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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심각한 경기침체에 접어든 2008년 한 해가 저물고 2009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2009년 경제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올해는 물론이고 향후 수년간 장기 불황의 나락에 빠질 것으로 내다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올해 하반기부터 점차 회복될 것으로 점치기도 한다.

이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과 <오마이뉴스>는 2009년 대변동기의 굵직한 경제 쟁점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국민의 삶을 바꾸어갈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지난달 8일 한 학생이 그리스 의회 밖에서 경찰들에게 오렌지를 던지고 있다. 학생들과 경찰간의 충돌은 수천명의 항의군중이 아테네 중심가에서 정부청사, 경찰서, 상점 등에 방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새해까지 이어졌다.
지난달 8일 한 학생이 그리스 의회 밖에서 경찰들에게 오렌지를 던지고 있다. 학생들과 경찰간의 충돌은 수천명의 항의군중이 아테네 중심가에서 정부청사, 경찰서, 상점 등에 방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새해까지 이어졌다. ⓒ AP=연합뉴스

글로벌 금융위기가 2009년 들어 진정되는 것은 고사하고 확산 일로를 걷고 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도화선으로 연쇄 파산을 이어갔던 투자은행의 위기는 지금 상업은행의 위기라는 더 위험한 2차 금융위기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 결과 금융위기로 인한 손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 교수는 "글로벌 은행들의 신용위기 손실이 현재의 세 배가 늘어난 3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정부 지원이 없으면 1500개 가량의 미국 지방은행이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몬 존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은행들의 자본금 확충에 지원해야 할 자금 규모가 3, 4조 달러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금융위기는 실물경제 위기로, 다시 정치 위기로

2008년 10월부터 실물경기 침체로 전이된 세계 경제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추락을 이어가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 경제가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것은 물론 내년 이후까지 침체가 지속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실업률도 급격히 늘어나 미국과 유럽,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26일 하루 10만명 가까운 감원 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파괴력이 커지고 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몰리면서 경제위기는 빠른 속도로 정치위기로 전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제 실정과 정치 부패로 폭동 수준에 이른 그리스 국민들의 시위가 진정되기는커녕, 농민 시위로 번지고 있다. 그리스 농민 8000여 명이 지난 주 트럭과 트랙터를 동원해 수도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70여 곳을 차단했다. 농산물 가격폭락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고속도로 점거 시위가 9일째 이어지고 있다.

1인당 국민 소득 세계 3위의 유럽 금융허브로 명성을 날렸던 아이슬란드는 일찌감치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가 부도사태에 몰려 IMF의 구제금융을 받더니, 결국 경제위기를 수습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저항에 직면해, 게이르 하르데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연립정부가 붕괴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31만 명의 아이슬란드 국민 가운데 1/10에 해당하는 3만 명 이상이 신자유주의 경제 파산에 항의하며 시위를 했을 정도이니 이는 필연적인 결과라 봐야 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프랑스 노동계가 1월 29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경제 위기 대책을 비판하는 대규모 연대 총파업에 나서 유럽 전체를 긴장시키고 있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사르코지 정부의 경기부양 대책이 노동자보다는 기업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둬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를 불러오고, 이는 다시 시시각각으로 노동자와 서민에게 실업률 폭등 등으로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들의 대책이란 것이 금융과 기업 살리기 수준에서 못 벗어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정부를 향하고 있다.

금융자본주의는 국가에 굴복했지만...

전 세계 국민들이 각국 정부에 분노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공황 수준까지 치달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수습할 유일한 당사자가 국가이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시장 주도의 자본주의'를 설파해왔던 금융자본주의가 자체 해결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국가에 속속 손을 벌리는 상황이 전 세계에서 목도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금융위기의 유일무이한 구원투수가 되었다. 이미 지난해 미국의 패니매이(Fannie Mae)와 프레디 맥(Freddie Mac), 그리고 AIG가 국유화된 바 있고, 영국의 노던 록(Northern Rock) 은행에 이어 3개 은행(RBS, 로이스 TBS, HBOS)이 국유화되었으며, 독일을 포함한 유럽 은행들 역시 국유화 과정을 밟았다.

올해 접어들면서는 아일랜드 3위 은행인 AIB(Anglo Irish Bank)가 1월 16일자로 국유화되는 등 상업은행들에 대한 정부의 구제 금융과 지분참여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미국 정부가 1980년대 말 저축대부조합(S&L) 부실을 떠안기 위해 설립했던 정리신탁공사(RTC)와 유사한 '정부은행'을 설립하여 은행권의 부실자산을 사들일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형편이다.

 [표1] 주요 상업은행의 손실과 정부의 지원책
[표1] 주요 상업은행의 손실과 정부의 지원책 ⓒ 새사연

바야흐로 금융기관의 재국유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장서 설파해 왔던 삼성경제연구소마저 시장주의가 퇴조하고 '국가자본주의'가 대두되고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삼성경제연구소, "2009년 해외 10대 트렌드", 2009.1). 1월 28일부터 열리고 있는 선진국 클럽 모임인 다보스 포럼에서도 '시장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집중 토론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기관 국유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가장 자유롭게 시장 흐름에 편승해야 한다고 주장되었던 은행들이 아예 국가에 소유권을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위험한 사회주의 발상'이라며 기겁을 했을 국유화를 신자유주의 종주국들이 서슴없이 도입하고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에 손을 벌리는 것은 수치"라며 큰소리를 쳤던 도이체방크마저 대규모 손실로 독일 정부에 구원을 요청해야 할 상황이니, 생사기로에 선 금융자본에게 이데올로기적 체면은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인류 최후의 신자유주의자 이명박 정부의 미래

 이명박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첫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첫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청와대 제공

이처럼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민영화(privatization), 자유화(liberalization), 규제 완화(deregulation)는 끝을 모르고 심화되는 경제위기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각국 정부가 금융자본과 시장을 대신하여 경제위기를 수습하려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의 정부가 기업과 금융자본 편향성으로 다시금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경제는 어떠한가. 그리고 한국 정부는 어떠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 민영화, 자유화, 규제 완화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논리는 전혀 그 기세를 잃지 않고 살아 날뛰고 있다.

첫 매각 대상으로 올랐던 대우조선해양이 한화 인수포기로 무산된 바로 그 시점에 정부는 이른바 '5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100여 개에 이르는 정부 출연 기업들의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한미FTA 재협상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는 마당에도 한미FTA 국회비준 통과를 2월에 다시 시도할 예정이다. 도대체 우리 국회가 비준한 뒤에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어떤 모양새가 될 것인지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국면인데도 말이다.

각종 파생상품 규제 완화가 포함된 '자본시장 통합법' 시행일 역시 코앞이다. '기존의 증권펀드나 MMF, 부동산 펀드 이외에 투자대상이나 투자비율에 제한을 두지 않는 혼합자산펀드가 등장'할 것이고 '펀드 가입 경로도 다양해져 기존의 증권사와 은행, 보험사뿐만 아니라 우체국과 새마을금고, 상호저축은행 등에서도 펀드 가입'이 가능할 전망이다.

경제 실정으로 비난 받아온 강만수 경제팀이 교체되고 윤증현 경제팀이 이후 경제팀을 이끌 예정이지만, 새 경제팀은 한결 같이 금융 자유화와 규제 완화를 주창했던 금융전문가들 뿐이다. 물론 정문으로 내쫓긴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가경쟁력강화 위원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뒷문으로 돌아왔다. 과연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는 자본주의 역사상 최후의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과 유사한 국가 개입이 강력하게 이뤄지는 분야가 있기는 하다. 한국에서 국가의 역할이 강화된 지점은 시장 개입자와 조절자로서가 아니라 시장 후원자,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자로서 역할이었고, 국민 저항에 대한 공권력 투입이었다. 용산 참사에 대한 공권력 투입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 위기 국면에서 터질 정치 위기를 걱정한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장 실패를 대신해 경제 무대에 복귀하고 있는 국가를 두고 '국가의 귀환'이라 불렀다(John Plender, "The return of the state", 2008.8.21). 적어도 지금의 경제위기가 수년 동안 이어질 것을 감안한다면, 국가가 시장을 대신해 상당한 역할을 계속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대로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이 다시 국가로 되돌아오면서 금융에 대한 지분 확보와 감독 강화 기조를 이어갈 것이고, 국가 재정지출은 경제 회복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장기불황 이후 경기회복 시기를 전망하기가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국가의 개입 역시 단기간에 종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말이다.  

이런 글로벌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여전히 시장지상주의를 숭배하면서 민영화, 자유화,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고,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우리에게 경제 위기가 정치 위기로 전환되는 과정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 위기 국면에서 폭발하는 정치적 저항은 일개 정부의 공권력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김병권 새사연 연구센터장이 썼습니다.



#정치위기#2차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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