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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목), 오전 9시.

그곳에 섰건만 실감이 나질 않는다. 도대체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나라, 여전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느라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모욕하는 인간들이 활보하는 나라, 그곳에 나는 또 서 있다.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미안하다.

 

기어이 그들이 죽은 다음에야 그들의 소리를 듣는 내가 수치스럽고, 부끄럽다. 그 죄책감을 고스란히 안고 그 자리에 섰다. 그들의 외침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종교인으로서 참회하는 길이리라. 그 참회가 너무 늦지 않기를, 그래서 이 땅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이 더는 부끄럽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곳에는 주인 잃은 신발 한 켤레가 떨어져 있었다.

한 켤레지만 제법 깨끗한 것으로 보아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 주인의 발에서 강제로 벗겨낸 것이다. 1980년 거리에서 주인 잃은 신발을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21세기, 2009년 한국에서 다시 주인 잃은 신발을 본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온 삶의 상실이다. 도대체 누가, 나의 삶 일부를 도적질했으며, 누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는가?

 

한겨울에는 지나가는 개에게도 찬물을 끼얹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권력자의 눈에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은 개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이 틀림없다.

 

 

오전 9시 48분.

감식요원들이 경찰버스로 가로막은 틈으로 현장에 들어간다.

경찰버스에는 '국민의 소리, 언제나 귀담아 듣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그랬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국민의 소리가 아니고 권력자의 소리겠지. 그들이 미운 것이 아니다. 그들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픈 사람들이다. 경찰과 국민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국민과 폭력정권의 대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문구를 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세상에서 살아갈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군밤을 구워 파는 노점상이었을 것이리라. 거기에 가래떡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 짓밟히고 부서져 버린 밤, 그 밤은 마치 짓밟힌 우리네 마음과도 같고, 폭압적인 진압에 죽어간 영령들의 넋과도 같았다. 종일 추운 거리에 나와 군밤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라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조차 발붙일 곳 없게 하는 것이 도시재개발인가?

 

 

어느 일간지 기자가 자신이 이곳에 와서 취재한 기사들을 출력해서 현장을 지키는 철거민에게 주었다. 무심히 기사를 보던 철거민은 특정인물이 나온 사진들을 불에 던져버린다.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화가 나, 이놈들 얼굴만 봐도 울화통이 터진다고!"

 

 

유족들이 하나 둘 초라하게 차려진 임시분향소로 온다. 임시분향소에 도착하자마자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참지 못해 오열한다.

 

"눈물 아껴, 앞으로도 울 일 더 많아!"

 

그랬다. 이제 시작이다.

이 모든 어둠을 살라버리고 진실이 진실되게 하기까지 또 얼마나 울어야 할 것인가.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큰 아픔을 겪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에게조차도 물대포를 쏘아대는 공권력이 그리 쉽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할 리 없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몇몇 단체들이 추모기도회를 위해 모였다. 현장에 있던 기자가 '한기총'이냐고 물었다.

 

"기자 양반, 잘 쓰세요. 한기총하고는 전혀 다른 단체니까. 꼴통보수하고 여기하고는 전혀 다르니까 잘 구분하시라고."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1980년대 암울한 시절에 부르고 나서 처음 부르는 민중 복음성가다. 너무 답답해서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후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략 70여 명, 대형교회 집회에 비하면 형편없는 숫자지만 한국교회의 희망이 여기에 있다. 그 많은 기독교인은 다 어디에 있는가? 보수꼴통 목사에게 세뇌된 기독교인들은 어쩌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한답시고 현 정권의 안녕을 위해 복 빌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눈물 아껴, 앞으로도 울 일 더 많아!"

 

철거민의 그 한마디가 귓가에 윙윙 울린다. 아직도 윙윙 울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용산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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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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