치 섶나무를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무모하고 아주 바보 같은 진압을 도심 한복판에서 서슴없이 펼치는 경찰의 처사가 이해되지 않았다.

더욱이 철거민들은 옥상에 시너와 석유 등 위험물을 잔뜩 싸둔 걸 알면서도 고가사다리를 이용하여 컨테이너 박스에 경찰특공대를 태워 현장에 투입한 것은 사건을 확대시킨 1차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을 듯하다. 언필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경찰'이라는 말이 부끄럽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유족들
 눈물이 마르지 않는 유족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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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하루 전에 임명된 경찰청장이 임명권자에 대한 보은의 답례로 ‘뭔가를 보여 주는 진압작전’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사건 발생 원인에서도 그렇지만 사건 발생 후에도 여태 이런 경찰청장을 면직시키지 않고 두둔하는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정부가 아니다.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든 것은 아무튼 잘못이다. 철거민들의 처지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할 것이다. 도심에서 철거당하는 이들이 점차 도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를 당해 보지 않는 사람이 섣불리 자기들만을 탓한다고 나에게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원망할 것이다.

경찰이 금과옥조로 하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회’ 라는 말은 백 번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법과 질서에는 합리성이 있고, 그 법과 질서 준수에 예외성이 없어야 할 것이다. 법과 질서를 교묘히 어겨가며 법 집행자가 된 뒤 약자들에게, 자기들처럼 약지 못한 백성들에게 법과 질서의 준수를 강조한다면 누가 그 말을 따르겠는가.

‘용산 철거민 참사’의 근본 해결 방안

이 끔찍한 참사 뉴스 속에서도 정의사회를 부르짖던 전직 대통령이 비자금으로 조카와 소송을 해서 재판에서 패소했다든지, 그 정권에서 황태자로 군림하던 이가 백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제삼자에게 맡겨두었다가 갚지 않자 소송을 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시절 온갖 교언영색으로 국민을 속이며, 정권의 나팔수를 하던 이가 숱한 부동산을 가지고도 아직도 배가 고픈지, 나이 70을 넘기고도 여당 대표로 국정을 논하고 있다. 그 정권 추종자들이 국회와 정부의 전위대를 맡고 있는 세상에 ‘법과 질서’를 지키라는 그들의 말이 개 짖는 소리나 다름이 없는 소음일 테다.

사실 이번 사건에 신임 경찰청장 한 사람 바꾼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일이 아니다. 임명권자보다 시민의 생명을 하늘처럼 받드는 경찰로 거듭나지 아니고서는 경찰청장을 백 번 바뀌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민을 우습게 본 현 청장을 비롯한 관계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교묘한 방법으로 법을 어겨가며 기득권을 차지한 이들이, 입으로만 국민을 섬기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정반대로 부당하게 치부한 강부자 고위층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용산 철거민 참사’의 근본 대책이 나오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 같다.

"이 사회의 갈등을 경제 논리로만은 풀 수 없다."
"오직 의로운 사람만이 난국을 풀어갈 수 있다."

앞의 말씀은 도법 스님의 말씀이요, 뒤의 말씀은 면암 최익현 선생의 말씀이시다. '경제'라면 까막눈이 되는 백성들이여, 늦었지만 이제라도 새겨 들어시라.


태그:#용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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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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